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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

#30. 충동질(衝動질), 지청구

2025.07.28 | 조회 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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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충동질(衝動질)

: 어떤 일을 하도록 남을 부추기는 짓.

 

  • 단어를 찾은 곳

 

사랑의 배신자를 처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꿈속에서도 생각나지 않도록 완벽하게 잊어주는 것이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진모는, 아마 진모라면 더욱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비돌기의 배신으로 보스에의 꿈이 조금 무의미해졌겠지만, 그 꿈을 충동질해줄 다른 여자가 또 나타날 것이 틀림없으므로.

그날, 이모네 집에서 보낸 시간들도 진모 표현처럼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나야 진모 때문에 이미 불길했었다 하더라도 어머니 또한 한 가지도 제대로 넘어가 주는 것 없이 사사건건 토를 달았다. 이모 집에서 보는 어머니는 늘 그랬지만, 그날은 좀 더 완강했다.

양귀자, 모순, 136쪽

  • 나의 단어라면
바다를 떠나 비린내라곤 일식당에서나 맡을 수 있는 육지로 떠나온 날, 엄마의 그 말은 내 마음에 큰 바다를 남겼다. 엄마는 사람을 볼때 바다같이만 보면 된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바닷물이 무슨 색이냐고 물었다. 고민하는 내게 푸른 대낮 햇살에 비치는 바닷물은 파랗고, 까만 돌덩이에 부닥치는 바닷물은 하얗고, 해가 지고 있을 땐 금처럼 노랗고, 밤이 다 되어서는 검다고 했다. 무엇이든 한가지 색을 가진 것은 없다고, 그 투명한 물도 매번 다른 색이라고, 우리는 바다에서 빌어 먹고 살지만 동시에 언제든 바다에서 죽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바다든 사람이든 그 앞에서 섣불리 스스로를 충동질하는 것을 멈추라고 했다. 어떤사람이든 함부로 마음을 주거나 거두지 말라고. 지금 내 앞에 싱긋 웃어 보이는 너는 무슨 색을 보여주고 있을까. 가만히 앉아 바다 대신 컵에 담긴 에이드를 쳐다본다. 투명하다 이내 금새 탁해지는, 오늘은 노란색의 레몬 에이드.

지청구

: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는 말. =꾸지람.

: 까닭 없이 남을 탓하고 원망함.

 

  • 단어를 찾은 곳

이모가 유행가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주리가 어려서 피아노학원에 다닐 때 이모가 만사 젖혀 놓고 열심히 주리 따라서 같이 배운 것도 모두 유행가 때문이었다. 훗날 주리는 배운 실력으로 모차르트를 연주했고, 이모는 '예스터데이'나 '그대는 나의 인생' 같은 유행가를 연주했다. 지금이라도 이모는 우리가 신청만 한다면 '열애'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같은 곡을 연주해줄 수도 있을 것이었다.

맨날 유행가만 듣는 주제라고 지청구를 들은 자기 어머니를 위해 주리가 "엄마, 그럼 오디오 끄고 '가시나무' 연주해 주세요. 정말 좋던데?" 하는 것을 보면 요즘 이모가 연습하는 피아노곡은 아무래도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인 모양이었다. 이모가 좋아하는 유행가는 세대를 뛰어넘어 내게도 늘 좋았기에 틀림이 없 을 것이었다.

양귀자, 모순, 137쪽

  • 나의 단어라면
바다에서 불꽃놀이라니 얼마나 가소로운지, 끝도 보이지 않는 바다에 폭 폭 터져대는 불꽃을 쏴대며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불꽃은 물론 밝고, 빨갛고, 선명했지만 순식간에 검은 화면같은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떨어지는 잿가루는 바다에 잠겨 티도 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괜히 이 작은 불꽃이 나의 모습같다고 생각했다. 아득한 바다같은 세상 속에서 작고 귀여운 폭발, 결국은 아무 티도 나지 않는. 이 넓디 넓은 세상에서, 다시, 우주에서 나는 왜 이렇게 불타려 하고, 빛나려 할까. 천문학자들의 자살률이 다른 직종보다 높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이 말도 안되는 우주에서 나는 더 말도 안되게 작다는 것을 확인하는 사람들이까 그렇겠지. 그들에겐 죽음이 그들의 폭발인 것인가. 오래 전에 우리는 바다를 건너지도 못했다고 한다. 거대한 운명속에 계속해서 맞서는 우리의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깜깜한 밤공기에 계속해서 불꽃을 피워대며 나는 계속 웃었고, 그만 웃으라는 지청구가 있고서야 멈췄다.

추신

올해 제 역마살의 종착지인, 제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푸른 바다에 까만 현무암 바위들을 보며, 이번 나의 서재의 작은 소재는 바다로 해보기로 했어요. 며칠 바다를 보며 느끼는 것들과 함께 나의 단어를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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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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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비

    0
    4 months 전

    밀린 글들 읽는데 잼나네요 댓글 남기고갑니다 총총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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