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올까? 걱정이 무색하게 바람이 분다. 언제 푹푹 찌는 더위가 있었냐는 듯, 진한 햇빛은 여전한데 서늘한 공기가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린다. 알아차릴 새도 없이, 가을이 왔다.
평소였다면 피곤하다며 덜 움직이려 했을 텐데, 가을이 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선뜻 걷기를 선택한다. 외출 복장을 완벽하게 갖추지 않았어도, 분명한 목적지가 없어도, 그냥 이 가을날을 만끽하겠다는 다짐 하나로 충분하다.
얼마나 오래 이 날씨를 누릴 수 있을까? 해마다 아까운 마음에 생각했던 질문이, 폭우와 폭염을 반복해서 겪던 지난 계절의 경험에 힘입어 좀 더 굵은 글씨가 된다. 거짓말처럼 찾아온 이 계절이, 거짓말처럼 당장 내일 사라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정말 이상한 세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어쩌면 내가 당연하다고 착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변함없으리라 생각한 것이 변하고, 믿음이 의심으로 바뀌는 일이 많아졌다. 이것이야말로 시간의 흐름을 겪고 있는 인간인 내가 겪게 되는 당연한 일인 걸까. 순진하고 편하게, 가볍게만 살았던 시절을 지나, 조금씩 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무엇이 삶을 변하게 할까? 나는 죽음을 가끔 생각한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시간을 끌고 있다. 지난여름 예상치 못한 부고를 봤다. 젊은 이의 죽음이었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을까, 의심도 해보고 슬퍼하며 숙연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내 모습이 가장 당황스러웠다. 죽음을 깊이 생각해 보기도 전에 얼른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마치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일에 나는 어느새 익숙해 있었다.
당연한 죽음이 있을까? 당연함과 죽음이 만날 때,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당연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싶고, 마치 그럴 것처럼 지금을 산다. 지금의 내가 죽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당장 모든 게 이해되지 않아도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이 내게 남아있다.
나는 죽음을 말하기도, 고민하기에도 결심이 서지 않아서, 조금 뒤로 물러나 본다. 그곳엔 이별이 있다. 삶에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이 있다. 크고 작은 헤어짐을 마주할 때도 나는 여전히 초연하기 어렵다.
뜨거운 날씨를 뒤로하고 서늘한 바람이 얼굴에 와 닿는다. 흘러가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안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온다. 그 후로 봄이 오겠지만, 그 어떤 것도 쉽게 당연하게 여길 수가 없다.
당연함에서 벗어나 이상하고 새로운 일들을 마주하는 나는, 늘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할까?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본다. 똑같아 보이지만 똑같지 않은, 당연한 줄 알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어쩌면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은, 맑은 가을날 속에 삶과 죽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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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주
전 최근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선물 받아서 읽고 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니 지금의 삶이 더 소중하겨 여겨지더군요:)
무구편지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너무 당연하면서도 먼 일처럼 느껴지곤 하는 것 같아요. 연주님의 지금을 온전히, 진하게 누리는 나날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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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서
제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없어 복잡한 뭉치로 뭉쳐져 있던 것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분류되고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어요. 약간의 개운함과 함께 형광펜 밑줄 쫙쫙 긋고 싶네요. ㅎㅎ 때로 남들 다 겪는 삶의 과정들을 나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고 나만 미성숙한 것 같은데, 그런 저에게 위로가 되는 글입니다.
무구편지
개운함과 위로가 전달되었다니 저도 기쁘네요. 저 역시 복잡하고 여전히 어려워요. 그래도 계속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또 쉽게 단정 짓고 편해지지 않으려고 노력중 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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