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탄 죽음의 행진

일본의 잔악무도한 전쟁 범죄

2023.12.30 | 조회 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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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바탄 죽음의 행진은 태평양 전쟁 중 있었던 일본의 잔악무도한 전쟁 범죄입니다. 일본의 전쟁 범죄 중에는 한국이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건들이 많다 보니, 미군과 필리핀군이 피해자였던 이 사건은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느낌이 있습니다(저만의 느낌인가 싶어 구글에 '바탄 죽음의 행진'을 검색해 보니 6,650개의 검색 결과가 나왔습니다. '일본군위안부'는 1,700,000개, '731부대'는 356,000개의 검색 결과가 나옵니다.). 오늘은 이 덜 알려진 참사를 다뤄 보고자 합니다.

태평양 전쟁을 발발케 한 진주만 공습 직후 일본군은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공격합니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더글라스 맥아더가 항쟁했으나 끝내 버텨내지 못했고,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맥아더에게 호주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남아 있던 미군과 필리핀군은 '바탄 반도'에서 저항했으나 물자도 바닥나고 말라리아까지 발생하여 결국 일본군에 항복합니다.

이 때 일본군이 붙잡은 포로가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6만 명에서 8만 명 정도로 추정합니다. 이는 일본군이 추정한 것보다 두 배나 많은 수였습니다. 이 많은 수의 포로들을 바탄에서 내륙의 수용소로 이동시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일본군 대본영에서는 필리핀으로 파견을 나온 중좌 츠지 마사노부에게 "포로 감시를 엄중히 하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츠지 마사노부가 여기서 독단적인 행동을 합니다. 본인이 대본영으로부터 받은 지시를 다른 간부들에게 "미군과 필리핀군 포로를 처형하라"라고 왜곡하여 전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령관 혼마 마사하루 중장은 이렇게 전달받은 지시를 적극적으로 이행합니다.

당시 일본군은 여러모로 쪼들리는 상태였습니다(바로 이 쪼들림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한다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것인데, 이것을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져 생략하겠습니다.). 수만 명의 포로를 처형하기 위해 총탄을 사용하는 것조차 아까웠던 일본군은 사람을 죽이는 아주 끔찍한 방법을 떠올립니다. 밥을 주지 않고 계속 걷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포로들은 음식도 물도 거의 지급받지 못한 채 약 88km를 걸어 카파스 역으로 이동했고, 그 곳에서 열차를 타고 이동한 뒤 다시 14km를 걸어서 이동하였습니다. 그들을 관리하는 일본군 병사들도 힘들었던 바탄 전투를 떠올리면서 포로들을 잔인하게 대했습니다. 구타, 고문 등 신체적 학대를 가했고 포로들로부터 금을 빼앗기 위해 이를 뽑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떠한 종류의 모자도 없이 필리핀의 직사광선에 노출시켰습니다. 이 행진에서 낙오되는 포로들은 총검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바탄 죽음의 행진 중 쓰러진 포로들
바탄 죽음의 행진 중 쓰러진 포로들

카파스 역에 도착했을 때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위생 속에 모여 있자 이질 등의 질병이 퍼졌습니다. 일본군은 그들을 치료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 의료진이 없다시피한 보급품으로 병자와 부상자를 돌봤습니다. 기차를 탔을 때에도 상황은 걸을 때보다 딱히 좋지 않았습니다. 섭씨 43도의 더위 속에서 환기가 되지 않는 금속 차량에 화물처럼 꽉꽉 채워졌고, 화장실이 따로 없어 그 자리에서 일을 봐야 했습니다.

100km에 달하는 행군동안 사망한 포로의 수는 약 2만 명에 달합니다. 일본군 내부에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의아하다고 생각한 군인이 있었던 모양인지, 육군 대좌 한 사람이 의구심을 품고 대본영에 확인을 합니다. 대본영은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라는 답을 보내옵니다. 뒤늦게 츠지 마사노부가 대본영의 지시를 날조해 독단적으로 행한 일임이 밝혀졌지만, 이미 포로들은 죽은 뒤였습니다. 

진주만 공습 직후 일어난 바탄 죽음의 행진으로 인해 미국 전역에 일본을 응징해야 한다는 범국민적 여론이 형성됩니다. 후에 도쿄 대공습이나 원자폭탄 투하 등의 강력한 작전이 실행될 때에 이를 지지하는 여론이 있었던 것엔 이런 배경이 있었습니다.

바탄 죽음의 행진이 알려진 뒤 미국의 여론을 보여주는 포스터. '모든 살인자 쪽바리 새끼들이 쓸려 나갈 때까지 임무를 계속하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바탄 죽음의 행진이 알려진 뒤 미국의 여론을 보여주는 포스터. '모든 살인자 쪽바리 새끼들이 쓸려 나갈 때까지 임무를 계속하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종전 이후 사령관 혼마 마사하루는 전쟁범죄 재판에 기소되어 사형 당합니다. 반면 사건의 원흉인 츠지 마사노부는 중국으로 건너가 국민당의 보호를 받아 목숨을 구합니다. 1950년 그는 도주 생활을 기술한 자서전 <잠행 3천 리>를 발표하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후에 정계로 진출하여 성공을 거뒀고, 1961년 실종될 때까지 바탄 죽음의 행진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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