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분 만에 끝나버린 전쟁에 대해 메일을 보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영국-잔지바르 전쟁은 그렇게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반대로 가장 긴 전쟁으로 눈을 돌려 보아도 대단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의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이슬람 세력들을 몰아낸 전쟁인 '레콩키스타'의 경우 781년에 달하는 대전쟁이었습니다.
진기록의 나라 영국은 가장 짧은 전쟁 뿐만 아니라 가장 긴 전쟁들 사이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영국의 '실리 제도'와 네덜란드 간에 335년 간 지속된 전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을 '335년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의 진짜 특이한 점은 단순히 300년 넘게 전쟁이 지속됐다는 점이 아니라 그 긴 기간동안 사상자가 나오기는커녕 총알 한 발 발사된 적도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전쟁 당사자들이 전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완전히 까먹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 지식을 되짚어 보면 '왕당파', '의회파', '올리버 크롬웰' 같은 이름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1642년부터 1651년까지 잉글랜드에서는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내전이 있었습니다. 1651년,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는 영국 본토 대부분을 손에 넣었고 왕당파는 영국 남서부에 콘월이라는 조그만 지역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 내전에서 네덜란드는 의회파와 동맹을 맺어 둔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왕당파 해군과 네덜란드 해군 간에 갈등이 발생했고, 결국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이미 의회파가 영국 본토를 거의 다 차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네덜란드는 왕당파가 버티고 있는 콘월의 남서쪽에 있는 실리 제도를 특정하여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네덜란드가 전쟁을 선포한지 몇 개월 되지 않아, 결국 왕당파가 더 이상 버티지 않고 의회파에 항복합니다.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어진 네덜란드는 총 한 발 쏘지 않고 심심하게 떠났습니다. 전쟁을 했다고 하기도 애매하게 유야무야 싸울 상대가 없어져 버린 네덜란드는, 특별히 종전 선언을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선전포고는 있었지만 종전 선언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영국과 네덜란드는 평화롭게 335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1986년, 역사가이자 실리 제도 위원회 의장인 로이 던컨이, 따지고 보니 아직 네덜란드와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네덜란드 대사관에 편지를 보냅니다. 네덜란드 대사관 측 또한 평화 조약이 체결된 적이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발견했습니다. 던컨은 네덜란드 대사를 실리 제도로 초대했고, 공식적으로 전쟁은 종료되었습니다. 네덜란드 대사는 "우리가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공포였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고 합니다.
더 알아보기
페퍼노트, 38분 만에 끝난 전쟁
Wikipedia, Three Hundred and Thirty Five Years' War
나무위키, 335년 전쟁
Wikipedia, List of conflicts by duration
나무위키, 레콩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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