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일기

20. 마흔 일기 / 성공

내가 원하던 성공의 모양

2023.06.15 | 조회 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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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구독자 안녕하세요. 희정입니다.

5월의 두번째 편지입니다.

벌써 여름날씨인데 정작 7월은 한 달 내내 비가 온다니 6월을 열심히 즐겨야 겠다고 벼르고 있어요. 그래서 6월에 부산과 서울 일정을 하나씩 만들어 놓았지요.오늘도 즐거운 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20. 마흔 일기 / 성공

내가 원하던 성공의 모양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건 거절 덕분이었다. 서촌을 떠나며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 사랑했던 동네를 영원히 종이 위에 남기고 싶어서 책으로 만들고자 했다. 매일 사진을 찍었고 글을 썼으니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완성한 원고를 출판사 몇 곳에 투고했지만 거절당했다. 대부분은 답장이 오지 않았고 그나마 온 것은 붙여 넣기 했을 게 뻔한 메시지뿐이었다. 취업준비생에게 불합격 소식을 전해주듯 좋은 인재()이나 우리 회사(출판사)와는 맞지 않은(팔리지 않을) 사람()’처럼 예의 바르게 거절하는 글 뿐이었다. 그러다 붙여넣기 하지 않은 메일 한 통 받았다. 자신들도 서촌에 대한 책을 기획한 적이 있으나 아직 북촌처럼 독자층이 넓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짧지만 성의 있는 답장이었다. 그 메일에는 내 인생을 바꾸는 제안이 들어있었다.

 

그러니 독립출판으로 해보시는 건 어떻겠어요?’

 

독립출판이라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 당시 이미 내 책장 반 이상이 독립출판물로 채워져 있었다. 교보문고에서 파는 책들은 소유에 큰 욕심이 없었다. 언제든 살 수 있었고, 중고시장도 넓게 형성되어 있으니 나중에 갖고 싶어도 조바심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독립출판물은 달랐다. 독립출판물은 눈에 보였을 때 사두지 않으면 다시 발견하기도, 구입하기도 어려운 것들이라(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심했다) 읽고 싶은 게 생기면 고민 없이 사들였다.

 

어차피 좋아하던 것이니 한 번 해보자.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낸 경험이 있으니 내 책을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학습지 대신 시집을 껴안고 살았던 청소년기의 서사는 이 날을 위한 빌드업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학 수업을 뻔질나게 빠졌으면서 대학 등록금은 도서관에서 뽕 뽑으리라 결심했던 것도 다 이 선택을 위한 준비였던 거였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핑계가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조각처럼 맞췄다. 그렇게 나는 누구의 선택도 받지 않은 채 스스로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출판사를 차리기 전 1인 출판사 수업을 들었다. 책 한 권만 출간하고 망하는 회사, 3년 안에 망하는 출판사가 대부분이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의 의도는 그렇게 힘든 일이니 너무 쉽게 뛰어들지 말라는 뜻이었겠지만, 나는 어차피 돈 안되고 힘든 시장이니 못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안심했다.

 

내가 들었던 건 1인 출판사 수업이라 독립출판의 생리와는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서 수업 뒤풀이 자리에 따라갔다. 용기를 내서 사실 이 수업을 들은 이유가 독립출판을 해보고 싶어서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가볍고 명쾌하게 돈지랄이라고 결론 내셨다. 두 번 물어볼 것도 없는 확신의 찬 어조였다.

 

책을 만들기 위해 모아놓은 돈 100만 원도 없을 때였다. 오히려 반항심이 생겼다. 전공도 아니고 경험도 없고, 돈도 없지만 까짓 한 번 해보지 뭐. 돈 없는데 독립출판 시작하고, 두 번째 책 출간하고, 3년 이상 버티면 평균 이상은 하는 거잖아?

