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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박사와 혐오감

#32. 이골, 얼치기

2025.08.12 | 조회 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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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골

: 아주 길이 들어서 몸에 푹 밴 버릇.

 

  • 단어를 찾은 곳

진모는 그렇게 돌아왔다. 물론 집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8월 23일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제부터 어머니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생애 중 가장 고요했던 지난 몇 년 덕분에 당신의 저금통장에는 얼마간의 돈이 고여 있었다. 그것이 어머니의 무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피해자를 만나 합의를 하고 진모에게 뒤집어 씌워진 어마어마한 죄목들을 물렁물렁한 죄목으로 바꾸는 일부터 착수를 했다.

그런 일이라면 어머니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이어서 진모가 어머니를 단련시켰다. 어머니는 경험 풍부한 시장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진모의 뒷바라지를 너무도 완벽하게 처리 해나갔다. 틈틈이 통곡하고, 틈틈이 진모 쫓아다니고, 그런 어머니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양귀자, 모순, 156쪽

  • 나의 단어라면
티비에 나온 심리학 박사는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는 사랑은 결국 호르몬 반응이자, 수많은 전기신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그는 그런 대답을 하는 것에 이골이 나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일에 사람들은 신기했는지 박사는 많은 곳에 섭외가 되었다. 한번은 작은 북콘서트를 간 날이었다. 평생 뇌 연구원으로 살아온 남자가 여자를 만나 난생 처음 사랑에 빠지는 연애 소설이었다. 남자는 사랑에 빠진 스스로를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뇌를 실험해가며 성공적인 연구 결과를 내었다. 그 과정에서 여자와의 다툼도 있었지만, 결국 사랑한다는 흔하고 보통의 엔딩을 가진 작품이었다. 그런 소설을 놓고 작가와 팬이 이야기하는 곳에 박사는 아주 제격이었던 셈이다. 박사는 여러 질문들을 받았고 대부분 소설 속 남자가 하는 이야기들을 잘 풀어 설명하는 역할을 했다. 행사가 잘 마무리될 때쯤, 박사는 새로운 연구거리를 받았다. 질문의 형식으로. "남자의 그 수많은 호르몬 작용들이 왜 그 여자를 볼 때만 일어나는 건가요?"

얼치기

: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

: 이것저것이 조금씩 섞인 것.

: 탐탁하지 아니한 사람.

 

  • 단어를 찾은 곳

이상한 일이지만, 솔직함에 관한 문제라면 김장우보다 나영규 앞에서 나는 훨씬 자유로웠다. 나영규한테는 솔직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자존심이 상했다. 나영규는 내 어머니가 시장에서 양말을 팔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며, 얼치기 건달이었던 진모가 마침 내 큰 사건을 터뜨리고 구속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으나, 나영규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쩌면 이 솔직함으로 나영규를 시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양귀자, 모순, 157쪽

  • 나의 단어라면
불가항력적인 혐오에 대한 죄책감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혐오는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 때 쯤 어디선가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좋지 않은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내가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혐오는 때론 '하는 것'이아니라 자연스레 '드는 것'이 된다. 좋지 않는 냄새, 좋지 않은 외모, 좋지 않은 상황… 나는 이것들이 싫어하지만, 그것을 어느 범위까지 당연히 생각하고 드러내야 하는가. "내가 사고가 나서 다리 한쪽을 잃어도 나를 사랑해 줄거야?" 연애중 귀여운 질문의 정답은 "당연하지." 하지만 정말로 당연할까. 다리가 잘리든, 방구냄새가 너무 심하든, 살이 잔뜩 찌든, 죽을 병에 걸리든 사랑해야만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사랑은 얼치기같은 사랑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어느정도까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사랑인 것은 아닐까. 자연스레 생각이 '드는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추신

글을 쓸 때에도 공부가 더해지면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심리학에 관심이 있지만 정확한 용어를 자유롭게 사용하진 못해서 글에 자신감이 덜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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