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일기

19. 마흔 일기 / 곱슬머리

최양락 단발머리를 한 소녀

2023.05.17 | 조회 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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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희정입니다.

저번에 웃을 수 있는 얘기 할 거라고 얘기하지 말걸. 아니 마흔의 일상은 왜 서글픈 일만 있냐고요. 적당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자꾸 글을 쓰려고 하면 우울이 튀어나오네요. 

어쨌거나 이번 편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9. 마흔 일기 / 곱슬머리

최양락 단발머리를 한 소녀

 

 

미용실에서 항상 듣는 말은 항상 곱슬이 심하다는 것과 숱이 많다는 거였다. 매직을 자주 했을 때는 손상이 많이 됐다는 말까지 3단 콤보로 익숙하게 흘러나왔다. 웃기는 게 곱슬이 심하니 매직을 하러 왔을 테고, 매직을 자주 했으니 손상이 심한 것일 텐데, 그 악숙환의 고리의 주최자가 나와는 상관없다는 말투로 나를 탓했다. 마치 내 머리가 심각한 연구과제 라도 되는 것처럼 살피며 답이 없다는 듯, 어떻게 이지경으로 살았냐는 표정을 하고 말이다.

 

덕분에 미용실에 가면 죄지은 것도 없는데 눈치가 보였다.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들췄다 물을 뿌렸다 빗었다 심각한 얼굴을 하는 미용사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머릿결 관리 안 한 죄인, 악성 곱슬을 타고난 죄인은 늘 쭈구리가 됐다. 1인 미용실만 다니기 시작한 건 어찌 보면 상처받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낯선 사람에게, 낯선 사람이 많은 곳에서 공개적으로 머리 하기 까다로운 손님 혹은 관리 못하는 여자로 대우받는 건 창피했다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느꼈다. 나는 그냥 머리를 하러 왔을 뿐인데,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휘황찬란한 대형 미용실에서 머리에 하얀 약을 바른 상태로 이쪽으로 오실게요 저쪽으로 오실게요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었다, 머리에 커다란 기계를 연결하고 앉아 있으면 또 다른 기계를 연결한 사람이 옆 자리에 앉는 것도 어색했다. 커피며 과자며 잡지를 가져다주는 친절도 송구스럽기만 했다. 그저 내 머리를 탓하지 않는 미용사와 사소한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혼자서 조용히 머리만 하고 나가고 싶었다.

 

미용실을 선택하는 건 의외로 복잡한 일이다. 좋은 미용사를 만나는 건 단순히 머리카락을 잘 자른다거나 펌을 잘한다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스타일을 이해해 주는 사람과 지속적인 만남을 갖기로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못생겨 보이는 거울 앞에서. 짧게는 30분 길게는 몇 시간 동안 거울을 앞에두고 이야기 해야 하니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적나라한 거울을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타고나길 어쩔 수 없는 머리를 탓하는 사람 말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과는 가볍게 기분 전환하는 일상의 작은 이벤트이길 바랐다. 마음에 드는 머리는 덤이고.

 

예전에 아주 짧은 숏컷을 했었다. 둘째 아이 출산 후 임신과 출산 기간 동안 매직을 하지 못해서 엉망인 머리를 매일 질끈 묶고 다니던 때였다. 원래 머리에 미련이 없는 편이라 아깝지는 않았다. 살면서 한 번은 짧은 머리로도 살아보고 싶었고.

 

새로 생긴 아담해 보이는 미용실로 들어가서 최대한 짧게 잘라주세요. 했더니 미용사는 나에게 남편도 머리 자르는 걸 허락했냐고 물었다.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하마터면 뛰쳐나올 뻔했다) 내 머리를 짧게 자르는 데 남편허락이라니. 그래, 의도는 안다만 내가 드래그를 하든, 빨강머리를 하든, 투블럭을 하든, 남편 아닌 남편 할아버지의 허락도 필요한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 아들의 동의는 필요해 보였다. 그날부터 아들은 친구들에게 너네 엄마 남자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으니까.(아들 미안)

 

그 이후로는 더욱 미용실을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내 자존감을 깎아 먹지 않고, 불쾌한 이야기를 듣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다닐 곳은 없는 걸까. 반곱슬은 미용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매직 기술이 지금보다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아침을 든든 먹고 가도 해가 질 때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나오기도 했다. 목이랑 허리가 너무 아파서 덜 펴도 좋으니 이제 그만 놔달라고 사정하고 싶은 적도 종종 있었다. 그러니 나에게는 좋은 미용실을 찾는 게 단골 분식집 찾기 만큼이나 간절했다.

