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일기

10. 마흔 일기 / 경험

삶의 포용력을 기르는 시간

2022.12.31 | 조회 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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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마지막 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왔어요.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지역을 특히 애정하는 편인데 경주는 역시나 아름다웠답니다.

구독자 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을 어디서 보내고 계실까요? 계시는 곳에서 차분이 지난 시간을 정리할 수 있길 바랍니다.

2022년 수고 많으셨어요.

 


 

10. 마흔 일기 / 경험

삶의 포용력을 기르는 시간

 

 

스무 살이 조금 넘은 과거의 나에게 요즘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그때 열심히 쌓아놓은 곳간을 털어먹으며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30대는 내 인생 그래프에서 가장 고점과 저점을 찍었던 10년이었다. 내가 출연한 프로그램이 ebs 교육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차마 눈뜨고 못 봐줄 종편의 막장 드라마라는 걸 알았다. 이럴 거면 계속 그림이나 그릴 걸. 하지만 경솔하게도 그때는 내가 예술가가 되기에는 너무 평범하고 화목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 같다고 겸손을 떨었다. 화면을 스킵하듯 몇 번만 건너뛰기를 해봤다면 앞으로 펼쳐질 파란만장을 엿볼 수 있을 텐데. 인생은 2배속도, 요약본도 없이 제시간을 살뜰하게 채워 재생됐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언제나 미정이에게 (미래의 이슬아를 '미슬아'로 부른 이슬아 작가처럼, 미래의 희정이에게) 경솔한 선택을 할 수밖에.

 

 

미대생들이 대부분 그렇듯 대학에 합격하면 자기가 다녔던 학원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 역시 고2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조 강사가 되어 입시 미술을 가르쳤다. 지금까지 내가 하던 것을 이어하는 거라 어렵지는 않았다. 배울 때나 가르칠 때나 하는 것은 비슷했다. 이젤 앞에 앉아 연필과 붓을 들고 이제는 본능처럼 익숙해진 석고상을 그리는 것. 용돈벌이나 해볼까 시작했던 이 경험은 내 인생 그래프가 최저점을 찍을 때 나를 방문 미술 선생님으로 만들어 줬다. 돈이 필요했고 할 줄 아는 것 중에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경력은 그것뿐이었으니까.

 

<부지런한 사랑> 속 이슬아 작가가 '공식적인 경력도 자격도 없었고 나 말고 나를 교사로 인정한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었다'는 구절을 읽으며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전단지를 붙였던 그때를 떠올렸다. 절박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럴듯한 문장을 써서 근처 아파트와 주택단지에 전단지를 붙였다. 동네 커뮤니티 카페에도 슬쩍 셀프 홍보글도 올렸다. 책을 출판한 적 없었던 이슬아 작가 카페 아르바이트와 누드모델 말고 다른 일로 돈을 벌고 싶어서 스스로를 교사로 임명했던 것처럼. 나도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방문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매주 두 번씩 나이가 다른 아이들 세 팀을 가르치게 되었다.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과 앉은뱅이책상에 마주 보고 있는 것은 즐거웠다. 하지만 월급날이 되면 항상 해왔던 일이듯 프로 선생님인 척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돈이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매달 봉투에 넣어 주는 과외비 외에도 감사나 존경 따위를 받으니 자꾸 부끄러워졌다.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가르쳐도 내가 선생님이 된 이유가 돈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들을 속이고 있는 것 같아서, 사기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지금은 사라진 미술잡지 아트바스(ARTVAS였는데 지금은 욕실 공사 업체 ART BATH가 검색된다) 객원기자로 일했었다. 유명한 잡지는 아니었지만 지금까지의 내 경험 중에 가장 큰돈이 되었다. 그때 보고 들은 것을 밑천으로 미술 관람에 대한 책도 쓰고 강연도 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액수가 커질수록 부끄러움도 커졌다. 아이들과 한 시간 즐겁게 그림을 그린다고 채워질 수 있는 봉투 밖 감사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가 아는 것은 겨우 30에 불과했는데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부족한 70을 채우려고 허우적거려야 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 같은 책을 읽으며 꾸역꾸역 나아가려 해도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들 이렇게 시작한다며 부족한 만큼 공부하면서 채우는 거라는 조언도 일리가 있었만, 돈이 너무 쉽게 들어왔고 스스로 떳떳하지 않았다. 지방으로 이사 온 핑계로, 육아를 핑계로, 들어오는 일을 하나 둘 거절했더니 자연스럽게 미술과 관련된 모든 일이 끊겼다. 차라리 홀가분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 합격증을 받자마자 자는 항상 일해보고 싶었던 카페에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중에서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바리스타 자격증은 없지만 그럭저럭 마실만한 커피는 만들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그곳은 낮에는 커피, 밤에는 바가 되는 아리송한 카페였는데 낮에는 에이드와 과일주스, 커피를 만들었고 밤에는 레시피 노트에 적힌 용량대로 칵테일을 만들었다. 카푸치노와 카페라테 우유의 차이, 키위는 믹서기에 넣고 오래 갈면 쓴맛이 난다거나, 가스가 떨어지면 흐물거리는 생크림이 만들어진 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각해 보니 나 같은 초보에게 그런 메뉴들을 레시피만 보고 만들게 한 사장이 제정신이었나 의문이지만 어찌 됐든 나는 즐거웠다. 무엇보다 카페든 바든 이 정도면 나도 차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게 해 줬다. (솔직히 글 쓰는 건 때려치우고 카페나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종종 생각한다. 어차피 안 되는 건 작가나 카페나 마찬가지 일 것 같아서 여전히 망설이고 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는 서래 마을에 있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메뉴판에 없는 메뉴를 주문하면서 팁을 주는 가수를 봤고, 코르크 따는 법을 배웠다, 다양한 파스타 면 중에서 나는 페투치니처럼 두꺼운 면이 취향이라는 것도 이때 알게 됐다. 회식 때는 직원들과 가게에 있는 와인을 종종 마셨는데 내 와인 지식은 아직 그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 한정돼 있다. 놀랍게도 그 한 장 짜리 와인 리스트로 지금까지 잘 사고 잘 먹고 있다. 심지어 와인을 시킬 때 내 친구들은 네가 그래도 좀 알지 않냐며 날 앞세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편의점에서 할인하는 디아블로를 두 병 샀다. 디아블로는 와인 리스트 가장 첫 줄에 있던 저렴한 와인이었다. 워낙 저렴한 와인인데 두 병으로 묶어서 더 할인하고 있어 냉큼 집어 들었다. 이렇게 쟁여놓고 혼자 홀짝홀짝 마시기에는 적격이다. 와인 두 병을 품에 안고 나오면서 20대의 나에게 감사했다. 고맙다 과거의 나야. 주말 풀타임으로 발이 붓도록 서빙을 해줘서. 그 노력의 보상을 아직까지 받고 있구나. 가끔은 업데이트 없이 너무 오래 20대의 경험을 갉아먹으며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

