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자네는 죄인 안에서, 자네 안에서, 모든 사람 안에서 생성되고 있는 붓다, 가능성을 지닌 붓다, 숨겨져 있는 붓다를 존경해야만 하네.
친구 고빈다여, 이 세상은 불완전하지 않고 또는 완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지도 않다네. 아니, 세계는 매 순간 완전하네.
모든 죄는 이미 그 자체 안에 자비를 품고 있고, 모든 어린아이는 이미 자기 안에 노인을, 모든 젖먹이는 죽음을, 모든 죽어 가는 사람들은 영원한 삶을 지니고 있네. 도둑과 노름꾼 안에도 붓다가 머물러 있고, 브라만 안에도 도둑이 머물러 있는 법이네.-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우리는 세상에서 인간이 행한 과오, 또는 성취를 보며
인류 공통이 지닌 특성, 곧 인간이기에 지닌 한계, 혹은 인간이기에 지닌 잠재력에 대해 말하곤 합니다.
계속해서 성과만 거두는 삶도,
실패만 하는 삶도 없습니다.
인간의 삶은 바다의 물결처럼 크고 작은 굴곡들이 반복되며 진행되죠.
이처럼 인간은 살아감에 있어 상승과 하강을 오간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존재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특히 대중의 신망을 얻던 사람이 한순간 자신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했다거나, 신망까진 아니어도 예상 밖의 인물이 잘못을 범할 때면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란 없으며,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을 쉽게 떠올리게 됩니다.
타인의 부족함, 나의 부족함, 인류의 부족함을 전제하지 않고서, 우리가 맞닥뜨려야 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죠.
이렇게 우리는 삶 속에서,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당연하다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데
만일 누군가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헤르만 헤세는 그의 작품 [싯다르타]를 통해 인간과 세계는 '완전하다'는 관점을 드러내는데요.
선인이든 악인이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 안에는 완전을 상징하는 '붓다'가 있으며,
이 세상 역시 매 순간 완전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말 그대로 '소설'이기에 소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요?
사람은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며, 세상 또한 예측 불가능하기에 수많은 가능성으로 넘치고 있다는 점을 동의하신다면,
그 가능성 중 어디에 '초점'을 둘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 잘못의 범위가 사회에 해악을 미칠 정도라면 언론에 보도되고, 그 언론을 접한 우리는 은연중에 극악무도한 범죄자와 자신을 구분 짓게 되죠.
더욱이 뉘우침이 없는 범죄자를 볼 때면, 저 사람은 갱생의 가능성이 없으며 인간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존엄함을 갖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박탈당했다고 볼 수 있는 걸까요?
인간이 인간의 자격을 상실한다면, 무어라 불러야 하는 걸까요?
극단적인 예를 들었습니다만, 우리는 꼭 범죄자가 아니고서라도 모든 사람에 대해 계속하여 본인의 기준에 빗대어 판단이라는 걸 하게 됩니다.
그 사람의 현재 행동을 비추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지를 예측하게 되죠.
그런데, 이때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인식이 아닌, '완전하다'는 인식─붓다를 품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바라본다면
우리는 어떤 예측을 하게 될까요?
사실,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타인의 실수를 비난하기보다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앞으로 개선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품어선 안 됩니다.
자신의 실수에 있어서도,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면 자책하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불완전함을 납득한 사람이라 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어 하며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를 추구하죠.
만일 의지라고도 부를 수 있을, 이 추구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런 기대도, 실망도, 발전도, 자극도 생기지 않을 것이며
소위 살아 있더라도 살아 있는 것처럼 느낄 수가 없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겁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음 단계를 갈망합니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추구심이 있다는 건,
우리의 무의식에 완전함에 대한 열망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겁니다.
표현을 달리 하자면, 붓다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겁니다.
삶에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 많은 가능성을 펼치며 불완전함이 아닌 완전함을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왜? 그래야 행복해지니까요.
완전함이 우리의 진짜 본성이며, 본성에 머무를 때 우리는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가장 나답게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우리가 매 순간 그런 상태라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 역시 완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의 완전함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의 완전함을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반대로, 매 순간 우리가 스스로를 불완전하다고 느낀다면
내가 영향력을 미치는 세계 또한 완전하다고 느낄 수가 없을 겁니다.
여러분, 정말 여러분 안에는, 모든 사람 안에는 붓다가,
곧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완전한 존재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세계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분명한 건, 생각한 그 방향대로 세계는 여러분의 생각을 증명하는 증거들을 계속해서 내보일 것이며
여러분의 존재는 여러분 스스로가 생각한 대로 창조되어질 것입니다.
우리에겐 모두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만,
저는 여러분 각자가 진정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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