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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조화로운 꽃은 조화

#41. 내핍(耐乏), 모순(矛盾)

2025.10.24 | 조회 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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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내핍(耐乏)

: 물자가 없는 것을 참고 견딤.

 

  • 단어를 찾은 곳

김장우에게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우리 두 사람의 결혼 계획도 형의 입에서는 술술 흘러나왔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올봄에 결혼식을 올릴 것이고 신혼집은 부근의 작은 아파트가 될 모양이었다. 형과 형수가 우리들의 신혼집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증거는 집 안 여러 곳의 눈물겨운 내핍의 흔적으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방문한 나를 위해 마련한 것이 돼지불고기인 것도 그의 형수 말대로 하면 "지금 쇠고 기 먹으면 뭐해요? 우리 도련님 장가 보내놓고 나중에 먹으면 더 좋지요." 라는 식이었다.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자신들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고 있었다. 김장우는 형이 뭐라 말할 때마다 연신 나를 돌아보았다. 저런 내 형을 너도 나처럼 좋아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듯이. 혹시 너보다 형을 더 사랑해도 용서해달라는 듯이.

양귀자, 모순, 277쪽

  • 나의 단어라면
근사하다는 말이 참 좋아요. 폼나게 차려입은 남편에게 근~사하다라며 칭찬하는 젊은 날의 어머니 같기도, 어릴적 꿈의 여행지를 뒤늦게 찾아간 중년의 아저씨가 하는 감탄사 같기도 하고. 어딘가 오래되었지만 세련된 그 말씨가 좋아요. 화려하다는 말과는 어딘가 다르답니다. 부유하지 않아도 근사할 순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내핍의 여파가 남긴 흡집들도 맨들하게 잘 닦기만 하면 그 나름대로 멋지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아 저는 이 앞에서 양장점을 해요. 근사, 그 말이 왜 그리 좋았는지, 남의 근사를 챙기는 일을 하고 있네요. 그나저나 여기 오뎅 참 맛있네요. 사장님. 국물이 근~사해요. 음하하하하.

모순(矛盾)

: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 중국 초나라의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창은 어떤 방패로도 막지 못하는 창이라 하고 방패는 어떤 창으로도 뚫지 못하는 방패라 하여,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 단어를 찾은 곳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 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 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양귀자, 모순, 296쪽

  • 나의 단어라면
얼었던 샤인머스캣이 다 녹았을때, 노래는 끝이 나고, 같이 울리던 검정 벽은 멈추고,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옵니다. 기타는 시치미를 뚝 떼며 앉아있고, 녹은 것들이 없었다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알지 못했을 겁니다. 술잔에 담긴 꽃을 봅니다. 꽃잎은 사랑처럼, 밖에서 붙여나가는 게 아니라 안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느낍니다. 꽃잎을 붙여나간 꽃은 조화라고 부릅니다. 조화는 죽었지만, 아니 애초에 산 적도 없지만, 하나하나 붙여나갔기에 가장 조화롭답니다. 어쩌면 조화로운 것은 가장 인조적일 지도 모릅니다. 진짜를 닮기 위해 어디에도 없는 조화를 이룬 조화. 그야말로 모순입니다. 제 여태의 사랑도, 삶도, 아무것도 그리 조화롭지 못했습니다. 멀리 누가 조립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곳은 매일 두 번의 라이브 공연이 있습니다. 연주가 기억이 나지 않아 제 식대로 치는 기타가 일품입니다.

추신

늦어서 죄송합니다. 시험을 치는 중에 글을 쓰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네요 ㅎㅎ. 또 이번 41편이 <모순>으로 쓰는 마지막 나의 단어라는 점에서 조금 더  글감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기다려주셨다면 더더욱 죄송하고, 그것보다 조금 더 큰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소설의 제목이자 가장 큰 주제인만큼, 마지막 단어는 모순으로 했습니다. 조화를 중시하면서도 완전히 조화로운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마다 모양이 있고, 색이 있고, 향이 있으니까요. 조화롭지 않아 보여도, 그 자체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을 하겠다는 작은 독서 감상과 다짐을 남기며 이번 모순편은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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