 

아이러니하게도 출판사의 거절과 선생님의 부정적인 조언 덕분에 나는 출판사를 차리게 되었다. 내 책 출판하려고 출판사 차리는 건 미친 짓이라는 얘기도 수도 없이 들었지만 나는 창피하게도 내 책 한 권을 세상에 내기 위해 스스로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그건 아무도 내 책을 내주지 않아서 이기도 하고, 바라는 건 하고자 하는 행동력 만렙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시작이 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도저히 다음에가 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건 지금 해야 했고, 그걸 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아서 내가 나를 일으켜 잡아끌었다.

 

다행히 펀딩을 받아 제작비를 마련하고 500부를 인쇄한 <낭만서촌>은 한 달 만에 모두 팔렸다. 초심자의 행운인지도 모르고 나는 앞으로 이 일 계속하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보다 반겼다. 그 이후로 계속 책을 만들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다른 작가의 책도 만들고 그림책도 만들었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데 자꾸 이번 미션을 클리어하기도 전에 새로 도전하고 싶은 미션들이 생겨났다. 시작이 쉬운 대신 뒷심이 부족한 나에게 한 권씩 새로운 시작이 되는 출판은 적성에 딱 맞았다.

 

이제는 글을 쓰지 않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 나를 고문하고 싶다면 지하철에 앉아 있는 동안 책을 못 읽게 한다거나, 산책하면서 영감이 떠올라도 노트를 꺼내지 못하게 하면 될 거다. 그 밖에 남편과 싸운 후에 카톡에 장문의 메시지 쓰기 금지, 반신욕 할 때 책 가지고 들어가기 금지, 일하기 좋은 커다란 책상 위에 노트북 올려놓기 금지 같은 것은 날 미치게 하기 딱 좋다.

 

내가 내 손을 잡고 일으키는 일이 때로는 용기 있는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낯 뜨거운 짓이라고 자주 생각한다. 내가 하는 것은 사실 누구도 채워주지 않은 완장이라 원하면 누구든 원하면 얻을 수 있다. 반장이 되지 못한 아이가 청소반장이나 1 분단 조장이라도 하겠다고 하는 것처럼. 원한다면 누구나 레크리에이션 반장이나, 2 분단 조장이 되면 될 것이다

 

내가 가장 꼴사나워하는(부러워하는) 사람은 예를 들어 연기를 할 생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지나가다 길거리 캐스팅 당하고, 그 명함을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매니저의 끈질긴 구애로 데뷔하게 된 연예인 같은 부류다. 나로 말하자면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 최대한 꾸미고 압구정을 알짱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디션을 보고 프로필을 돌리고 다니는, 그럼에도 끝내 캐스팅되지 않아 스스로 독립영화를 찍고 주연을 맡는 그런 사람인 거다.(그런 연예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청소반장이 되어서도 꾸준히 학급 반장의 동태를 살피는 지질한 인간이다. 출판사에서 자꾸 책을 내자고 하는데 자신이 없어 도망 다닌다던가, 나는 잘 못할 것 같은데 옆에서 자꾸 부추겨서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식의 서사를 가진 작가들을 부러워하는 무명의 작가. 솔직하게 무척이나 질투하고 있다. 그 사람이 만든 책 한 권과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는 내 책과 자리와는 근본부터 달랐다. 나는 쫓아다니거나 부추기는 사람 없이 스스로 원해서 선봉에 섰다. 때로는 마치 누군가 등 떠밀어 올려 준 것처럼 포장하지만 내 뒤에는 그저 몇 명의 사람들이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내 글에 위안을 얻었다는 단 하나의 댓글 때문에 아무도 시키지 않은 글을 쓸 용기를 낼만큼 소박하고 조촐하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줌 북토크를 할 때 내가 내 일을 어떻게 여기는 지 실감했다. 나는 잘하고 싶어서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함께 책을 쓴 9명의 작가들 중에는 책 쓰는 일이 처음인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나는 대기업 면접장에 온 사람처럼 얼었다. 심지어 같이 작업하는 게 두 번째인 편집자님도 어렵기만 했다. 아주 솔직하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또 다른 책의 출간 제의를 받고 싶었다. 편집자가 좋아하는 작가가 되어본다면 어떨까. 내가 꼴사나워하던 그들처럼. 독자들의 눈치도 보였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10명의 작가 중 괜찮았던 작가 둘셋을 꼽을 때 내가 순위에 들었으면 했다. 그래서 줌으로 북토크를 했던 날 댓글창에서 익숙한 아이디를 보고 눈물이 날 뻔한 걸 꾹 참았다. 이런 나를 알고, 내 새끼 기죽지 말라고, 이미 알고 있을 질문들을 남기는 고마운 사람들의 세심한 마음이 의지가 됐다.

