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뉴스레터는 지난 10월 4일 IESF 블로그에 연재된 글을 다듬어 발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IESF 블로그에는 국제e스포츠연맹의 다양한 활동과 다른 Ambassador들의 흥미로운 오리지널 컨텐츠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다들 한 번씩 방문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국의 e스포츠 기업인 VSPO가 지난 9월, ACL(Asia Champions League)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e스포츠 대회의 론칭을 발표했습니다. 2024년 여름, 글로벌 e스포츠의 거대 이슈 메이커였던 EWC(e스포츠 월드컵)에 이어 또 하나의 종합 e스포츠 대회의 탄생이 예고된 것입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점은 이 대회가 시작부터 EWC와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공식 발표 이미지의 하단을 보면 'EWC x VSPO'라는 두 단체의 콜라보 로고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겉으로 보기엔 중국 대회지만, 어떤 형태로든 사우디 아라비아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VSPO가 개최하겠다는 ACL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어떤 관계가 있고, 앞으로 어떤 대회로 운영이 될까요? 더 나아가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과는 또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현재까지 공개된 뉴스, 자료 등을 통해 ACL의 산업적 연결고리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VSPO와 ACL에 대하여
우선 VSPO가 어떤 회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요. 지난 2016년 설립된 VSPO는 중국에 거점을 두고 있는 e스포츠 기업입니다.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e스포츠 쇼다운, 아너 오브 킹스(KPL), 게임 포 피스(PEL), 크로스파이어(CFPL), 펍지(PCL, PGC), 펍지 모바일(PMPL) 등 다양한 대회를 개최해왔습니다.
VSPO의 회사 소개에 따르면 TV 채널, OTT, 디지털 채널 등을 다수 운영하는 콘텐츠 유통 및 저작물 관리부터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 핵심 도시에서 e스포츠 경기장을 운영하는 등 온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폭 넓은 사업 분야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까지 커버하는 No.1 e스포츠 기업이라는 평가입니다. 다만, 그 동안 자체적인 대회 IP를 개발, 육성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Esports Insider(이하 ESI)의 보도에서는 ACL이 어떤 대회가 될 것인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 VSPO는 ACL을 6개월이 한 시즌으로 구성된 연간 토너먼트로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ACL은 사우디가 운영하는 EWC의 파트너로 발표되었고, 현재 양측은 이 대회가 2025년 EWC 예선에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
- 정확한 종목들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VSPO는 7~10개의 타이틀을 다룰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고 트레일러에서는 스트리트 파이터, 리그 오브 레전드, PUBG와 같은 게임이 등장했다.
ACL은 단기 토너먼트의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6개월 정도의 기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죠. 글로벌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대회들이 많기 때문에 종목 하나를 6개월 가까이 끌고 가기보다는 6개월 동안 여러 종목들을 순차적으로 진행해나가는 형태가 현실적일 것 같습니다.
또한 EWC의 파트너로서 2025년 예선에 ACL이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ACL이 EWC 출전권을 얻을 수 있는 엔트리 대회가 된다는 것이죠. 이런 연계는 비록 상/하부 리그 구조이더라도 두 대회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식 종목은 EWC와의 파트너십을 생각해 봤을 때, EWC와 일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게임사가 운영하는 대회 구조가 워낙 촘촘한 경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2024년 EWC 리그 오브 레전드는 초청 형태로 8개 팀이 출전한 바 있습니다.
사우디와 VSPO의 연결고리
ACL이 EWC와 연계되는 대회로 소개된 점을 통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텐데요. 실제로 VSPO는 사우디 아라비아와도 강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습니다.
VSPO는 지난 2023년 사우디 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산하의 새비 게임즈 그룹으로부터 약 3,400억 원의 투자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설립 초기 이름인 VSPN에서 VSPO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VSPO는 이번 EWC의 공동 운영사(Co-organizer)로 참가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했습니다. 현장에 전담 프로덕션 팀을 꾸려 다양한 종목의 e스포츠 중계를 제작해 송출하고, 비하인드 콘텐츠 촬영 및 제작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후야, 도유, 비리비리 등 중국 플랫폼들과의 제휴를 통해 EWC가 더 많은 곳에 송출되도록 했죠.
e스포츠에 대한 새비 게임즈 그룹의 초기 행보는 그야말로 파격적이었습니다. 유럽에 기반을 둔 세계 최고의 e스포츠 기업 ESL을 인수하고, 주요 게임사의 지분을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시장은 VSPO의 손을 잡았습니다. 중국은 해외 자본에 중국 기업을 직접 인수할 수 없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EWC의 큰 그림?
