👋 이번 뉴스레터는 지난 9월 20일 IESF 블로그에 연재된 글을 다듬어 발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IESF 블로그에는 국제e스포츠연맹의 다양한 활동과 다른 Ambassador들의 흥미로운 오리지널 컨텐츠도 꾸준히 올라온다고 합니다. 다들 한 번씩 방문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화생명e스포츠는 2024 LCK 서머 우승을 통해 티원, 젠지의 양강 체제를 깨며 롤드컵 LCK 1번 시드를 차지했습니다. '피넛' 한왕호, '바이퍼' 박도현, '제카' 김건우 등 선수들의 스토리도 상당히 흥미로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우승을 통해 HLE를 운영 중인 한화생명과 한화그룹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프로게임단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 공식적으로 e스포츠 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한화생명e스포츠가 LCK 우승을 차지한 덕분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야기들을 소개하면서 어떤 산업적인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LCK 우승과 함께 공개된 사실들
한화생명e스포츠의 LCK 우승은 한국경제, 조선일보, 비즈니스포스트 같은 경제지나 종합 일간지에 e스포츠가 등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경제지들에게는 흔치 않은 아이템이었을 것이고, 한화 그룹 차원에서도 신선한 PR 포인트였을 것입니다.
평소 e스포츠 소식을 자주 다뤄오던 한국경제는 심층 보도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한화생명 김태준 실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왜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화생명 역시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수치들을 공개하면서 적극적으로 답했는데요. 인상적인 대목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 국내 보험업계 소비자의 평균 연령은 50대지만 게임과 e스포츠 산업에는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세대가 주로 참여하고 있다.
- 다른 기업처럼 ‘네이밍 스폰서’(브랜드를 게임단 이름에 함께 표기하는 후원 계약)만 할 수 있음에도 한화생명이 인수를 택한 건 ‘진정성’을 위해서다.
- 한화생명의 e스포츠 마케팅은 실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한화생명e스포츠와 연계해 작년 12월 내놓은 저축보험 상품 가입자의 68%가 20~30대였고, 가입자의 44.5%가 다른 보험 상품에도 가입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 e스포츠 게임단은 해외에서 ‘한화’ 브랜드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6월 베트남에서 연 팬 페스타에는 1500명이 참석했는데, 참여 인원의 30.5%가 한화생명e스포츠를 통해 한화생명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 e스포츠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표는 ‘팬덤 구축’이다. "e스포츠 게임단이 대회에서 활약하면 자연스레 ‘한화생명’이란 이름을 사람들이 외치게 된다"는 것.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는 한화생명이 e스포츠 팬덤의 특징(연령, 글로벌)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 또 하나는 그 이해도를 바탕으로 단순 마케팅, 홍보가 아니라 저축보험 상품 판매 같은 실제 효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의 경우 한화생명보다는 한화그룹 차원에서 LCK 우승에 접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e스포츠의 맨시티'라며 한화 그룹의 적극적인 투자와 김동원 CGO 사장을 포커싱 한 것으로 보아 한화그룹의 PR 창구를 통해 취재 및 소스 확보를 한 것 같습니다.
- 5년 만에 LCK에 등장한 대기업 한화는 비주류로 인식되던 e스포츠 업계를 주류로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 가장 많은 돈을 쓴 것은 선수 영입이다. 바이퍼와 제카의 연봉은 30억 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가 ‘LOL 계의 맨시티’로 불리는 이유다.
- 한화생명은 e스포츠 인수 효과를 제대로 뽑는 중이다. 최근 국내 보험 업계는 지속적인 성장 정체를 겪고 있으나 롤드컵의 경우 동시 시청자 수가 약 1억 명에 달하며, 그들 대부분이 MZ 세대이다.
- 한화생명은 계열사인 ‘더 플라자’와 협업하여 국내 최초로 e스포츠 호캉스 패키지 상품도 출시했다. LCK 경기 티켓과 더 플라자 호텔 숙박권을 결합한 상품으로 더 플라자 상반기 패키지 매출의 82%를 차지했다.
-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 글로벌 책임자(CGO) 사장이 e스포츠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선 뒤부터 젊은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과 상품 전략에 공을 들였다.
조선일보의 기사에서는 '더 플라자'와의 협업을 통해 e스포츠 호캉스 패키지가 큰 성과를 거뒀다는 사실이 공개 되었습니다. 한화생명과 한화그룹 측이 한화생명e스포츠의 LCK 우승을 계기로 '프로게임단 운영이 실제로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된다'라는 것을 어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 팀에게 우승이 중요한 이유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운영하는 프로게임단이더라도 e스포츠는 마이너 한 카테고리이기 때문에 중앙일간지나 경제지에서 잘 다루지 않는 주제입니다. 그래서 '우승' 같은 큰 성과는 좋은 PR 기회가 됩니다.
실제로 한화생명e스포츠에 대한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인수 창단 첫해인 지난 2018년과 2021년 LCK 스프링 정규 시즌 3위를 차지했던 때 외에는 메이저 미디어를 통한 기업 차원의 적극적 PR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LCK 우승을 계기로 한화생명e스포츠는 메이저 미디어를 통해 그 동안 쉽게 알기 어려웠던 정보들을 공개했습니다. 우승이 아니었어도 할 수는 있었겠지만, 우승을 계기로 더욱 효과적인 홍보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는 조직의 담당자들에게도 좋은 기회이지만, 그룹 차원에서도 좋은 기회입니다. 주식회사인 한화생명과 한화그룹의 주가에도 영향을 주고, 그동안 프로게임단 운영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주주들이 있었다면 그들에게도 설득력 있는 어필이 되었을 수 있으니까요.
