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때 같은 쪽 손발이 같이 나가면 잘못된 걸까요?

네발동물들의 걸음걸이와 일본의 '난바'에 대해 알아봅니다

2024.01.12 | 조회 1.4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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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노트

당신의 삶에 양념 같은 지식을!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할 때 '그런 것'들을 전해 드립니다.

각종 매체에서 어리숙한 사람을 묘사하는 클리셰로 걸을 때 오른발과 오른손, 왼발과 왼손이 같이 나가는 동작을 보여주곤 합니다. 제식 훈련을 받아 보셨다면, 실제로 이렇게 같은 쪽 손발이 움직이는 사람이 없지 않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흔하게 놀림감이 되는 이 동작은 정말 잘못된 걸까요?

저는 중학생 때 네발동물들이 걷는 방식에 관심이 있었습니다(엉뚱하긴 하지만, 한창 이상한 데 꽂힐 만한 나이였습니다.). 강아지, 고양이 같이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들은 직접 관찰하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동물들이 걷는 영상을 돌려 보기도 하고, 직접 네발로 걸어보기도 하면서 네 발로 걷는 원리를 알아보려 했었습니다.

관찰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네발동물들이 걷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끼리와 호랑이가 걷는 방식이 다르고, 천천히 걸을 때와 빠르게 달릴 때의 방식이 또 달랐습니다. 네발동물들의 다양한 걷는 방식에 대한 연구들을 찾아 보게 된 건 훨씬 나중의 일인데, 당연히 중학생에 불과했던 제가 분류했던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었습니다.

Mammal's locomotion이라는 웹페이지에는 동물들의 움직임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통해 동물들이 네 발을 어떤 순서로 움직여 이동하는지, 10가지 타입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Mammal's locomotion 웹페이지에서 설명을 돕기 위해 첨부한 그림.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읽으면 되고, 흰점은 땅에서 떨어진 발, 검은 점은 땅에 붙은 발로 해석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Diagonal walk는 '네 발 다 붙이기 -> 왼쪽 뒷발 떼기 -> 오른쪽 앞발 떼기 -> 왼쪽 뒷발 붙이기 -> 오른쪽 앞발 붙이기 -> 오른쪽 뒷발 떼기 -> 왼쪽 앞발 떼기 -> 오른쪽 뒷발 붙이기' 순서로 진행됩니다.
Mammal's locomotion 웹페이지에서 설명을 돕기 위해 첨부한 그림.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읽으면 되고, 흰점은 땅에서 떨어진 발, 검은 점은 땅에 붙은 발로 해석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Diagonal walk는 '네 발 다 붙이기 -> 왼쪽 뒷발 떼기 -> 오른쪽 앞발 떼기 -> 왼쪽 뒷발 붙이기 -> 오른쪽 앞발 붙이기 -> 오른쪽 뒷발 떼기 -> 왼쪽 앞발 떼기 -> 오른쪽 뒷발 붙이기' 순서로 진행됩니다.

위 그림에서 주목할 부분은 'Lateral walk'와 'Pace'입니다. Lateral walk는 오른쪽 뒷발, 앞발, 왼쪽 뒷발, 앞발 순서로 걸음을 걷는 방식이고, Pace는 아예 오른쪽 앞뒷발로 뛰었다가, 왼쪽 앞뒷발로 뛰는 방식입니다. 즉 인간으로 치면 오른발 타이밍에 오른손을 내밀면서 걷는 것이 Lateral walk, 뛰는 것이 Pace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제식훈련 기준으로는 아주 바보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Lateral walk는 포유류의 가장 흔한 걷기 방식입니다. 개, 고양이, 표범, 사슴, 코끼리, 낙타 등등 여러분이 포유류라는 말을 듣고 떠올렸음직한 웬만한 동물들은 천천히 걸을 때에 이 방식으로 걸어다닙니다. 이와 대비되는 'Diagonal walk'를 찾아 보는 게 오히려 어려울 정도인데, 원숭이, 도마뱀, 거북이 정도가 곧잘 이렇게 걷습니다.

Pace 방식은 대형 초식동물들이 가볍게 뛰는 모습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말의 경우에는 Pace 방식으로 뛰는 말도 있고, 그와 대비되는 Trot 방식으로 뛰는 말도 있습니다. 제가 기마궁술은 아직 배워보지 못해 검증할 수 없었습니다만, Pace 방식이 Trot 방식에 비해 기수 입장에서 흔들림이 적어 기마궁술에 더 적합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몽골 전사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 몽골 말이 유럽 말에 비해 군마로서 더 유리했던 점 중 하나가 Pace 방식의 달리기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군마로 사랑받아 온 제주마가 '제말걸음'이라 하여 몽골 말과 뛰는 방식을 공유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같은 쪽 손과 발이 동시에 움직이는 걸음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 듯 해 보입니다. 그리고 자연의 이치에 더해, 문명의 걸음걸이도 꼭 반대쪽 손발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에도 시대 일본 사람들은 '난바'라는 방식으로 걸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일본인의 걸음걸이였는지, 특정 계층이 특별한 이유에서 사용했던 걸음걸이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알려져 있는 것은 이것이 같은쪽 손발을 움직이는 걸음걸이였다는 점입니다.

에도 시대 일본의 걸음걸이, '난바'

이 걸음걸이가 몸의 비틀림이 없는 까닭에 울퉁불퉁한 길을 다니거나 경사로를 다닐 때 에너지 소모가 적다는 주장이 있는데,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연구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일본의 전통 무술들도 난바 걸음걸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걸음걸이를 익히면 일본 전통 무술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난바 걸음걸이는 메이지 시대 서구식 군사 훈련이 도입되면서 일본에서도 사라지게 됩니다.

걸음걸이 같은 건 어디까지나 본능의 영역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걷는 방법 하나하나까지 사회, 문화, 제도 등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구독자 님이 같은 쪽 손과 발을 움직이며 걷는다 해도, 그건 그다지 멍청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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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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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tplotlib

    1
    10 months 전

    갑자기 닉네임이 나와서 깜짝 놀랐네요ㅋㅋㅋ 제4의벽 붕괴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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