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가벼운 긴장감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소개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가벼웠을 것 같은 직업 이야기, 일상 이야기, 진로 이야기가 괜히 나만 그렇게 무겁고 모나게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새로 만난 사람에게 나라는 사람을 최대한 가볍고 간단하게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다.
몇 권의 책을 독립출판하고, 강의도 하고, 직접 쓴 대본으로 연기도 하고 연극도 만들었다. 그러나 작가로, 강사로, 배우로. 창작자로, 예술가로 당당하게 나를 소개할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미심쩍음이 이 몇 가지 단어로 나를 소개하는 일에 머뭇거리게 했다. 내가 나를 이런 직업인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자꾸만 어디선가 떠올랐다.
그런 마음으로 살다가 누군가에게 또다시 이렇게 미적거리는 단어들을 그러모아 나를 소개하고, 예의상 당시 준비하고 있던 연극 공연의 리플릿을 내밀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 이런 거 참 좋아요. 요즘 유행하는 부캐 같은 거잖아요. 저는 이런 거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도 학부 전공은 예술계열이었지만 현재는 전혀 전공과 무관한 직장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한다고 했다. 취미로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며 나의 공연도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자기 나름의 긍정적인 표현이었겠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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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짓고, 강의를 하고, 연기를 하고, 공연을 만드는 내 모습이 부수적인 것으로 보이나? 본래의 직업은 따로 있고 이 모든 노력과 수고는 단지, 이루지 못했던 꿈을 향한 미련 정도의, 부차적인 활동인가? 나는 질문했다.
글을 계속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 나는 이 일이 나의 부수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음을 떠올렸다. 나에게 있어 글짓기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의식하고 있지 않아도 계속하고 있었던 일이었고, 의식하게 된 후로는 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 짓는 사람으로 살 것이고, 그렇지 않은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나는 작가로, 창작자로, 예술가로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비록 이것으로 내가 부유한 삶, 아니 생계를 이어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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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정확하게 소개하는 일이다.
나는 작가이다. 그리고 때때로 글짓기 강사이기도 하며, 배우로도 살고 있다. 창작하며 살아가는 예술가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일들은 많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소개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나는 나의 능력을 의심하고 미심쩍은 눈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를 작가로 소개해야겠다. 나는 부수적으로 글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니고, 부수적으로 창작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이 어렵다면, 나를 믿어주고 있는 사람들의 믿음을 빌려서라도 나는 나를 믿어주어야겠다.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작가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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