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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랑 미라

#13. 이따금, 물성(物性)

2025.03.31 | 조회 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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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따금

: 얼마쯤씩 있다가 가끔.

: a veces

 

  • 단어를 찾은 곳

자신에 대한 연민 없이, 마치 다른 사람의 삶에 호기심을 갖듯 그녀는 이따금 궁금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먹어온 알약들을 모두 합하면 몇 개일까? 앓으면서 보낸 시간을 모두 합하면 얼마가 될까? 마치 인생 자체가 그녀의 전진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그녀는 반복해서 아팠다. 그녀가 밝은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힘이 바로 자신의 몸속에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그때마다 주춤거리며 그녀가 길을 잃었던 시간을 모두 합하면 얼마가 될까?

Sin compasión de sí misma, como si sintiera curiosidad por la vida de otro, a veces se hace estas preguntas: 

한강, 흰, 80쪽

  • 나의 단어라면
모르던 세상에서 살면서 이따금 느끼는 점에 대해 말씀드려 볼게요. 제가 여기 와 보니 어디 사람들은 빵만 주구장창 먹고, 어디사람들은 뻑뻑하게 고기만 잔뜩 구워먹어요. 우리는 밥을 말아먹기 위해 국을 놓지만 어떤 사람들은 식사의 맨 처음에 속을 달래기 위해 국을 놓고요. 말로 듣는 것과 눈으로 보는것이 참 많이 다르듯 전 이곳에서 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합니다. 요즘 저는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가 고민해요. 제 몸은 밥을 먹고 살아가지만, 마음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는지요.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하던 것처럼 제 마음에 김치와 같은 존재를 찾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나의 체력이 되어주고 동시에 목적이 되어주는 존재에 대해서요. 나와 너무 다른 것을 먹고, 다른 삶을 가지고,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더더욱 내 냄새가 나는 구석을 찾고 싶어져요. 선생님은 무엇을 먹고 살아 가시나요?

물성(物性)

: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

: 『철학』 자아에 대립된 물건의 보편적인 성질.

: materia

 

  • 단어를 찾은 곳

통증 때문에 그녀는 전신 엑스레이을 찍은 적이 있다. 청회색 바닷속 같은 뢴트겐 사진 속에 희끗한 해골 하나가 서 있었다. 사람의 몸속에 돌의 물성을 가진 단단한 것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다. 그보다 오래전,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그녀는 뼈들의 다양한 이름에 매혹되었다. 복사뼈와 무릎뼈. 쇄골과 늑골. 가슴뼈와 빗장뼈. 인간이 살과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Le pareció asombroso que se sostuviera dentro del cuerpo humano algo duro hecho de la misma materia que la roca.

한강, 흰, 88쪽

  • 나의 단어라면
살아 쉼쉬는 것을 본 일은 많은데, 죽어 굳어있는 걸 본 일은 많이 없다. 여행에서 들린 박물관의 지하는 미라를 전시해 놓았다. 나는 그날 그 죽어 굳어있는 것을 꽤 많이 보았다. 그것도 열심히. 뮤지컬을 좋아하는 친구가 한국에 핫셉수트라는 여성 파라오에 관한 작품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대충 3500년 전의 인물을 가지고 뮤지컬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내가 그날 눈을 감은채로 검게 굳어있는 그녀를 만났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머릿결도 보이며 편안히 누워있는 그녀를 옆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물성을 가지는 우리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미동도 없는 그녀와 달리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 또한 그러했다.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성의 변화에 불과하는 일은 아닐까 생각했다.

추신

마냥 짧다고 할수만은 없는 베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유명하고 멋있는 것을 보면 느끼는 것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옆에 누워있는 개들, 오래된 거리 같은 것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집니다. 왜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대신 어떻게 살아가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저는 이번 여행에서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무슨 맛으로 살 것인가로 바꾸어 물어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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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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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y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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