 

다른 작가들은 책이 세상에 나온 게 그저 즐거운데 나만 속물처럼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심장이 쿵쾅거려서 혼났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가가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면 이 꼴이 난다. 돌이켜 보니 나는 책을 출간한 후에도 축하받기를 원하거나, 자축하는 일에 서툴렀다. 열심히 애써 골인 지점에 오고선 양팔을 들어 올리고 세리머니를 하는 게 아니라 고개를 푹 숙이고 주차장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꼴이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또 자랑할 만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더 이상 즐길 에너지가 없기도 했다. 모두가 원해서라기보다 내가 원해서 한 일이니 완주했고, 거기에 만족할 수 있으면 되었다.

 

작가이기도 하고, 글쓰기 선생이기도 하고, 독립출판 창작가이기도, 1인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내가 가끔은 허상 같다. 그 모든 것이 내가 하는 일이 맞는데도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10년을 했으니 장인이나 전문가는 못돼도 적어도 사기꾼은 아닌 셈인데 여전히 미숙하고 쑥스럽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마음과 하고 싶다는 욕심만으로 계속해 나아가도 되는 건지 죄지은 기분이 든다. 나만 좋은면 되는 건가, 몇몇은 좋아해 주니까 그걸로 되는 건가. 가끔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글 같은 거 쓰지 않고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나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게 조금 더 현실적이고 사회에 이롭지 않을까.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그 기저에는 정말 잘하고 싶어 하는 욕망덩어리 내가 있었다. ‘나는 왜 그럴까 오래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겨우 알게 된 것이었다. 정말 잘 해내고 싶어서. 잘하지 못하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매사에 완벽하고 싶으니 털끝만 한 실수라도 들킬까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그제야 내가 왜 아이들이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가수들은 음악 방송 1, 음악 순위 차트 100, 콘서트 좌석 같은 숫자로 노래가 평가되고, 운동선수는 개인의 순위가 곧 나라의 순위가 되기도 한다. 개인의 성공이 모두에게 숫자와 명예로 드러나는 것은 내 기준에서 끔찍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 아이들이 그런 직업을 갖게 된다면 나는 아마 새벽기도를 가거나, 절에 들어가 살지도 모른다.

 

나는 김연아 선수가 경기를 할 때마다 티브이 소리가 안 들리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에 들어가 귀를 막았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일리 만무하고, 그저 응원하는 국민의 한 명으로 지켜보는 것인데도 그랬다. 제발 안 넘어지게 해 주세요. 실수 안 하게 해 주세요. 빙판 위에서 담대하게 경기를 하는 그녀보다 멀리 떨어져 침대 속에 파묻혀 있는 내가 아마도 더 떨었으리라. 나는 김연아 선수가 모든 연기를 클린으로 마치고 금메달을 땄다는 기사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재방송으로 경기를 봤다. 그것마저 뻔히 아는 결과를 떨면서 봤다. 한 번의 점프 실수가 내 몇 년의 노력의 성과를 좌우하다니, 내 성공과 좌절이 나라의 순위 되다니. 하고 싶은 게 많은 주제에 완벽하고 싶은 나 같은 사람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직업이었다.

