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촌은 젊다.
이따 빨잠에서 보자.
신촌역에 내려, 유플렉스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나오면 빨간 잠만경이 우뚝 서 있다. 20살이 되고 처음 선배들과 술집으로 이동하며, 저게 빨간 잠만경이고, 우리는 빨잠이라고 부른다고 배웠다. 이따 빨잠에서 보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이 말을 자신의 암호집에 넣어 놨을까.
이어지는 신촌 스타광장에선 사시사철 버스킹이 있다. 20살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모여, 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일이 매일 일어난다. 한강공원 앞 실력 있는 혈혈단신 버스킹과는 또 다르다. 가끔은 어설프고, 본인들이 더 신나 있기도 하다. 더한 전문성을 갖추기엔 시간이 없다, 같이 즐기자 하고 말을 거는 듯한 표정이다. 딴지를 거는 사람도, 걸 이유도 없다. 어설픔과 젊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베스트 프렌드다 .
밤이 되면 다른 버스킹이 이어진다. 저녁이 오면 우리는 마치 할당 받은 듯이 신촌 속 수많은 가게들로 들어가 목을 축인다. 마시고 마시고 노래하고 노래하고… 술 앞에선모두가 평등해서, 동경하던 멋진 선배든 좋아하던 예쁜 동아리 누나든 모두 취한다. 그땐 곳곳이 공연장이 된다. 해본적도 없는 스텝으로 길을 거닐고, 모르는 사람들이 합동으로 담배를 핀다. 피곤한지 먼저 벤치를 선점한 사람도 있다. 오늘 대낮 열정이 가득했던 그 광장에서 비틀비틀 왈츠를 춘다. < 주의 : 공연자는 기억하지 못할 수 있음 .>
젊음을 수혈하러 나온 사람들도 보인다. 미래를 위한 지겨움을 참다 나온 수험생들, 머리와 몸은 그대로이지만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군인들, 오랜만에 볼 일이 있어 온 선배님들.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퉁쳤던 많은 불편함을 더이상 감수하지 않는, 혹은 그럴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연령 파라바이오시스 ’heterochronic parabiosis’ 실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연령이 다른 쥐의 옆구리를 접합해 함께 혈액을 순환시키면, 늙은 쥐가 젊어 진단다. 군복무와 교환학생으로 2년만에 찾은 신촌…어서 저를 젊게 해 주세요.
2. 다시 본 신촌은 마냥 젊진 않다.
나이를 한살 먹을 때마다 몸이 진짜 말을 안들어. 늙었다니까.
엄마가 간만에 대폭소를 했다. 아니 근데 진짜인 걸… 스물다섯 되니까 겨울엔 입술이 트고 장마엔 무릎이 시리다니까. 25살때부턴 성장이 아니라 노화라고 한단다. 20대의 5년을 잡아먹은 신촌이 내게 속삭이는 듯 하다. 다시 온 신촌은 여전히 젊었지만, 이전처럼 마냥 익숙하진 않았다. 마냥 녹아 드는 일에 작은 머뭇거림이 생겼다. 물만 보면 뛰어 들어가던 아이가, 이제는 수심도 보고, 물살도 보는 신중함이 생겼달까.
신촌이 젊음의 상징인 것과 별개로 그 안의 우리는 부정할 수 없이 늙어간다. 이 젊음의 공간에서 늙어간다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어색할 때가 있다. 우리는 수많은 젊음의 언어를 이곳에서 배웠다 . 하염없이 내 시간을 뱉어가며 , 우리는 젊어지기 위해 늙어가는것인가?
다시 찾아온 신촌의 한복판에서 지난 시간들을 곱씹는다. 누가 봐도 젊은 이 거리가 굉장히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젊음과 늙음의 묘한 경계를 찾아낸다. 나도 그 중 하나가 되고 있음을 느끼며.
한강 작가의 여수의 사랑 25쪽엔 이런 문구가 나온다.
‘마치 밤이 깊을 때마다 새벽을 믿지 못하듯이,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을 의심하듯이’
신촌. 젊음이 끝없이 덧입혀지는 이곳에서,
나는 늙음을 믿지 못하고 못내 젊음을 의심한다.
추신
오늘은 번외편입니다. 제가 신촌을 소재로 하는 매거진에 지원하면서 쓴 짧은 글입니다. 매거진 형식이라 조금 다른 말투로 적었으니 어색해 하지 말아주세요. 나의 단어는 평소 나의 문장에서 잘 보이지 않는 단어들을 찾아나가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알던 단어와 일을 새롭게 접하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저는 신촌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는데, 군대와 교환학생 등 다른 곳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신촌은 친숙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을 통해 마음속에 새로 정의되는 신촌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월요일 아침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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