 

매직이 나오기 전에는 스트레이트 파마가 있었다반곱슬로 고통받던 10대 문희정은 스트레이트 파마라는 신기한 기술이 한국에 상륙하자마자 엄마손을 이끌고 미용실로 갔고, 몇 시간 뒤 소가 핥고 간 듯 착 붙은 귀민 3센티 칼단발이 되어 나왔다. 타고나길 머리는 또 어찌나 검은지. 얼굴 위해 2D 매직으로 쓱쓱 그려 넣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매직의 이름값 하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며 감탄했다. 숱이 절반은 줄어든 것처럼 차분해 보였다. 너무 정갈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내 모습이 예쁜 것 같기도 웃긴 것 같기도 아리송했다.

미용실에서 나와 바로 건너편에 살던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나 머리 폈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친구는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친구의 반응으로 보아 웃긴 게 맞는구나. 그래도 나는 곱슬거리는 못난 머리보다 웃기더라도 짝 펴진 머리가 좋았다. 웃기면 웃으라지 어차피 반곱슬도 놀림받긴 마찬가지였다.

 

반곱슬로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귀밑 3센티라는 교칙은 곱슬머리에게 얼마나 최악의 조건인지. 비라도 오면 드라이도 고데기도 무용지물이고, 오늘은 길에서 첫사랑 그 아이를 마주칠 일이 없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붕붕 솟아오르는 머리를 누르기 위해 모자도 써보고 보자기도 써보고 시체처럼 꼼짝 않고 자기도 했었다.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도 틀어 올릴 수도, 땋을 수도 없는 애매한 길이. 아마 그 교칙은 귀밑 3센티 단발로 살아본 적 없는 어느 머리숱 없는 공무원이 제멋대로 정한 것이 틀림없다.

 

엄마가 된 지금도 주변에 그렇게 짧은 단발을 한 사람은 보기 힘들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기장이니까. 급할 때 질끈 묶어버릴 수도 없고, 두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날뿐더러 머리끝은 안과 바깥 통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휘기 일수다. 그런 머리를 하필이면 가장 외모에 신경 쓸 나이에, 새벽같이 일어나 등교하는 아이들이 해야 했으니... 그때의 번거로움은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하긴, 기모 바지를 입혀도 모자랄 겨울에 얇은 스타킹을 신고 매일 하얀색 셔츠를 입었으니까. 그 시절 학창 시절은 번거로움을 넘어 불합리의 결정체였다.

 

그 후로도 나는 놀림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스트레이트 파마를 했다. 엄마한테 매번 돈을 달라고 하기도 죄송해서 미용상가에 가서 약을 사다 직접 한 적도 있다.(망함) 한 번 망했으면 다시 안 해야 하는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잘 해내리라 바보같이 자꾸 도전을 했다.(당연히 망함) 미용실에도 꾸준히 돈과 시간을 쏟았다. 두어 달에 한 번씩은 꼭 미용실에 가서 반나절을 보내는 삶. 시간이 아까웠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차분한 생머리로 이마에 착 붙어 있다가, 한 두 달 봐줄 만하다가, 또 구불구불해지기 연속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씀씀이가 커졌으니 동네 미용실이 아니라 매직 잘한다는 어디 멀리 미용실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녔다. 이대도 가보고 강남도 가보고 매 번 이곳이 날 구원해 줄까 희망을 품고 익숙하게 쭈구리 타임을 갖고 꽤 큰 금액의 돈을 지불하고 나왔다. 화장을 그만둔 지도 오래고, 옷 사는 것도 귀찮아서 남편이 작아서 안 입는다는 티셔츠롤 입고 다니면서도 머리만큼은 포기가 안 됐다.

 

멋을 안 부리는 것과 이상해 보이는 건 다르니까. 피부는 안 좋을 수도 있고, 옷도 못 입을 수 있는데 머리까지 귀신산발을 하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반곱슬 만이 아는 괴로움이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지 않는 자기주장 강한 머리에 지배당한 몸으로 살아봐야 이 난감함을 이해할 것이다.

 

기술은 날로 발전했고, 이제는 볼륨 매직을 하면 원래부터 생머리로 태어난 듯 살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소가 핥은 머리로 미용실을 나오지 않아도 되고, 최양락 머리라고 놀림받지 않아도 된다. 다만, 두피에서 본래 내 머리가 자라면 직선과 곡선의 만남에서 오는 이질감을 두 어달 버티다 다시 미용실로 가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 귀찮음이 번거로울 뿐. 곱슬머리를 펴기 위해 20년 넘게 미용실에 들인 내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왜 나는 반곱슬로 태어나 다른 사람은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하고 있을까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매직을 그만두기로 했다. (9회 화장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편이 그 시작이었다) 느닷없이 숏컷을 한 것처럼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를 잘 못 견디는 편인 데다 결정을 하면 잘 뒤돌아 보지 않아서 실제로 지금까지 매직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다만, '그 머리 좀 어떻게 해라'는 엄마의 말에 참지 못하고 한 번 시술을 받은 적은 있다. 새치 여색을 하러 갔었는데 매직 말고 조금 차분해지는 정도는 없을까 지나가는 말로 물어본 것인데, 친절한 미용사님께서 염색약을 바르며 (뭔지 모르지만 약간 차분해져 보이는) 시술도 함께 해주셨던 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곱슬머리가 자랐다. 그러니까 그때 내 머리는 구불구불거리는 곱슬 아래 약간 차분한 곱슬 다시 구불구불 곱슬, 아주 웃기는 꼴이었다.

