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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국수, 버스기사

#36. 상면(相面)하다,해찰

2025.09.17 | 조회 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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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면(相面)하다

: 서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 보다.

: 서로 처음으로 만나서 인사하고 알게 되다.

 

  • 단어를 찾은 곳

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무엇, 부딪쳐 깨지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장렬한 무엇. 그 무엇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힘이 사랑이라면,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손을 잡았다.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처음으로 나, 안진진의 사랑을 상면한 이후 내 기분은 급격히 저조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나는 다만 이것이 사랑인가, 하고 사랑을 묻다가 이것이 사랑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답했을 뿐이었다.

양귀자, 모순, 195쪽

  • 나의 단어라면
엄마는 얼마나 센가. 여름 한철 죽을 더위를 보내고 그리운건 엄마 비빔 국수. 흙바닥 구르며 놀다 달려가 찾는건 엄마 된장찌개. 뱃속을 나가 세상을 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집 밖을 나가 상면하는 음식들은 새로운 세상이 되지만 집은 아니다. 나가 먹은 음식이 맛있으면 엄마 생각나는 맛이고, 조금 더 맛있으면 엄마 음식보다 맛있는 맛. 투정은 금세 익어 입맛이 되고, 사랑은 푹 익어 빨간 양념이 되고. 집 한구석 보글거리는 냄비는 내게 얼마나 큰 화상을 입혔는가. 나는 그렇게 엄마의 화상이 되어, 등짝을 맞고. 그리운건 비빔국수.

해찰

: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침. 또는 그런 행동

: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함.

 

  • 단어를 찾은 곳

그리고 시작이었다. 나는 단 한 숟갈의 밥도 먹지 않았다. 김장우의 강권으로 회 몇 점을 먹은 것이 전부였다. 어느 즈음에선 김장우가 더는 주문을 해주지 않아 내가 직접 나서야 했다. 그때까지 나는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손님이라곤 우리뿐이어서 밖에 나가 해찰을 하고 있는 여주인을 찾아 술을 더 주문하고 지금까지의 음식값을 모두 치르고 돌아온 기억까지 생생하니까. 그리고 또, 아무리 술을 마셔도 김장우의 빈약한 지갑 사정을 잊어버리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마음속으로 엄중히 경고했던 것도 모두 기억할 수 있었다. 이봐, 안진진. 잊어. 끊어. 제발 맹목적으로 마셔 봐, 제발..•..

양귀자, 모순, 201쪽

  • 나의 단어라면
너는 커서 무슨 일을 할거냐는 말에 그는 버스 기사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늘 해야할 일이 있으면 놀이터 같은 곳 구석에서 해찰을 일삼던 그였기에, 매일같이 정해진 길을 다녀야하는 버스기사가 되고 싶다는 말은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확고하고 또 비장했다. 나는 그만큼 뚜렷한 눈빛을 본 일이 없었기에, 그것이 거짓이나 장난이 아님을 알았다. 그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버스가 매일 같은 길을 가기 때문에, 버스를 타는 사람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고 했다. 하나는 매일같이 그 버스를 타는 사람, 출퇴근이나 등하교를 하며 늘 그 비슷한 시간대에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어쩌다 버스를 타는 사람. 데이트를 온 연인이나, 여행온 외국인같이 가끔씩 타는 사람들이다. 그는 두 종류의 사람을 수없이 볼 수 있이 좋다고 했다. 늘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본인 때문에 삶의 계획을 유지하고 , 동시에 타인의 설렘을 함께 실어 가는 일. 그는 꼭 버스기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늘 누군가의 왼쪽 상단에 앉아 있고 싶다고 했다.

추신

복학한지 3주차, 삶은 늘 풋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리구리함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이례적인 바쁨을 겪다 연재가 늦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같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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