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어

빵과 약과

#06. 무연(憮然)히, 여남은

2025.02.10 | 조회 103 |
0
나의 단어의 프로필 이미지

나의 단어

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무연(憮然)히

:크게 낙심하여 허탈해하거나 멍하게.

 

  • 단어를 찾은 곳

그 개는 계속해서 그녀를 무서워했다. 일주일이 지나 이제 익숙해질 만도 했던 마지막 날에도 그녀를 본 순간 몸을 낮추고 뒷걸음질쳤다. 걷어차이거나 목을 졸린 것처럼 옆구리와 목을 스스로 비틀고 외꼬았다.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지만 그 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것은 오직 사슬이 시멘트 바닥에 끌리는 낮은 소리 뿐이었다. 여러 달 얼굴을 익혔을 어머니를 보고도 걔는 뒷걸음질 쳤다. 괜찮다, 괜찮다니까. 낮은 소리로 달래며  어머니는 무연히 그녀를 앞질러 걸어 갔다. 끌끌 혀를 차면 중얼거렸다...............모진 일을 오래 당했던가보다. 

한강, 흰, 62쪽

  • 나의 단어라면
우울해서 빵을 샀다. 가던 빵집에서 이것저것 빵을 잔뜩 사고, 그 앞 터미널에서 바다가 있는 곳중에 가장 빨리 출발하는 버스를 물었다. 슬쩍 웃으며 5분뒤 군산행 버스는 어떠냐는 터미널 직원. 바다에 도착해 사연있는 사람처럼 뚝방같은 곳에 앉아 무연히 바다를 쳐다 보았다. 옆에서 낚시를 하던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혼자 왔는지 등을 이야기하다 어느새 그 지역이 예전에 중국인들이 많이 건너와 살아 짬뽕이 맛있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 저녁메뉴가 정해졌다. 잡혀있던 손바닥만한 물고기가 더이상 팔딱거리지 않을 때쯤, 빵을 하나 건네며 나는 그 아저씨와 작별했다. 알지도 못하는 아무개와의 따뜻한 순간들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남은

: 열이 조금 넘는 수

 

  • 단어를 찾은 곳

겨울이 유난히 혹독한 이 도시에서 그녀는 십이월에 밤을 통과하는 중이다. 창밖은 달 없이 어둡다. 아파트 뒤편의 자그마한 공장 건물은 보안 때문인지 여남은 개의 전등을 밤새 밝혀놓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전등들이 띄엄띄엄 만들어놓은 고립 된 빛의 공간들을 그녀는 지켜 본다. 이곳에 온 뒤 부터, 아니 실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그녀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난다 해도 창밖은 지금처럼 캄캄할 것이다, 요행히 좀 더 오래 잠들었다. 깨어날 수 있다면, 더디게 밝는 새벽에 푸르스름한 빛이 암흑의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스며 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저 불빛들은 여전히 명료한 정적과 고립 속에서 하얗게 얼어붙어 있을 것이다.

한강, 흰, 83쪽

  • 나의 단어라면
먹을 거리를 주는 것만큼 빨리 친해지는 일도 없다고 생각해, 한국에서 작은 약과 두봉지를 사왔다. 처음엔 두세개씩 말그대로 퍼 줬다. Hola!하며 인사한 모든 사람에게.. 심지어 처음 간 한식집 사장님에게는 한 주먹을 퍼다 드렸다. 한달이 지나 이제 봉지에는 여남은 개 정도 뿐이 남지 않았다. 이제는 밥도 먹고 또 술도 먹기로 여러번 만나는 사람에게만 장난처럼 건네야 할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슬슬 신중해지는 내가 우습지만서도 이런 일에 체력을 쏟는 것이 아직은 즐겁다.

추신

책을 몇번이고 읽다보니 보이지 않던 재밌는 지점들이 보입니다. 흰에 나오는 모든 숫자들은 다 한글로 적혀있다는 걸 아셨나요? 일곱, 스물여섯,십이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나의 단어

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뉴스레터 문의JH1047.2001@maily.so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뉴스레터 광고 문의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