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책꼬리_낙오자 말고 도망자 말고, 독립자로 머물기

단 하나의 이름만으로 기억되는 사람들

2023.06.09 | 조회 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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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마음

계속해서 읽고 쓰고 싶은 마음으로 띄우는 편지

우리가 어떤 책과 만나는 데는 타이밍이 존재한다고들 하지요. 책을 읽다보면 독서는 반드시 확장됩니다. 책에서 소개한 책, 비슷한 사유를 담고 심화해가는 책, 같은 저자의 책… 책이 슬쩍 내려놓은 꼬리를 물다보면 우리의 세계는 얼마나 멀리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요? '책꼬리'는 책에서 파생되는 또 다른 책의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연결해갑니다. 김한민 『아무튼, 비건』+이슬아 『날씨와 얼굴』+이사 레슈코 『사로잡는 얼굴들』의 꼬리를 문 책은 김한민 『비수기의 전문가들』과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입니다.

 

📚 『비수기의 전문가들』(김한민, 워크룸프레스, 2016) 

📚 『불안의 서』(페르난두 페소아, 봄날의책, 2014)

 

수해 전 여름, 근무하던 출판사에서 독립책방 주인들을 인터뷰한 책을 만든 적이 있었어요. 저와 다른 편집자가 한 팀이 되어 스무 곳 가까운 서울의 책방을 직접 찾아다녔고 사진도 직접 촬영하고 책방지기들과 대화를 나누었지요.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골목골목을 헤매며 그들을 만났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독립된 노동자로서 저를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그 인터뷰에서는 책방지기들로부터 책을 추천받곤 했는데요. 그 당시 꽤 여러 차례 이름을 들었던 작가가 있었고, 바로 김한민이었습니다. 김한민 작가를 참 좋아해서 그의 책 『책섬』(워크룸프레스, 2014)『카페 림보』(워크룸프레스, 2012)를 양껏 쌓아두고 판매하던 책방지기도 계셨고요. 그때 저는 그냥 ‘독특한 작가가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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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의 행보는 독보적으로, 유유히 계속되었던 듯해요

김한민 작가는 페소아와 페소아들(워크룸프레스, 2014),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민음사, 2018),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민음사, 2018)을 번역했고, 리스본에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아르테, 2018)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또한 아무튼, 비건(위고, 2018)의 저자로서, 기후, 동물, 생태계 이슈를 다루는 창작 집단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의 준말, 움직이는 시를 뜻함)’의 주축인 비거니즘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책깨나 좋아하는 이들이 김한민이란 이름을 들으면, ‘비건과 ‘페소아’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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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읽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제가 제일 처음 든 책이 비수기의 전문가들(워크룸프레스, 2016)이었습니다. 이 책의 나는 부적응자이자 낙오자로 삶을 버티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말고, '돌아가지 않는 세상의 원리'를 찾아 포르투갈로 떠납니다. 모두가 성수기를 꿈꾸는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자 도망자인 그는 자신이 찾던 그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김한민 작가의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되물었습니다. 결국 그는 무엇이 되려 한 걸까? 아니, ‘된다’는 상태는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은 과연 무엇이 ‘’ 수 있을까? 반대로,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존재하지 않겠다는 뜻일까?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 죽음이 아닌 선택지가 있을까? 그의 의도와 메시지를 알 듯 모를 듯 마음이 간지러워져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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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구하기 위해 다른 이의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김한민 작가가 좇고 있는 한 남자를 보기로 한 것이죠. 페르난두 페소아. 평생 70여 개가 넘는 이명(異名)을 지어 글을 쓰고 살았던 사람. 발표되지 못한 무수한 시와 산문, 평론을 거대한 궤짝에 넣어두고 떠난 사람. 수십 개의 자아로 어쩌면 세상 끝까지 도달해본 사람. 『불안의 서』(봄날의책, 2014)는 그 삶을 통째로 관통하는 책이지요.

페소아는 글을 쓰는 동안 70여 개가 넘는 다른 이름으로 존재함으로써 ‘모든 것을 모든 방식으로 느끼고자 했다고 해요. 가능한 한 많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느끼기 위해 그의 감각은 확장된 셈입니다. 아, 페소아는 그 자신 혹은 모든 존재! 확장된 그는 어디에나 '있고', 그래서 저는 그의 글을 읽는 동안에는 세상 끝까지 이르렀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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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곳, 모든 존재. 그리하여 마침내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단 하나의 이름만으로 기억되는 사람. 어쩌면 김한민 작가의 확장과 공감이 지향하는 바 또한 특정한 무엇으로의 도달, 어떤 인물로서의 됨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모든 존재로 동시에 머물기가 아닐까 싶었어요. 이를 통해 그는 수십 개의 다른 이름들이 쓴 언어를 번역하고,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마침내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지요.

『비수기의 전문가들』의 나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쓰레기를 치우며, 로드킬 당한 동물들의 사체를 거두며, 독립자로 거듭납니다. 마침내, 다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독립자 김한민의 얼굴로요.

 

2023.06.09. 순천에서 민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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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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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개

    1
    8 months 전

    흥미로운 작가님이시네요. 마침 읽으려고 빌려둔 <아무튼, 비건>의 작가님이네요! 추천해주신 책들도 읽어보겠습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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