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되풀이되는 일상 속, 얼마나 많은 의미를 발견하며 살고 계신가요?
바로 대답이 떠오른다 해도,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혹시 여러분께서 의미가 있다고 믿는 일들은, 사실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세상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럴듯하게 꾸며낸 '답을 위한 답'은 아닌가요?
정말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게 아닌 존재 그 자체로부터 발산되는 목적에 이끌려 살고 계신가요?
혹은, 도저히 의미라는 건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어 번뇌에 사로잡혔거나, 생각하기를 포기하신 건 아닌지요?
갈수록 우울증 및 다양한 정신 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고립감이나 공허감을 느낀다거나,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건
그만큼 많은 이들이 삶의 의미와 같은 본질적인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징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찾고자 하는 '의미'란 정말 중요성을 가질 만한 것일까요?
여러분 중에는 여태껏―남들이 말하는 의미가 아닌―나만의 '의미'라는 걸 발견하지 못한 분들도 계실 거고,
한때는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일에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혹은 과거부터 지금껏 쭉 어떤 일을 하든 나름의 의미를 느끼며 살아오신 분도 계시겠죠.
이 모든 입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살펴보고 싶은 건, 의미가 가진 속성입니다.
그 속성은 바로 '변화한다'는 것이지요.
의미란 생각에 따라 유발되며
생각이 지닌 주요한 특성이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얼마나 의미가 있고, 없는지에 대한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연상, 추리, 반추, 해석과 같은 다양한 정신의 작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고가 멈춰 있다면 의미 또한 생겨날 수 없으니
나의 정체성과 같은 실존에 대한 고민 역시 일지 않게 되겠죠.
과거에 경험한 일들이든, 현재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일이든
의미는 현재의 '생각'이 좌우합니다.
즉, 의미를 고민한다는 건 생각을 부여잡고 고민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런데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일어나는 생각은, 늘 우리가 이성적으로 수긍할 만한 인과관계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요?
그게 가능하다면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을 소모하거나 괴로워할 일이 생겨선 안 되겠죠.
생각은 임의적이고 비선형적이며 무질서하고 측정할 수 있는 그 어떤 예측 가능성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생각은 우연한 것인 듯하다.
…생각은 통제하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농간을 부리고 더 심하게 반기를 들고 통제되는 것을 심하게 거부해 도저히 길들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데이비드 호킨스, [나의 눈]
생각은 우리가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면 원치 않는 감정을 느낄 일도 없겠죠.
감정은 생각의 내용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니까요.
그럼 대체 원치 않는 생각이 떠오를 때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을까요?
마음이 생각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이 생각이 일어난 다음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면도날같이 예리한 주의력을 가져야만 한다.
"내가 생각했다"라는 환상은 마음이 그렇게 생각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포착될 때 사라진다.-데이비드 호킨스, [나의 눈]
명상을 할 때처럼 그저 생각을 '관찰자'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됩니다.
그렇게 주의를 갖고 바라봐야만 생각이 더 번지지 않고 알아서 소멸을 맞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는 연습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마음은 생각과 동일시하고, 그에 따라 감정을 일으키는 데 집착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늘 기억하셔야 하는 진실은, '나'는 생각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며
그 모든 걸 관찰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언어도, 감정도, 혹은 의미도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존재는, 살아가는 이유는 지식을 쌓고, 번뇌하고, 고행하고, 온갖 탐험에 나를 맡긴다고 하여 알게 되는 게 아닌
그 무엇도 묻지 않을 때 저절로 드러나게 됩니다.
무한한 현존인 그것은 항상 존재하고, 그것의 드러남은 드러남에 방해가 되는 드러남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 제거되면 저절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진실은 연구할 필요가 없다. 그저 거짓된 것을 놓아버리기만 하면 된다.
구름을 몰아내는 것은 해를 빛나게 하는 원인이 아니라 단지 이제까지 감춰져 있던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데이비드 호킨스, [나의 눈]
이전에 내가 의미라고 여겼던 것은, 지금도 여전히 진실인가요?
내가 현재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란 보장은 있을까요?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계속하여 변화하지만,
우리는 생각 너머에 있는 존재이며
그것만이 진실입니다.
무엇이 답인지 알고 싶다면, 거짓을 놓아버리세요.
'나'가 아님에도 나를 길들이고자 하는 생각을, 무언가에 매어두려는 에고의 집착을 간파하고
그것과 싸우려 하지도 마시고 그저 알아서 물러나게 내버려두세요.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를 내려놓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현재 존재'하는 자신만을,
진실만을 남겨 두세요.
실상은 실상이 아닌 것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진실과 반대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깨달음 속에 신의 평화가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 [나의 눈]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거짓을 걷어낼 때, 진실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언제나 이 자리에 여전히 존재하고 계신 여러분이 곧 삶이자, 의미이자, 목적이자, 모든 것입니다.
그 모든 답이 여러분입니다.
생각이 멈춘 자리에 '현존'함으로써
신의 평화를 누리고, 그 평화를 함께 나누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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