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들이 마음에서 비롯된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 것이었을까? 쉽고 단순한 사실 같은데도 여전히 나는 마음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특히 내 마음을.
누군가가 미웠다. 밉고 화가 났다. 내 마음속에서 그를 향한 분노를 그러모아 가지고 있는데 문득 이상했다. 이게 정말 그렇게까지 화가 날 일인가? 잠시 감정을 내려두고 이성의 눈으로 살펴보면 짜증이 날 만한 일이긴 했지만, 마치 화산 폭발하듯 터져 나올 만큼 분노할 일은 아니었다. 이 사건 뒤에 더 쌓여 있는 뭔가가 보였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왔느냐고. 그건 지금의 나에게 묻는 말이기도 했지만, 십 년 전, 이십 년 전 과거의 나에게 묻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관심이 없어서 몰랐기 때문이었다.
상담실에서 나는 종종 내 마음속에 있는 스무 살 참빛이, 열다섯 살 참빛이, 열 살 참빛이를 만났다. 정답을 말하는 것은 늘 쉬웠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필요했던 건 정답이 아니라 공감이었다. 공감 없이 꽤 오랜 시간 버텨온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러니 살짝 톡, 건드리기만 해도 와르르 무엇인가 쏟아져 나오는 게 당연했다.
비극적인 것은, 사람은 자신과 가까운 존재를 마치 자기 자신처럼 인지한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딱딱해서 작은 자극에도 크게 무엇인가 왈칵 쏟아질 때, 그 난감함을 견뎌내야 하는 건 나뿐 아니라 공교롭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가장 원하지 않는 일이 최악의 형태로 반복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세요?”
남편과 함께, 혹은 따로 상담실에 들어갈 때마다 받았던 이 질문에 나는 덤덤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가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처 난 맨살이 드러난 것처럼, 부드러운 바람을 호 불어도 쓰리고 아프기만 했다. 치료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상담 선생님은 티슈를 마음껏 쓰라고 했다. 눈물이 난다면 마음껏 울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필요하다면 도망가도 괜찮다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며 천천히 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함께 이 문제를 풀어가 보기로 했다.
나를 사랑하는 일,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는 일.
나의 마음이 건강해지고, 나를, 또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 자유의 순간을 기대하며, 일단은 조금씩 연습해 보기로 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물어보기 시작했다. 참빛아, 지금 마음이 어떠니? 무엇이 좋고 싫으니? 무얼 하고 싶니?
낯설고 어색한 자문자답이지만 놀랍게도 효과가 있다.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일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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