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수야님,
저는 지난주 한국에 도착했어요. 한 달여간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지 기대가 되면서도, 고향에서 느낄 수 있는 안락함과 따스한 봄날씨 덕분에 그동안 초조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 요즘입니다. 수야님의 편지를 읽으며 문득 생각했어요. 우리 둘, 여전히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이 더 깊고 다채로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지난주로 <아티스트웨이> 12주를 마무리했어요. 12주간 아티스트 데이트와 모닝페이지를 작성하며 그 어느 때보다 제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책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남아요. <아티스트웨이>에서 던지는 질문들에 솔직하게 답하다 보면 깊숙이 숨어있던 제 자신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느낌이었거든요. 예전에 적어놓은 모닝페이지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전보다 단단해진 제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렇게 단단해졌다 싶었던 마음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참 쉽게 흔들리는 것 같아요.
수야님께서 언급하셨던 심리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반가웠어요. 저는 코로나가 시작된 해부터 심리상담을 받아오고 있거든요. 한국에도 조금씩 마음 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것 같아 기뻐요. 잘 모르는 타인에게 매우 사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기에 좋았거든요. 친한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불평 대신 감정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가에게 모난 마음, 불안한 마음들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감정이 차오르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 결국 소중한 사람들이 제 감정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자주 느꼈어요. 상담을 통해 사소하지만 꼬여버린 감정들을 주기적으로 풀어주다 보니 소중한 사람들과 불평이나 소모되는 감정이야기 대신 다른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특히 제 짝꿍과 커플 상담을 받으며 어려웠던 순간들을 함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음 건강은 몸 건강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한국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필라테스를 등록했답니다. 처음 1:1 레슨을 받으며 선생님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미국과 한국의 필라테스 문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됐어요. 미국에서는 주로 리포머만 사용하고, 10명 이상의 그룹으로 빠른 템포로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다니던 스튜디오는 비디오를 보고 따라 하는 방식이라 강사님이 간단하게 자세 교정을 해주시는 정도였죠.
한국 필라테스는 다양한 기구를 사용한다고 들어서 궁금했는데, 첫 세션에서 체형과 인바디를 측정하고 숨 쉬기 연습부터 차근차근 시작했어요. 몇 동작 하지 않았는데도 정말 힘들더라고요! 제 허리가 매우 뻣뻣하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고, 특히 운동할 때 겉복근을 사용하다 보니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간다는 점도 깨달았어요. 운동을 하며 근육과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운동이 끝나면 해냈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것 같아요.
수야님처럼 제 3월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참여하고 있는 일러스트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산업군의 아트 디렉터들과 가상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처음엔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마감일을 지켜서 완성만 하자!'라는 다짐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고, 눈에 띄었으면 하는 욕심이 스물스물 피어나더라고요.
그러면서 게으른 완벽주의자처럼 마감일 전까지 마음이 무거운 채로 미루다가 급하게 작업하는 경우도 생기고, '계속 이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내면의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상담과 모닝페이지를 통해 이런 마음들을 토해내고, 적으면서 다시 나에게 친절해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답니다. <아티스트웨이>의 마지막 두 챕터가 특히 큰 도움이 됐어요.
1. The creative process is a process for surrender, not control. (창작 과정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음의 과정입니다)
2. We must learn to keep our own counsel, to move silently among doubters, to voice our plans only among our allies, and to name our allies accurately. (우리는 스스로의 결정을 믿고, 의심하는 이들 사이에선 묵묵히 나아가며, 우리의 계획은 오직 진정한 동료들에게만 나누고, 그 동료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3. As an artist, self-respect comes from doing the work. (예술가에게 자기 존중은 실제로 작업을 해내는 데서 생겨납니다)The Artist's Way
정확한 답이 없는 창작 분야다 보니 나에게 더 엄격해지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더 작은 단위의 스몰윈과 창작 시간들을 만들기 위해 100일 프로젝트를 기획해보고 있답니다. 여전히 창작 행위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즐겁게 일하기 위해선 창작의 행위 자체가 어느 정도 체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의 4월은 또 어떻게 흘러갈까요? 수야님과 만날 날이 곧 다가오네요! 독립서점을 구경하고 나눌 대화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렙니다.
따뜻한 봄날에 곧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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