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획물(鹵獲物)
- 단어를 찾은 곳
아버지는 노획물을 혼자 차지하고 시치미 떼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반드시 어린 딸에게 일정 부분을 나누어주는 신사도가 있었다. 내 손에 돈을 쥐어주며 아버지가 했던 말들은 또 얼마나 신비로웠던가.
"안진진. 우린 지금 비밀을 나눈 거야. 너 반쪽, 나 반쪽.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네 것과 내 것을 서로 맞춰봐야 하니까 잘 간직해야 돼. 두 개가 딱 맞아야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어. 안 맞으면 우리는 영원히 아빠와 딸 사이인지 모르고 슬프게 사 는 거야.”
"그럼, 이 돈을 반쪽으로 찢어야 하는 거예요?” 나는 종이돈을 흔들며 그렇게 물었다.
“아니야, 돈은 찢는 게 아니라 쓰는 거야. 그건 네 마음대로 쓰 면 돼.”
“그럼, 뭘로 맞춰봐요?”
“여기 있잖아? 언제나 잊어버리지 않고 지니고 다니는 것. 바로 이 손!”
아버지는 자기 손과 내 손을 활짝 펴게 해서 서로의 손바닥을 맞닿게 했다. 여덟 살 어린 계집애의 작은 손과 서른여덟 살 아버지의 큰 손은 잘 맞춰지지 않았다.
양귀자, 모순, 89쪽
- 나의 단어라면
부랑(浮浪)
: 일정하게 사는 곳과 하는 일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님.
- 단어를 찾은 곳
아버지가 건달의 삶을 지나 서서히 부랑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은 어머니의 양말 장사가 이제는 어엿한 생계 수단으로 자리 잡던 시기와 일치했다. 어머니의 좌판은 날로 넓어졌고, 어머니가 파는 양말은 나날이 가짓수가 늘어갔다. 아버지는 몇 장의 지폐를 훔쳐 집을 나갔다가 돈이 떨어지면 돌아오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훔칠 수 있는 지폐가 제법 양이 많아지면서 아버지가 집에 없는 날들도 덩달아 많아졌다. 어쩌다 집에 돌아오는 날에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아버지 혼자 쉴 새 없이 정색을 하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누구나 다 똑같이 살 필요는 없어, 그렇지? 여보, 내 말이 맞지?”
나를 보고도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양귀자, 모순, 91쪽
- 나의 단어라면
추신
할 일은 많고 생각도 많고 시간은 없어서 지각했습니다.. 메번 낯선단어들을 익숙한 문장들 사이에 넣어가는 일을 하다보니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다고 느낍니다. '나의 단어' 자체도 제게 낯선 단어, 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한 주입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