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어

폭포와 성당과 오래된

#14. 깎아 지르다, 일축(一蹴)하다

2025.04.07 | 조회 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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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깎아 지르다

: 벼랑 따위가 반듯하게 깎아 세운 듯 가파르다.

: cortar a pico

 

  • 단어를 찾은 곳

오래전 이렇게 안개가 짙었던 섬의 아침을 기억한다. 함께 여행을 떠난 일행들과 바닷가 절벽 길을 산책했었다. 어른어른 모습을 드러낸 해변의 소나무들. 깎아지른 잿빛 벼랑, 해무 아래 일렁이는 검은 바다를 내려다보던, 평소와 다르게 어딘가 서늘해 보이던 일행들의 뒷모습. 하지만 다음날 오후 같은 길을 걸으며, 그 길의 풍경이 원래 얼마나 평범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신비스런 늪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먼지 낀 마른 웅덩이였다. 이승의 것 같지 않게 홀연하던 소나무들은 철조망 너머로 줄을 맞춰 심겨 있었다. 바다는 관광엽서 사진처럼 짙푸르고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경계 안쪽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숨을 참으며 다음 안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Los pinos que se entreveían brumosos en la playa, el precipicio ceniciento cortado a pico, la frialdad inusitada de las espaldas de mis compañeros mientras contemplaban el mar negro que ondeaba bajo la bruma...

한강, 흰, 24쪽

  • 나의 단어라면
문득 많은 것들이 원래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마치 게임의 설정처럼, 혹은 거부할 수 없는 자연처럼, 이미 그렇게 되기로 정해져서 내 앞에 놓여있는 느낌. 그러나 그 곳에 오래 있어보거나 혹은 오래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결국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임을 알게된다. 그때의 기분이란, 어쩌면 나는 세상을 관광하는 것만으로는 따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깎아 지를듯 솟아있는 폭포를 바로 옆 성당의 첨탑에서 내려다 볼 것이라고 우리든 그 폭포든 생각이나 했을까. 놓여진 맨땅위에 나도 무엇인가를 만들어 놓고 싶다. 공간으로나 시간으로나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닐, 그러나 분명이 존재하는 것들.

일축(一蹴)하다

: 제안이나 부탁 따위를 단번에 거절하거나 물리치다.

: 소문이나 의혹, 주장 따위를 단호하게 부인하거나 더 이상 거론하지 않다.

: desecharla (sin más tachándola de mentira)

 

  • 단어를 찾은 곳

이 도시의 유태인 게토에서 여섯 살에 죽은 친형의 혼과 함께 평생을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실화를 읽었다. 분명히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 그렇게 일축하기 어려운 진지한 어조로 씌어진 글이었다. 형상도 감촉도 없이 한 아이의 목소리가 시시로 그에게 찾아왔다. 그는 벨기에인 가정에 입양되어 자랐기 때문에 이 나라의 언어를 전혀 몰랐으며, 자신에게 형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운 나쁘게 반복되는 자각몽이거나 착란 증상이라고만 생각했다. 자신의 가족사를 뒤늦게 알게 된 열여덟 살에, 그는 아직도 찾아오는 그 혼을 이해하기 위해 이 나라의 언어를 공부했다. 어린 형이 지금까지도 겁에 질려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알았다. 자신의 가족사를 뒤늦게 알게 된 열여덟 살에, 그는 아직도 찾아오는 그 혼을 이해하기 위해 이 나라의 언어를 공부했다. 어린 형이 지금까지도 겁에 질려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알았다.

Sin duda era una historia ficticia, pero había sido escrita en un tono tan serio que no podía desecharla sin más tachándola de mentira.

한강, 흰, 31쪽

  • 나의 단어라면
오래된 사람의 오래된 시를 읽었다. 수많은 세련된 사람들의 글을 읽었는데 나는 왜 또 다시 이런 오래 되고 낡은 말들에 눈물을 흘리는가.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고 일축해 버리기는 싫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수시로 먼지를 일으키는 모래같은 마음이 나에게 있다. 그들의 안녕과 나의 안녕이 무엇이 다를까. 그들의 옛스러운 말투를 좋아하나? 아님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단어들 때문일까. 쉽게 지워지지도 않았을 펜촉으로 눌러담은 그들의 자국이 내 마음 구석에 아직 펴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추신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월요일에 글을 보내다 보니 우연히 제 생일과 겹치네요. 그래서 제 생일 날짜와 같은 시간에 글을 보냅니다 ㅎㅎ
오랜만에 읽고 마음이 좋아진 오래된 시는 윤동주 시인의 <편지>입니다. 말숙한 편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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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서리

    0
    7 day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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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비

    0
    6 day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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