사우디 아라비아는 2024년 EWC의 첫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IOC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앞으로 12년 동안 'e스포츠 올림픽 게임'을 개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격적인 인수 및 투자가 시작된 이후 약 2~3년 만에 글로벌 e스포츠 산업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압도적인 자본력만큼 실질적인 영향력 확보도 중요합니다. 때문에 EWC는 2024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더 높은 권위를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게임사들이 직접 개최하는 대회들의 명예가 더 크고, 전 세계 모든 프로게임단이 2024년 EWC에 참가했던 것도 아니니까요.
EWC는 ESL, ESL FACE IT, 드림핵 등을 통해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 북미, 남미, 오세아니아 등 글로벌의 주요 권역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ACL이 중국을 거점으로 한국-일본, 동남아시아까지 커버할 수 있는 지역 대회가 된다면 EWC는 사실상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 대회로 거듭나게 됩니다.
EWC는 ESL과 VSPO에서 개최하는 대회들의 성적을 바탕으로 출전권을 부여하는 구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가 완성된다면 EWC는 그야말로 리그 위의 리그가 됩니다. 프로게이머들은 EWC에 출전하기 위해서 ESL, ACL 출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EWC의 권위는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종목사들도 EWC를 더 의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리적으로도 계산을 하게 될 겁니다. 최근 종목사들이 e스포츠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것보다 써드파티 대회들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고려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EWC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반기는 게임사들도 있을 것입니다.
VSPO와 한국 e스포츠와의 관계
사실 VSPO는 이미 한국과도 인연이 있긴 합니다. VSPN 코리아가 V.Space라는 경기장을 구축했고, 바나나컬처가 VSPO의 한국 지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VSPN 코리아는 2022년 이후 구체적인 활동이 없지만, 바나나컬처는 V.Space를 활용해 한국 게임사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VSPO는 지난 2023년 12월, 라우드코퍼레이션과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라우드코퍼레이션은 중국 e스포츠 시장에 대한 남다른 경험과 인사이트를 보유하고 있고, VSPO와도 지난 7년간 교류하면서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ACL이라는 대회가 한국 e스포츠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아직은 구체적으로 예측하기 힘듭니다. ACL이 EWC로 가는 아시아 지역 관문이라면, 굳이 한국에서 별도의 지역 예선 등을 개최할 명분은 그리 크지 않아 보입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콘셉트 비디오에는 Seoul, Korea가 비중 있게 다뤄져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ACL이 중국 현지에서 긴 기간 동안 진행되는 장기 대회라면 한국 팀들이 거점을 옮겨서 참여하기에는 현실적인 제약들이 많을 것입니다.
아마도 한국 프로게임단들은 각자의 전략과 사정에 맞춰 ACL에 도전하게 될 것 같은데요. 어떤 종목이 발표되고, 어떤 일정으로 진행되는지를 우선 살펴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을 위한 별도의 대회가 없다면, 바나나컬처 혹은 라우드코퍼레이션은 한국어 중계를 제작하거나, 출전하는 팀들의 중국 체류 등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맡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만약 그렇다면 중국 시장과 친숙하고 에이전시 사업을 같이 하고 있는 라우드코퍼레이션이 더 적합한 파트너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ACL은 VSPO가 주최하지만, 단순히 중국 대회로 볼 수는 없습니다. VSPO와 사우디 아라비아 그리고 EWC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결국 이 대회는 ESL의 영향력이 큰 유럽, 북미, 남미에 이어 마지막 남은 아시아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글로벌 e스포츠 전략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옆 나라인 중국에서 대규모 e스포츠 대회가 출범하지만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과의 연계 및 협력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산업적으로 기반이 약하고, 시장 규모 역시 작은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e스포츠 시장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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