 

어디에선가 운전하는 습관이 곧 그 사람의 성향을 대변한다는 말을 들었다. 직접 운전을 해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나는 내가 초보 운전자라는 걸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도로 위에서 민폐 끼지는 존재가 되는 건 생각하기도 싫었다. 운전할 때 능숙해 보이기 위해 속도를 내는 편인데 특히 뒤에 따라붙는 차가 있는지 무척 신경 쓰면서 액셀을 밟는다. 길을 잘못 들면 끼어들지 않고 한 바퀴 돌아가길 택한다. 내가 주차하는 동안 뒤에서 다른 차가 기다리는 꼴을 못 보고 자리를 양보하고 나고 지나간다. 내가 운전하는 걸 보고 남편은 눈치 안 보고 사는 사람이 운전할 때는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을 신경 쓰냐고 타박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가끔, 내가 좋아 보이는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아서 부럽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럴 때 나는 언제든 그대도 할 수 있다고 부추긴다. 목표를 낮게 잡고 느리게 가는 것을 선택하면 시작은 어렵지 않다. 베스트셀러 작가를 목표하지 않고, 그저 누군가는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할 만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목표하고 살면 된다. 출판업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한 권을 팔아 다음 책의 제작비를 모은다 생각하면 근근이 이어갈 수는 있다. 지리멸렬할 때는 있지만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질투심이 비집고 올라와서 내가 쌓아온 모든 걸 허무하게 만들 찾아오는 건 각자가 이겨내야 할 몫이다. 더불어 베스트셀러 작가가 목표는 아니나 책은 많이 팔리고 싶어 하는 이 웃기는 모순은 끊임없는 숙제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출판사가 나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독립출판계에도 스타 작가가 탄생하는 것을 보면 아픈 배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른다. 그럴 때 나는 절망하기 전, 재빨리 아이들을 생각한다. 내가 더 빨리 나아가길 포기하고 천천히 손잡고 걷던 내 작은 동료들을. 색칠공부를 하는 아이 옆에서 칼로 색연필을 적당한 길이로 깎아주는 순간을, 해가 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주는 날을, 아픈 아이와 떨어지지 않고 집에서 간호할 수 있어 다행인 순간들을 떠올린다. 그러면 일할 시간이 부족해도 욕심부리지 않고 때가 되면 아이 곁으로 돌아왔던 날들이 결국은 내가 부러워했던 그들보다 더 원했던 모습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원하는 성공의 모습은 부족하지만 이런 모양이었다.

 

이런 시대에, 내 손으로 애를 키우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자식들도 일하느라 집에 없어도 성공한 엄마, 부유한 부모를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야 어쨌든 나라는 사람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내 손으로 내 아이의 밥을 짓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고, 그 외의 시간은 글을 짓는 것으로 삶을 채워가길 바랐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대신 지겹게도 돈이 안 되는, 유명해지지 않는 내 욕망에 구김살을 반듯하게 펴기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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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성공이란 뭔가 더 대단할 줄 알았지만 저는 이 정도의 그릇인가 봅니다.

아주 어릴 때 성공한 여성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그분은 집 없이 호텔에서 생활하고, 쇼핑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컬러별로 다 사서 입는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사업가였는지, 정확히 그 저자가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을 들고 엄마에게 가서 엄마도 이렇게 성공한 딸이 좋냐고 물었던 기억은 또렷합니다. 성공한 딸이 좋다고, 너도 이 책을 쓴 사람처럼 비행기 타고 다니며 살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그때도 그냥 엄마 옆에서 사는 딸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같이 밥도 먹고 여행도 다니며 살고 싶다고요. 

제 딸이 묻는다면 저 역시 엄마처럼 대답할 것 같지만. 만약 제 딸이 저와 비슷한 그릇이라면 우리는 그때도 가까이에 있을지 모르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또 편지하겠습니다.

23. 5. 26. 

희정.

 


 

💌문화다방 소식

<산책하는 말들>이라는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를 배우는 수업이 아닌, 일상에서 글감을 발견하고 짧은 글로 연결해 보는 시간이에요. 첫 시작은 부산 '스테레오 북스'에서 6월 11일(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아직 자세한 공지는 나오기 전이지만 부산에서 제 편지를 받고 계시는 분이 계실까 싶어 소개합니다.

 

동네 좋아하는 카페나 책방에 <산책하는 말들>을 제안해주세요. 전국 어디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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