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편지
얼마 전에 쓰러졌습니다. 그렇다고 쓰러질 일이기야 한가? 의아해서 달력을 켜서 세어봤더니 웬걸. 쓰러질 일 맞더구먼요. 출간 후 37일 동안 무려 22개의 북토크를 했더라고요. 수액을 맞아야 할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어버린 저에게, 동네 병원 의사선생님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으셨습니다. “아니, 장 작가님. 그래도 내 몸이 먼저지 이번에 왜 이렇게 무리하는 거예요? 이러다가 한강 작가님만큼 인기 있어지는 거 아니야?” 저는 말했지요. “아이고 선생님, 돌아다닌다고 책이 몇백 권씩 팔리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지요. “아니 그럼, 대체 왜 그렇게 다니는 거예요? 전에 책 낼 땐 이 정도 아니었잖아.”
그랬습니다. 평소 책 한 권을 내면 10회 남짓 독자와의 만남이나 사인회, 북토크를 하는 저였지만 이번에는 두세배를 훌쩍 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어요. 제 SNS를 보는 많은 지인들이 말은 안 해도 대부분 건강을 염려하고 있었더라고요, 그토록 발 벗고 뛰는 이유는 딱 하나, 책의 주제가 ‘고립’이었기 때문이지요. 어느덧 작가로 12년 차, 매번 새로운 책을 낼 때마다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번아웃을 주제로 책을 썼을 때는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 워커홀릭 직장인들을 가장 만났고, 불안을 주제로 책을 냈을 때는 20대 취준생 독자들을 가장 자주 만나게 되었지요.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고립’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할 텐데,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초반에 북토크를 열어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어요. 왜? 아니 내가 그래도 나름 이름있는 작가인데 이렇게까지 안 모일수가 있나? 당혹감도 잠시, 책을 다 읽은 독자 민지님이 힌트를 주었습니다.“저는 사실 작가님 팬이니까 신간이라고 해서 읽긴 했는데, 처음에 이 주제 보고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까 저도 고립상태였더라고요. 아마 사람들이 고립이라는 단어가 저처럼 남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럴 거예요."
하기야 저 역시도 청년 재단으로부터 “고립을 주제로 책을 집필해 주시겠어요?”라는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가장 처음 든 생각은 ‘나 잘 모르는데... 이걸 나한테 왜 부탁하시지?’였어요. 히키코모리를 떠올렸으니까요. 그것이 ‘은둔’이라는 개별적인 개념이고 ‘고립’은 또 “집 밖에 나가고, 회사를 다니고, 밥벌이는 하고 있지만 안부를 주고받는 사람이 0명인 상태”라는 전혀 다른 개념임을, 54만 명이나 되는 청년들이 그 상태임을, 본업이 상담가였던 저 조차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민망했지요. 그러니 대부분의 시민들은 더욱 그 두 개의 차이를 구분하기도 어렵거니와, 저처럼 ‘고립’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히키코모리나 쪽방촌 어르신같이 ‘나와는 조금 다른 존재들’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심지어 고립 중인 당사자조차도 말이지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리를 스치듯 지나간 문장이 이거였어요.
인지해야만 감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 떠오른 단어는 이것이었지요. 갱년기 우울증. 무슨 소리냐고요? 우리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 시절을 잠시 떠올려볼까요? 그 시절 어르신들의 머릿속에는 갱년기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그 증상이 와도 할머님들은 ‘내가 왜 이러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혼자 그 시간을 앓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지만 현대에는 엄마도, 나머지 가족들도 갱년기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압니다. 그렇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지요. 그래서 엄마가 갱년기 우울증이 온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아빠도, 자녀들도 당분간 조심해야겠다거나, 잘 살펴야겠다고 느끼게 되지요. 저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느 시점 이후부터, 저는 제가 단순히 책을 쓴 사람이 아니라 캠페이너라고 스스로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일이 아직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명확한 ‘인지’를 돕는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었달까요. 책을 쓰면서 100명의 고립 경험 사례자를 만나는 동안, 저는 생각지 못하게 많은 배움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책을 쓰기 위해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속에 제가 간과하고 있던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요. 그중 하나가 이거였어요.
“저는 한국 사회가 다른 사회 보다 훨씬 고립되기 쉬운 사회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고립 당사자 모임에 나가보니 정말 학벌도, 직업도, 성격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천재지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y. 리커넥트 출연 사례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청년 54만 명이 고립을 겪고 있고, 전 세대로 눈을 돌리면 300만 명이, 그리고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1번 이상 고립을 경험하는 사람은 1700만 명인 사회라면, 그것은 마치 일본의 ‘지진’과도 같은 느낌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니,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인지’하고 대비해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그리고 만약 평생토록 고립이 내 삶에 찾아올 일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그것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순간 내 주변의 고립된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는 ‘감각’이 생겨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내일도 바리바리 가방을 싸서 KTX에 오릅니다. ‘그 누구도’ 고립이 내 일이 아니라고 느끼는 세상에서, ‘누구에게나’ 고립이 찾아올 수 있음을 느끼고, 인지하고, 서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세상으로 조금씩 바뀌어나가기를 바라면서요. 물론, 건강을 해치지 않을 만큼만 뛰어야겠지만요!
이번주의 추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면
웬 침실 사진이냐고요? 사실 제 방입니다. 저희 집 침실이에요. 신혼부부도 아닌데 깔끔하게 해 두고 살죠? 요즘처럼 바쁘고 지치는 시기에 그래도 저의 체력을 조금이나마 회복해 주고지켜준 건 '숙면'에 있었어요.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쿠팡에서 8만 원에 산 매트리스 일체형 침대를 7년째 쓰면서 맨날 허리 아프다, 자고 일어나도 찌뿌둥하다 괴로운 아침을 맞이했는데요. 한 번도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잘 잘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분께 이번 주에는 '나의 숙면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추천하려 합니다. 40년 불면증이었던 제가 숙면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는 침실을 바꾼 것 말고도 더 있는데요, 조만간 오프레터에서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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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리
현직 힉힉호무리 인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서 예쁜 꽃 한 번, 예쁜 노을 한 번 봐야지 했던 마음이 4월을 맞이하게 해주네요. '고립감'을 떨쳐내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더 고립되는 건가 고민이 되는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통해 그리고 이런 부드러운 글로 연결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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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동그리님 :) 우리의 연결이 서로에게도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내기를 ㅎㅎ 늘 응원의 마음 보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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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누나
장재열 작가님의 이런 선한 영향력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 받고 또 살아갈 힘을 얻어요 '고립' 처럼 정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할 단어들이 어떤 의미인지 들여다 보게 되고요 그런 선한 영향력을 넘치게 받으니 받은 만큼 또 나누게 된다는 거 아시나요? 그치만 그 영향력을 오래오래 나눠주시려면 무조건 1번은 건강! 입니다^^ 모델하우스처럼 깔끔한 작가님의 침실에서 에너지 충전이 늘 빵빵하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월간 마음건강 뉴스레터
네에에에 감사해요 사랑이누나님! 무엇보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잊지않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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