 

다시 매직을 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샘솟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머리를 이 꼴로 하고 다니나 그냥 하던 대로 살까. 예전에는 곱슬이 싫어서 했지만, 사실 생머리가 젊어 보이기도 하잖아. 온갖 생각들로 다시 복잡해졌다. 이깟 머리털이 뭐라고! SF 디스토피아 영화처럼 전 세계인에 빡빡 밀고 대머리로 살았으면! 기왕 하는 거 옷도 운동복 같은 걸로 나라에서 지정해 주고 쇼핑도 안 하고 살았으면. 점점 산으로 가는 공산산주의 망상을 집어치우고 그냥 짧게 잘라버리기로 결심했다.

 

이왕 자르는 거 예전처럼 바리깡으로 다듬는 숏컷으로 돌아갈까 했지만 그건 또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었다. 머리를 말릴 필요가 없는 자유로움과 단축되는 샤워시간이 주는 해방감이 말도 못 하게 좋은 반면에, 한 달에 한 번씩 삐죽 튀어나오는 잔머리를 다듬으러 가야 하는 부지런함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귀를 파지 않는 선에서 가장 짧게 잘라 달라고 했다. 단골 미용실이었다면 내 의도를 정확하게 알았을 텐데, 내가 다니던 1인 미용실이 마침 휴가로 문을 닫아서 집에 오는 길 아무 미용실이나 들어가 잘랐다. 역시나 작은 실랑이가 있었지만 괜찮았다. 시술받은 어색한 머리칼을 내 몸에 떼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심각) 어후, 곱슬이 심하네요 숱도 많고.

(익숙). 쫌 그렇죠. 여기까지 짧게 자르고 싶은데요.

(찡그림)그러면 머리가 붕 뜰 텐데?

네 알아요. 정 안 되면 매직하러 올게요.(매직 안 함)

(심드렁) 드라이랑 고데기할 줄 아시면 뭐.

(어색하게 웃으며).

우리는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대화했다. 그 미용사는 내가 아침이면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매만지며 공들이는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 반곱슬 숏컷을 허락했다. 나는 집에 고데기도 없다는 발칙한 사실을 숨기고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머리를 다 자른 후에 차분하게 드라이를 해주셨는데 사실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미용사님의 희망을 깨고 싶지 않아서 잠자코 있었다. 나가는 내 뒷머리를 보며 다시 못 볼 스타일에 만족하시기 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두 달이 조금 안 되었다. 짧게 자른 곱슬머리의 후기를 적어보자면 대만족. 따로 관리는 하지 않고 노워시 트리트 먼트와 오일을 섞어서 바르고 나가는데 여전히 부푼 사자머리지만 다행히 참을만하다. 머리는 그날 공기의 수분감에 따라 매일 컬이 바뀐다. 아무도 이게 내 타고난 곱슬머리라고 믿지 못할 정도로 꼬물거린다. 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아는 내가 보인다. 어색하지 않다. 예쁘지도 않지만, 못나지도 않았다. 그저 나일뿐.

최양락 단발을 하고 다니던 어릴 때의 나에게도 너는 40살이 되면 자발적으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매직도 안 한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아니다, 그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건 나이가 들어봐야 안다.

 

저 머리는 드라이라도 했지. 더 심각했던 제 머리를 올리고 싶지만 용기가 안 나네요.
저 머리는 드라이라도 했지. 더 심각했던 제 머리를 올리고 싶지만 용기가 안 나네요.

 

 

 


 

무더운 날이 이어지고 있네요. 제주에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나서 이제 슬슬 또 여행이 고파지고 있어요.

구독자 님은 여행 계획 있으신가요? 5월에는 부처님 오신 날, 6월은 현충일이 있어서 여행 갈 기회만 노리고 있는 저는 아직 아무 계획도 없는데 설레네요. 부지런한 사람들은 놀 궁리도 빠른가 봐요. 가고 싶은 숙소는 벌써 다 마감이더라고요. 대단한 사람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23. 5. 17.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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