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주일은 일요일부터 시작된다. 토요일은 도서관이 일찍 닫기도 하고 일요일부터는 시작을 해야 일주일이 돌아간다. 평일 오전에는 정해진 스케줄이 없고 할 일만 있다보니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이번주는 일단 아침부터 집에서 나가기로 했다. 학교를 가든 카페를 가든 일단 나가기. 그렇게 한 덕분에 토요일 하루를 마음 편히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주는 열심히 고독을 즐겼다. 거의 하루종일 혼자 다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것도 아니므로 자발적 고독이라 할 수 있다.
짐이 별로 없어 거실에서 울리는 에코에 기대 노래도 불러보고, 빨리 갈 수 있는 길 대신 멀리 돌아서 약간의 드라이브를 하고. 그런 와중에 자꾸만 어디를 가고 싶은 걸 보니 이 도시에 적응을 마쳤나보다.
토론토, 런던, 코펜하겐, 뉴욕… 친구들이 있는 곳을 떠올려보고 교통편도 찾아봤다. 하지만 이 도시에서 움직이는 건 시간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무리였다. 워싱턴 DC를 갈까 했지만 하루에 왕복 6시간 운전은 자신이 없었다. 고민 끝에 리치몬드를 선택했다. 여름에 한인마트 때문에 한 번 간 적이 있지만 정말 마트만 다녀왔었다. 그땐 운전도 미숙했을 때라 시속 7-80 마일로 달리는 고속도로가 무서웠고, 다시 갈 생각을 못했다.
챗GPT와 여행 동선을 짜보려 했지만 시원찮아서 아무 카페나 일단 찍고 출발했다. 카페에 오니 벌써 열 시. 카페에서 논문을 한 편 읽는 게 목표였지만 이미 실내 좌석은 다 차고 야외 좌석밖에 없었다. 따뜻한 아아 같은 날씨에 바람은 시원하고 햇살은 따스했지만 아무래도 논문은 무리였다. 결국 베이글 하나와 라떼를 마시고 그냥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주택가에서는 확실히 할로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VMFA(Virginia Museum of Fine Arts)도 들러봤다. 역시 나는 큰 실내 공간을 좋아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으며… 다음에 리치몬드를 온다면 여기서 할 일을 조금 하고 움직여야겠다. 벤치에 앉아있는 커플들, 삼삼오오 모여 뭔가 같이 먹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자리를 옮기려니 어디를 또 가야할지 모르겠어서 빈티지 샵을 찍고 몇 군데 들러봤다. 잊고 있던 빈티지 냄새가 코에 훅 들어왔다. Canal Walk가 유명하길래 찾아가다 엉뚱하게 다리를 건너서 어디론가 가버리고, 주차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해 30분을 뱅뱅 돌았다. 엉뚱한 주차장에 잘못 들어갔다 나오면서 벽에 차 뒷쪽을 또 한 번 긁었다. 새 차 샀으면 어쩔 뻔 했는지… Canal Walk는 내가 생각한 뷰가 전혀 아니기도 하고 물이 너무 더러워보여서 10분 만에 빠져나왔다. 시끌벅적한 아이리쉬 펍에 들어가 피시앤칩스를 먹고 마지막은 한인마트로 마무리했다.

감자수제비와 초록매실, 국거리 소고기, 참기름, 김 등 한국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식 먹거리를 샀다. 왕복 150 마일 운전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팠지만 집에 와서 소고기무국을 끓이고 소고기미역국 밀프렙을 해뒀다. 냄비가 작아서 2인분밖에 안되지만 뭐든 쉽게 질리는 나에게 두 번이 딱 적당하다.

그렇게 나만의 토요일을 보냈다.
벌써 겨울이 오고 있고 봄학기 수강신청도 시작되었다. 추운 날씨에 마음이 허한 날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어디 아프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불안에 시달리지 않게, 내가 나를 잘 챙겨주고 있다.
도로 위 스타벅스에서,
Poem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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