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본업은 개발자입니다. IT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은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천재 해커' 캐릭터가 나왔을 때 종종 웃음을 짓곤 합니다. 건축 설계도 같이 생긴 화면을 틀어 놓고 홀린 듯이 타자를 두들기는 모습, 상태바가 천천히 올라가다가 적들이 오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100%를 가리키고 성공했다면서 도망치는 모습이 실제 해킹의 모습과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실제 해킹을 하는 모습은 카메라로 담기엔 무미건조하기 때문에 그렇게 멋을 부여하는 것이리라 이해합니다. 하지만 천재 프로그래머 캐릭터의 모니터에 보이는 코드가 구구단을 출력하는 코드면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해킹이란, 프로그램의 잠겨 있는 부분을 풀어서 프로그램의 원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해킹은 타자를 두들기는 것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1960년대에 있었던, 휘파람으로 장거리 전화 시스템을 해킹한 사람들에 대해 소개합니다.
1957년, 7살 맹인 소년 Joe Engressia는 이상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 소년에겐 절대음감이 있었는데 4옥타브 E(2637Hz)를 휘파람으로 소리 내면 전화 녹음이 끊겼던 것입니다. 그는 통신 회사 AT&T에 이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문의했고, 전화 교환기는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입력으로 받아 약속된 동작을 수행한다는 답변을 얻습니다.
비슷한 시기 Bill From New York도 2600Hz 부근의 소리를 내는 자신의 리코더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John Draper 또한 Joe Engressia와의 교류 끝에 캡엔크런치라는 시리얼에 동봉돼 있던 장난감 호루라기로 같은 일을 할 수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 호루라기가 2600Hz의 음을 냈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술로 장거리 전화를 걸 때에는 전화를 건 지역에서 전화를 받는 지역까지 신호를 연결해 주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은 소리 신호를 통해 이뤄졌고, 나중에 전기 신호로 바뀌어 약속된 동작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소리 신호로 쓰였던 것이 2600Hz 부근의 소리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실험을 계속해 1960년대에는 장거리 전화를 무료로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우선 무료 전화 서비스 번호로 전화를 건 뒤 2600Hz의 소리를 길게 내면통신사에서는 연결이 끊어졌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전화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상태에서 이들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방법으로 2600Hz의 소리를 짧게, 길게 조합해 가며 불면 원하는 번호로 전화를 연결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비싼 장거리 전화도 이 방법을 통하면 요금이 부과되지 않았습니다. 이 방법을 프리킹(Phreaking)이라 하고, 이 프리킹을 행한 사람들을 프리커(Phreaker)라고 합니다.
통신사 측에서는 이 방법을 알고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장비들을 싹 교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점점 유명해져서, 1971년엔 에스콰이어 잡지에 "Secrets of the Little Blue Box"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됩니다. 이 기사를 본 젊은이들이 프리킹에 매료됩니다. 그렇게 매료된 후세대 프리커들 중 두 사람은 아주아주 유명해집니다. 다름 아닌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입니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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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살자
와~ 싹이 남다르네요 ㅋㅋ
페퍼노트
어쩌면 반대로 여러 싹들 중에 남달라진 사람들의 케이스만 주목 받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남다른 싹들도, 별볼일 없었던 싹들도 끝내 예쁜 꽃을 피우길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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