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어

노트와 절벽

#27. 부지기수(不知其數), 술회(述懷)

2025.07.08 | 조회 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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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기수(不知其數)

: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음. 또는 그렇게 많은 수효. ≒기수부지.

 

  • 단어를 찾은 곳

내가 이모부의 주선으로 사무원이란 직업을 얻기 전에 전전했던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 중에서 단연 압도적이었던 것은 서비스업이었다. 원하기만 하면 커피집이나 레스토랑, 호프집까지 여대생 서빙을 구하는 업소는 부지기수였다. 김장우를 만난 것은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밤 시간만 일하던 작년 늦봄이었다.

그는 두 명의 여자와 함께 내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들어왔다.

덥수룩한 머리에 우중충한 사파리를 입은 남자 하나와 화사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자 둘을 테이블에 안내하고 돌아온 여주인은 입을 비죽하게 내밀었다. 자신이 경영하는 이 업소가 상당한 고급 음식점임을 늘 자랑으로 내세우는 여주인이 입을 비죽 내민 이유는 간단했다. 사파리를 입은 남자가 불이 너무 어둡다고, 너무 어두워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갈지 코로 들어갈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양귀자, 모순, 112쪽

  • 나의 단어라면
제 선물은 빈 줄글 노트에요. 저는 모든 글에는 무게가 있다고 생각해요. 글로 꽉 찬 노트가 새 노트보다 더 무거운 까닭은 단순히 종이에 묻어난 잉크의 무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 무게에는 문장을 다듬기 위한 고민의 시간이나, 좋은 글이 생각나 후다닥 노트를 펼치던 설렘, 쓰다 말아버린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 들이 들어있다고 느껴요. 부지기수로 떠오르는 생각과 말 중에서 글로 쓸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글이 말보다 무겁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조금 가볍게 쓰는 편인데요, 선생님은 오히려 말로 못할 이야기들을 글로 써내시는 분이라고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노트가 나중에 얼마나 무거워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드립니다. 부디 무겁게 써주세요.

술회(述懷)

: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을 말함. 또는 그런 말.

 

  • 단어를 찾은 곳

니는 이모가 변했다고 그랬다. 내가 보기엔 두 사람 다 변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상대의 삶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쌍둥이의 숙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싫어하는 사람은 이모가 아니라 이모부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 적잖이 이모 도움을 받은 것 때문에 자격지심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진모가 어렸던 시절, 걸핏하면 한밤중에 이모가 달려와 우리 남매를 긴급 구조해서 이모 집으로 데려가곤 하던 그 무렵에 생긴 앙금이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다. 소동이 가라앉고 나면 다음날 어머니가 와서 우리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가야 했던 그 시절에 종종 보았던 이모부의 차가운 눈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술회를 그대로 옮기면 이런 것이었다.

양귀자, 모순, 125쪽

  • 나의 단어라면
누구나 말 못할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을 마음 속에 숨겨 놓는 것과 어딘가 내버려두는 것은 다른 일이다. 하물며 그것이 같은 위치라 할 지라도, 서랍 안에 숨겨놓은 편지와 들어간 줄도 모르는 작은 볼펜 한 자루가 다르듯이. 한이 섞인 어머니의 술회와 오래된 책장에서 먼지를 털어내듯 꺼낸 나의 옛날이야기는 다르듯이. 어느날부터 위치나 모양이 같은것이 비슷한 마음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생각을 버렸다. 발을 헛디뎌 벼랑 끝을 붙잡고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과, 땅에서부터 꾸역꾸역 힘을 내어 절벽을 올라와 마지막 고비를 앞둔 사람은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삶이 가려버린 하나는 시작에서 비롯되는 미지의 두근거림.

추신

단어의 뜻을 찾아 쓰다보면 느껴왔던 단어의 뉘앙스보다 그 뜻이 더 강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부지기수라는 말이 흔하다는 말 정도로 이해했었는데, 헤아릴 수 없는 정도로 많다는 뜻인 것 처럼 말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면 단어의 뜻이 조금 변해야 하는 것인지, 뜻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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