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에서의 시간도 곧 마지막이다. 떠나는 게 내 소질이긴 한 건지, 혼자 여행을 가는 건 너무 오랜만이지만 낯선 도시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도 알면 더 잘 보인다고, 비행기에서 유튜브로 보스턴을 공부했다. 다음날 걷던 Newbury Street에서 왜 이 길이 걷고 싶은 길인지, 안전한 길인지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왜 보스턴을 당일치기로만 가나, 보스턴이면 대도시 아닌가 생각했는데 며칠 돌아다녀보니 같은 길을 몇 번씩 걷고 있었다. 관광 계획이 특별히 없었음에도 볼 건 다 보고 가는 것 같다. 에픽하이도 보고.

아쉬울 정도는 아니지만 한 두 개 정도는 남겨두었다. 다시 올 일이 없진 않을 것 같아서. 보스턴에서 가장 오래 기억될 것들은 하염없이 걸었던 시간과 내가 마주한 연구자들의 순수함이었다.
도미토리에서 이틀을 묵고 호텔로 숙소를 옮긴 후에는 대중교통을 타나 걸어가나 비슷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 대체로 걸어갔다. 지도를 켜놓고도 해가 더 많은 길로 가거나 궁금해보이는 길이면 계속 가거나 예뻐보이면 가만히 앉아있었다. 보스턴에서 너무나 많은 서울을 발견했다. 용산역, 여의도, 망원 한강공원, 서강대교... 베를린 공원이나 유럽 골목의 바이브도 짬뽕되어있었다. 그래서 더 낯설지 않았을 지도.

사진으로 남은 건 대체로 멋들어진 풍경이지만 혼자서든 함께든 하염없이 걷다 만나게 된 몇몇 순간들이 머릿속에는 더 선명하다. 다운타운에서 K팝에 맞춰 랜덤댄스를 추던 행복한 소녀들, 차려입은 사람들을 따라가다 조성진의 콘서트가 15분 후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 정자 같은 곳에 모여 파티마냥 뛰어놀던 밴드와 사람들, 헌책방에서 만난 강아지책, 너무나도 한강 같았던 곳곳에서 떠올랐던 과거의 기억들.
보스턴에 올 때 다섯 명을 만날 계획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시간을 부탁한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에는 미안한 마음보다도 다른 사람들은 연구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마음이 더 컸다. 실제로 만날 수 있었던 건 세 분의 연구자였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각자가 가진 연구에 대한 태도와 지적 호기심이 느껴졌다. 연구는 결국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중에서도 중요한 문제라 판단하고 궁금한 것을 긴 시간 탐구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행위에는 겸손함, 순수함, 의심, 자신감이 모두 필요해 보였다. 다음 프로젝트를 생각하면서 확실하게 결과를 내어줄 수 있는 연구가 무엇인지, 그 유혹에 자꾸 휩쓸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 연구를 통해 정말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훨씬 많이, 더 오래 해야겠더라.

방 밖으로 나가야 어떤 일이든 벌어진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깨달은 여행이었다.
From Boston,
Poem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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