 

 

 

30대의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20년 뒤의 나는 어디에 서있게 될까. 확실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믿을만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작은 인간을 매일 24시간 9년이나 키우지 않았나. 조금 까탈스러운 인간도 6년이나 키웠고. 이건 정말이지 대단한 경험이었다. 체력을 바탕으로 인내와 유머를 적절하게 섞어가며 매일을 살았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육아는 태어나 처음 약자가 되는 경험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기차의 계단을 내려와야 했을 때, 엉엉 우는 아기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아기띠를 하고 지하철에 서 있을 때, 아이가 아프면 아빠는 회사에 가도 엄마는 그럴 수 없을 때, 그동안 몰랐던 세계에 깊숙이 편입되는 걸 느꼈다. 약자의 시선에서는 온통 불편한 것들뿐이다. 도서관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음성 틱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어디서 책을 읽을까. 정말 공공장소는 조용하기만 해야 할까. 어딜 가도 정숙하기를 강요받는 것이 마치 조용히 있는 것이 쉬운 사람들만 환영하는 사회 같았다. 어느 갤러리에는 유모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휠체어만 직원의 호출 후 입장이 가능했다. 잠든 아기를 태우고 그림을 볼 수 있었으면, 휠체어가 들어오는 것이 자동문 열리듯 쉬웠으면 안타까웠다.

 

집 밖을 나왔을 때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은, 이 세상을 혼자 사는 것 같았던 20대 때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사실은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만 이해했다. 아니, 이해하는 척했다. 스스로를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경험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무척 큰 도움이 되었다. 육아는 곧 삶의 포용력을 기르는 시간이었다. 육아를 경험하지 않은 30대를 보냈다면, 바쁠 때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재빨리 어깨를 비집고 나갔을지 모른다. 큰 소리로 통화하는 노인들의 전화가 청력의 문제일지 모르는 가능성은 배제하고, 배려나 예의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좀 유별나다 특이하다 싶은 사람들이 언제든 내가 될 수 있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

 

목적지를 모르고 방황하며 걷던 스무 살의 낯선 길이 결국에는 나를 이 자리에 세워 둔 것처럼, 30대의 내 경험들이 미정이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줄 것이다. 더 나아가지 못하고 20,30대의 경험에 기대어서 젊은 나를 숙주로 기생하는 중년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새해에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혹은 한 번도 완주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해야겠다. 예순, 일흔, 여든의 미정이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주기 위해서.

40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또 어딘가에 머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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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정이의 와인 추천 

 

Concha y Toro, Casillero del Diablo Cabernet Sauvignon 

Yellow Tail, Shiraz 

1865 Selected Vineyard Cabernet Sauvignon

Montes Alpha Cabernet Sauvignon

Villa M

 

제가 일했던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 중 일부를 살짝 공개합니다. 가장 자주 마시는 다섯 개를 골라봤어요. 맛을 설명할 정도로 전문적이지는 않아서 어떤 와인이냐고 물으신다면 제 입맛에는 맛있는 와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네요.(죄송;;) 그래도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눈에 띈 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보세요. 대부분 가성비 좋은 와인들이랍니다.

저에게도 추천해주실 와인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

 

 

새해에도 편지할게요. 

2022년 마지막 날.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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