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무리 사람에 대해 경험과 지식을 쌓아도, 타인에 대해 완벽히 알 수 없는 까닭은 태생적으로 사람이 계속하여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이 변하는 건 외모뿐만이 아니죠.
눈빛, 표정, 몸짓, 어휘, 신념, 취향, 인간관계, 분위기... 한 개인을 이루는 많은 요소가 결코 그 사람으로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화를 거듭합니다.
사람의 몸속 세포가 매일같이 교체되는 것과 같이, 스스로 다 인지할 수는 없어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누구나 조금씩 변화를 맞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매 순간 선택의 주체는 오직 자신이며, 그 선택에 따라 우리는 각자 다른 경험을 펼쳐 나가고,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타인을 알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타인의 '생각'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두 번째 이유가 앞서 설명드린 '사람의 변화하는 속성'을 포괄하는 보다 큰 개념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스스로의 생각조차도 다 파악할 수 없는데, 타인의 생각은 오죽할까요.
말이나 행동과 같은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들로는 추측이야 가능하겠지만, 생각을 알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생각을 숨긴다거나, 생각인 척 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요.
그렇기에 우리가 타인을 정말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진짜 '생각'이 어떠한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면, 그리고 고요한 시간에 당신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기우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면, 나는 당신이 고통의 장소를 여행하고 있는지 평화의 장소를 여행하고 있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제임스 앨런, [운명을 지배하는 힘]
모든 행동의 기반에는 '생각'이 있습니다.
진실한 행동이든, 거짓된 행동이든 생각이라는 작용을 통해 외부로 나타나게 되죠.
사람은 하루에도 수만 번 생각이 오간다고 하지만, 그래도 각자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생각의 패턴'이란 게 있을 텐데요.
생각의 패턴은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 및 감정과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만일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생각의 방향도 긍정적으로 흘러갈 때가 많을 것이고, 감정 또한 그에 맞게 딸려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좋은 기분으로 일상을 보낼 수 있겠지요.
그러니 생각의 패턴이 어떤지만 알아도, 우리는 그 사람이 삶에 대해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마주하기 좋은 시간은 홀로 고요히 있는 시간입니다.
홀로 있을 때는 아무런 외부의 간섭을 받을 일이 없기에, 오롯이 자신의 생각을 대면할 수 있게 되죠.
만일 요즘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다'거나, '별로 문제될 게 없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가 않다'거나, 자꾸 '화가 날 일만 생긴다'거나, '사람들에게 지쳤다'면
더더욱 혼자 있는 시간을 마련해 생각을 점검해 보셨으면 합니다.
만일 자신에 대한 타인의 태도 때문에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자아를 소중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에게 한 행동이나 말 때문에 상처받았다면, 그것은 당신이 고통스러운 자아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앨런, [운명을 지배하는 힘]
생각은 다른 말로, '자아'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쓰는 '자아가 강하다'는 표현에는, '생각이 강하다', '심지가 굳다'는 의미가 담겨 있죠.
자아를 마치 그 사람을 대변하는, 바뀌기 어려운 본질로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만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자아 역시 얼마든지 바꾸는 게 가능합니다.
아니면 자아를 그냥 내버려둔 채 살아갈 수도 있겠지요.
'자아'가 곧 '나'인데, 어떻게 내버려 둘 수 있냐며 반응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자아를 내보이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 생각도 없고, 감정도 들지 않는 순간은 자아를 내버려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그런데, 마치 텅 빈 백지상태가 된 것 같은 그 '멈춤'의 순간만큼 우리를 평온하게 해주는 때가 있을까요?
우리가 많은 번뇌와 감정에 사로잡혀 인생을 고통스럽게 느끼는 건, 오히려 내 생각을, 자아를 너무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우리의 참 모습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생각이 언제 바뀔지 모르기에 본질이 될 수 없듯, 자아 또한 우리의 본질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아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우리의 진짜 본질이지요.
그러니 타인이 상처를 입히거나 나에 대해 해석을 부여할 때는
'자아=나'가 아님을 알고, 진정한 나의 본질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아를, 생각을 초월하여 자신을 바라보세요.
그러다 보면 타인 또한 자아를 초월한 존재임을 알게 될 것이며
타인의 자아에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처음의 논의로 돌아온다면,
우리가 타인을 알기 어려운 진짜 이유는 사실
그 사람을 자아의 눈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며,
변화하는 '자아'가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아를 초월해 바라본다면
타인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은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발견할 것입니다.
변함없고 영원한 진리는 당신의 의견이나 나의 의견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우리는 진리 속으로 들어가거나 진리 밖에서 머물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의 공방은 변죽만 올릴 뿐이며, 결국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로 향하게 된다.
-제임스 앨런, [운명을 지배하는 힘]
우리는 자아 너머에 있는 존재,
자아를 포함해 스스로의 삶을 창조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입니다.
그게 우리 모두의 변치 않는 진실입니다.
그 진실만을 품고 나아가는,
진리가 아닌 것에 아파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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