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 함은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고, 글로 돈을 버는 사람을 말한다. 글을 여전히 쓰고 있고, 출간도 했기 때문에 나 역시 작가라고 할 수 있지만, "작가"라는 타이틀 앞에선 언제나 가슴이 쪼그라든다. 작가라고 소개하기도 부끄럽기만 하다. 새로 나가게 된 밀라노 한인 교회에서도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라고 소개하고 말았다. 내가 작가로 살 수 있는 이유는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있고, 매달 월급을 받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과연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경제적 자유를 위해 여러 수입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요즘, 나 역시 종이책과 전자책과 ogq샵과 마플샵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수입은 대단치 않다. 수입이 많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역시, 남편으로부터 생활비를 받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좀 더 간절하게 쓰고 콘텐츠를 만들었을까 싶지만, 자신할 순 없다.
이렇게 말하면 글을 쓰는 행위가 취미 생활에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뭐, 부인할 수는 없다. 김미경 씨의 말처럼 이런 취미로 돈을 벌면 직업이 되는 거니까.
글을 엄청나게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많이 알려진 작가도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글감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새로운 소재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일상이 그렇듯, 재미있는 일이 매일 일어나지 않는다. 글을 쓰려면 모험을 해야 하는데, 그것 또한 체력이 필요하다. 밀라노에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재밌게 느껴졌다. 그래서 글감도 넘쳐났다.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것이 없다. 매주 밀라노에 대한 글을 쓰려면 어디 새로운 곳이라도 가야겠는데 코로나로 모든 게 멈춰버렸다. 코로나 핑계를 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간절하게 쓰진 않지만 꾸준하게는 쓰고 싶어서 매거진을 만들었다. 구독자도 모았다. 이들에게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까? 내 모든 고민은 이것에 묶여있다. 쫄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는 일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골목길로 돌아서 가보는 것도, 새로운 걸 보면 사진부터 찍는 이유도 모두 글을 써내기 위해서이다. 나와의 약속, 독자와의 약속, 결국 작가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고 싶기 때문에.
처음엔 쓸 것이 넘쳐 나서 글을 썼다면, 지금은 글을 쓰기 위해 살고 있는 것 같다. 글과 삶은 이렇게 얽히고설켜 굴러가는 실타래인가 보다.
"무명"이 항상 수식되는 작가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베스트셀러는 아니더라도 기억에 남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지금은 끝까지 쓰는 작가로 남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쓰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
"다 때려 치고 한국 돌아갈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
아무도 없는 숙소 거실에 앉아 소리를 질렀다. 밀라노에만 오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은 아니더라도 계획대로 착착 일이 진행될 줄았는데.... 모든 것이 꼬여버렸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나마 마음이 편하겠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고백한 순간 무기력감이 몰려왔다.
한국에서 살면 그래도 말은 통하겠지, 아이들 학교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가족들이 옆에 있으니 힘들면 수다라도 떨 수 있겠지, 친구라도 만날 수 있겠지, 아파도 병원에 가면 되니까 노심초사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데 한국에서 지내던 4개월 동안 왜 그렇게도 불편했었을까?
여기도 저기도 마음 둘 곳이 없는 우리는 이방인이다.
구약 성경의 출애굽기를 보면, 이집트에서 힘겹게 노예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고 험한 광야 생활에 지쳐 불평을 하고, 모세를 원망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때가 더 좋았었는데, 왜 우리를 광야로 불러내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 거야?"
"난 다시 돌아가고 싶어. 노예 생활을 했을 땐 그래도 밥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았잖아."
며칠 전,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인도가 좋았어. 거긴 영어라도 잘 통했지. 차도 있었고, 기사도 있었고. 아이들 학교도 얼마나 좋았었는데. 그땐 비자 걱정은 하지 않았잖아?"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조금만 힘들어도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속성은 멀리에 있지 않았다. 바로 내 안에 숨어 있었다.
좀 더 당당한 이방인이 되기 위해 요즘은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있다. 미라클 모닝을 통해 뭔가를 이뤄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간절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기에, 내 힘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기에 절대자에게 간절하게 애통하며 구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무릎을 꿇는다. 이제 겨우 3일 되었지만, 정신까지 이방인처럼 흔들리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애달복달 하면서 지금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보다는, 일단 맡기고 가는 거야~~ 이방인으로 살아 보는 거야~~"
쭘마의 비자가 어떻게 해결되어 가는지, 구독자님들도 지켜봐 주세요. ^^
지난 주, 우리 집 남의 편은 시칠리아로 출장을 갔습니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남쪽, 지중해에 있는 섬이에요. 여행지로도 많이 가는 곳이라서 엄~청 부러웠지요.
그런데 홍 군이 카톡을 보냈네요.
"큰일 났어. 행사 물품이 안 왔어. 기도 좀 해줘."
엥...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금요일, 토요일 이틀 동안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보낸 행사 물품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진작에 보냈다고 하고, 온라인에도 이미 도착해서 물류창고에 있다고 하는데, 정작 물품이 회사로 운송되지 않은 것이죠....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난리가 났겠죠. 완전한 배송 사고니까요. 그것도 본사 물품을!!!
홍 군은 하루 전날 시칠리아로 이미 떠난 상태였고, 밀라노에 남아 있던 직원이 그 물품 받아서 합류할 예정이었어요.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물품을 찾지 못했어요. 오후 3시까지 기다려보고 안 오면 다음 날 행사는 취소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정말 중요한 행사였는데 말이죠.
3시가 넘었는데도 택배는 오지 않았대요. 결국 국제 특송 물류창고로 갔나 봐요. 물류 창고에 있는 물품을 하나씩 뒤지기 시작했대요. 5시, 6시, 저녁 7시가 되었지만 찾지 못했어요. 이제 약 30%의 물품이 남은 상태였는데, 마지막으로 8시까지 찾아보고 없으면 정말 취소라고 하더라구요.
8시 10분, 카톡이 왔습니다.
"찾았대!!."
네, 결국 찾았습니다. 다행히 행사는 취소하지 않고 진행할 수 있었대요. 휴~
정말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이었답니다.
"다 내가 기도한 덕분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그의 얼굴빛이 너무나 누렇게 떠 있어서 조용히 입을 닥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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