단순 브랜딩과 홍보를 넘어서다
기업 팀들은 일반적으로 모기업이나 소속된 기업의 마케팅과 홍보 또는 사회 공헌적인 측면에서 운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e스포츠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운영 자금의 대부분이 기업에서 오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지만 기업의 방향성과 특성에 따라서 프로게임단이 수익 사업이나 팬 서비스 사업을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소유 기업이 프로게임단을 어떤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화생명e스포츠의 경우는 어떨까요? 한화그룹이 대기업인 것은 맞지만 아무 이유 없이 'e스포츠의 맨시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투자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e스포츠가 가진 마케팅, 홍보 효과는 아직 다른 스포츠나 광고 매체에 비할 바는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번에 한화 측이 공개한 성과들은 주목할 만합니다. e스포츠 크리틱은 '프로게임단의 멤버십 비즈니스'를 주제로 한 뉴스레터에서 한화생명e스포츠의 저축보험 멤버십 비즈니스를 '시그니처'라고 평가한 바 있는데요. 이 상품의 가입자 중 44%가 다른 보험에도 가입했다는 수치는 한화생명e스포츠 또는 e스포츠 팬덤이 한화생명 측에 실질적인 고객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과거부터 e스포츠 업계에는 금융 기업들이 꾸준히 스폰서나 파트너사로 참여해왔습니다. 이렇게 신규 고객의 유입 경로를 추적하기 쉬워 e스포츠 마케팅의 효과를 측정하기 용이한 측면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e스포츠의 가치를 빛내기 위해서 '마케팅 효과가 좋다', '마케팅 효과 XX억 추산', '젊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 같은 추상적인 수치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클럽 팀들은 생존을 위해서 스폰서나 파트너사들에게 실효성 있는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업 팀 역시 단순히 '우승해서 인기가 많아졌고, 우리 회사의 이미지가 젊어졌다'로 그치지 않고 프로게임단이 사업 확장과 전개에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업 팀이 가야 할 방향은?
한화생명e스포츠가 공격적인 투자와 선수 영입을 통해 LCK 우승을 차지했다고 해서, 모든 기업 팀이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의 사정과 방향성에 맞는 운영 방법이 있을 테니까요. 다만, 한화생명 측이 '멤버십 저축보험 가입자의 68%가 20~30대였고, 가입자의 44.5%가 다른 보험 상품에도 가입했다'라고 공개한 부분은 많은 것들을 시사합니다.
기업 팀이 클럽 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모기업이나 관계사가 안정적으로 소비자 대상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화생명e스포츠는 한화생명보험, kt롤스터는 이동통신 서비스, 광동은 스트리밍 플랫폼 SOOP, 농심은 라면, 스낵 등 식품 사업을 하고 있죠. 프로게임단을 활용해 기존 서비스에 기여할 여지가 많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기업이 운영하는 프로게임단이 단순히 기업 이미지나 브랜딩을 위한 홍보 수단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 게임단들처럼 '유료 멤버십' 같은 자체 수익 비즈니스를 하지도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선수단을 운영해서 성적을 내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클럽 팀들은 '생존'을 위해 수익 사업을 계속 발굴하고 있지만, 기업 팀들은 입장이 살짝 다릅니다. 공격적인 사업 전개, 파트너십을 위해서 고려해야 할 내부 사항이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화생명e스포츠가 발표한 것처럼 '모기업의 사업에 실효성 있는 기여'를 하기 위한 고민을 필요가 있습니다.
광동 프릭스 멤버십에 'SOOP 별풍선 충전 시 10% 할인', 농심 레드포스 멤버십에 '농심몰 할인 쿠폰 제공' 같은 혜택을 넣어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응원하진 않지만 혜택이 너무 좋아서 가입했다'는 e스포츠 팬들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기업이 운영하는 기존 서비스가 있다는 것은 비즈니스의 타깃을 전체 e스포츠 팬덤으로 확장해도 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 LCK에는 클럽 팀과 기업 팀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자본 구조와 의사 결정 구조를 살펴보면 클럽 팀과 기업 팀의 생존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 기획으로 다뤄볼 생각입니다.
아무튼, 기업 팀은 클럽 팀에 비해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과거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는 거의 모든 팀이 기업에 인수되었던 적이 있었으나, 기업들의 경영 악화, 예산 축소, 승부조작 사태 등의 이슈가 겹치며 릴레이 해체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프로게임단을 운영해왔던 삼성전자는 롤드컵에서 우승한 팀을 매각하기도 했죠. 기업 논리에 따라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 기업 팀이기도 합니다.
냉정하게 보면 e스포츠는 프로야구, 프로 축구에 비해 수익성과 대중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기업들이 적자임에도 프로 스포츠 팀을 운영하는 것과 절대적으로 같은 조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기업이 운영하는 프로게임단은 지금보다 더 조직과 융화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한화생명e스포츠의 우승을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은 산업적으로 의미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단순히 '우승해서 좋다', '마케팅 효과가 좋았다'에서 그치지 않고 '프로게임단 운영은 실제로 도움이 된다'라는 메시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의견을 남겨주세요
호빙
재밌다... 재밌다 ... 재밌다...
e스포츠크리틱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땡큐…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