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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랑

#38. 푸지다, 훈기(薰氣)

2025.09.29 | 조회 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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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지다

: 매우 많아서 넉넉하다.

 

  • 단어를 찾은 곳

"빨리빨리 사람들이 뜸한 곳으로 가고 싶어. 여기서는 안돼. 내리는 족족 사라져 버리잖아. 어서 가자." 이모는 내린 눈이 사람들 발길에 짓밟히는 모습을 진정으로 보기 힘들어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눈을 확인하는 일이 이모 인생에 닥쳐온 최고의 고통인 것처럼 굴었다. 나는 축축하게 젖어오는 이모의 뜨거운 손을 잡고 어두운 거리를 달렸다. 달리는 우리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눈은 점점 푸지게 쏟아지고 있었다.

양귀자, 모순, 234쪽

  • 나의 단어라면
너는 푸지게 밝고 나는 그만큼 어두워 너는 한참 위에 있고 나는 그만큼 아래야 나는 너의 사진을 찍어 초점은 흐렸다, 잡혔다 너는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너의 사진을 찍어 초점은 잡혔다, 흐렸다 너는 나를 몰라 하지만 나는 너가 좋아 그 마음, 화면도 아는지 초점은 흐렸다, 잡혔다 <팬이야>

훈기(薰氣)

: 훈훈한 기운.

: 인정으로 생기는 훈훈한 분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훈김.

 

  • 단어를 찾은 곳

그러나 정말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어머니의 심상치 않은 음성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손님이 왔다고 근무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라는 전화를 할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차피 밤이면 만날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우리들 사이에 맺어진 무언의 약속은 돌아오면 적어도 두어 밤은 자고 간다는 것이었다. 마치 애비의 훈기를 덜어주려고 돌아오는 것처럼.

양귀자, 모순, 259쪽

  • 나의 단어라면
종로였어. 밤이었고, 좁은 골목길를 가다 문 닫은 가게를 지나쳤어. 문은 닫았지만 간판은 켜져 있었어. 새빨간 네온사인이 그 좁은 거리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어. 나는 역을 가기 위해 그 곳을 지나쳐야 했고 그곳을 지나치자 내 모든 것이 빨갛게 물들었어. 말그대로 파묻혔어. 나는 단번에 사랑은 이런 것이란 걸 알았어. 동시에 내가 여태 해왔던 사랑은 물감 같은 사랑이었다는 걸. 둘다 묻으면 색이 바뀌니까 같은 것인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물감같던 내 지난날들은 몸에 지워 내기 힘든 색을 남기고 말았어. 나는 색보단 빛으로, 서로를 서로의 빛으로 물들이고 싶었던 것 같아. 물들게 하는 것은 똑같지만 지나고 보면 그건 빛이었기에, 나는 나로, 너는 너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때론 뜨거워 조금 검게 탄 자국은 남겠지만 그정도야 뭐. 나는 이제 너에게 나의 색의 빛을 내뿜을 거야. 너도 그것을 나에게 내뿜고 우리는 서로의 빛으로 물들을 거야. 그러나 우리는 더러워지지 않을 거야. 이게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일 거야.

추신

쓰다보니 오늘은 빛이 주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퇴근길의 좁은 골목, 학교 축제.. 빛이 두드러지는 공간에 많이 있던 탓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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