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8] 🌻 흐린 날이 좋은 이유: 영국 밴드 노래 듣기에 딱임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와 벌써 연말 다 됐네!' 하며 맞았던 11월도 어느덧 절반을 넘겼습니다. 들르는 카페며 백화점마다 슬슬 크리스마스 장식을 꺼내놓고, 외투 없이 나서면 어깨가 영 허전한 날씨가 됐네요. 나무들이 단풍 옷을 우수수 던져놓는 속도에 맞춰 두터운 겉옷을 꺼내 입으며 네 번째 계절을 맞이해야겠습니다.

요 며칠 날이 흐렸어요. 제 근황으로 말하자면 레터를 보내는 이번 주 내내 연차를 썼답니다. 왜인지 휴가 기간에 제 차례 레터를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기분 탓일까요?). 아무려면 저로서는 평소보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넉넉할 때 글과 노래를 부칠 수 있어 좋은 일입니다.

주말에 찾은 춘천에서는 우비를 입고 비를 맞으며 레일바이크 페달을 밟았어요. 여름의 장마처럼 억수같이 쏟아지거나 겨울 비처럼 뼛속까지 시리지 않은, 직선으로 떨어져 땅에 그대로 스미는 가을 비였지요. 흐린 날의 휴가를 즐기며 가장 많이 들은 건 그만큼 흐린 땅에서 만들고 부른 영국 밴드들의 노래였습니다. 낙엽을 적시는 가을 비처럼 적당한 우울과 서정을 품은 노래들을 함께 듣고 싶어 공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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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asis - Sunday Morning Call

2000년 발매한 오아시스 정규 4집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의 수록곡이다. 1~3집의 앨범 커버는 대단한 명성을 누린 만큼 오아시스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에너제틱한 이미지가 강한 편인데, 4집부터는 멤버 교체 등의 이유로 음악적인 톤에 변화가 느껴진다. 물론 그들의 팬으로서는 어떤 날씨와 기분에서도 찾아 들을 스펙트럼이 드넓으니 그저 달가운 일이다.

보통 오아시스 노래라고 하면 꾀꼬리처럼 까랑까랑 귀에 꽂히는 리암 갤러거의 보컬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Sunday Morning Call>은 송 라이터인 노엘 갤러거가 불렀는데, 이렇듯 이따금 보이는 노엘 보컬만의 묘미가 상당하다. (TMI: 나는 노엘 갤러거 솔로 곡으로 오아시스에 입덕했다) 묘사하자면 아주 깜깜한 심해를 유영하듯 편안하고 짙은 느낌의 목소리라고 해야 할까. 두터운 극세사 이불로 몸을 감싼 것처럼 묵직하고 포근하다.

내가 생각하는 이 노래의 또다른 묘미는 4집 앨범 커버다. 선데이 모닝콜이라니, 지극히 평화롭고 나른한 이미지지만 어딘가 장엄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커버의 도심 풍경이 아이러니를 준다. 가사 역시 늘어진 휴일의 평화과 희망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듯,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 쉼없이 질문을 던진다. '정말 모든 일이 잘 될까? 네 생각과 말들이 영원할까?' 뭐... 일요일 알람을 들으며 떠올리기에 나쁘지 않은 철학적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 Keane - Tear Up This Town

킨(Keane)은 1997년 데뷔한 영국 밴드다. 특징을 꼽자면 기타 없는 밴드라는 점. 대신 피아노가 있어 노래가 전체적으로 서정적이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그 옛날 개그콘서트의 모 코너 오프닝으로 쓰였던 <Everybody's Changing>이 매우 유명하다) 보컬인 톰 채플린의 목소리는 피아노 반주만큼이나 힘 있으면서도 부드러워서 무슨 곡이건 심신을 톡톡 도닥여주는 것만 같다.

지난 주말 춘천으로 가는 차에서 바라본 하늘은 당장 편지지로 써도 무방할 만큼 미색에 가깝게 흐린 날씨였다. 휴가가 시작된다는 설렘에 적당히 들뜬 노래를 듣고 싶으면서도 지금의 감성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얹어놓고 싶어 고민하던 차에 떠오른 밴드가 킨이었다. 따뜻하고 희망적이지만 쾌청한 날씨에는 살짝 아쉬울 것 같은, 아주 침잠해버릴 듯 우울한 날에도 붕 뜰 것 같은, 바로 지금의 애매한 날씨에 딱 어울리는 노래!

꼭 휴가지로 달려가는 상황이 아니어도 킨의 노래들은 요즘의 늦가을과 참 잘 어울린다. 언제 이렇게 한 해가 다 갔을까, 제법 차가워진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종종걸음을 치면서도 한 해의 기특하고 긍정적인 조각부터 머리를 스치게 하는 그런 멜로디. 오늘 소개한 <Tear Up This Town>은 2016년 개봉한 판타지 영화 <몬스터 콜>의 사운드 트랙이기도 하다. 엔딩 크레딧에서 영화의 감성을 몇 배쯤 증폭해주니, 쌀쌀한 날씨에 함께할 영화로도 함께 추천하고 싶다.

🌻 Kent - Sverige

먼저 밝혀두자면 레터 제목과 달리 켄트(Kent)는 지금은 해체한 스웨덴 밴드다. (언제나 재생목록 한 구석에서 존재감을 발하는 영국 밴드 노래들은 다른 기회에 더 구구절절 소개하는 것으로 하고...) <Sverige>는 지난 레터 36호에서 소개한 켄트의 노래 <Socker>와 같은 앨범 수록곡이다. 뜻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스웨덴어로 제목과 가사가 이루어져 있어 몽환적이고 편안한 분위기에 그저 파고들게 된다. 스웨덴어 'Sverige'의 발음은 스베리예, 뜻은 '스웨덴'이다.

켄트의 음악은 언제나 가보지 못한 북유럽에, 그 적적한 풍경에 로망을 품게 만든다. 백야가 끝없이 이어지고 요란벅적한 분위기라고는 없어 사람을 우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던데, 그토록 하얗고 흐린 날씨여도 '아무려면 좋다' 싶어지는 것이다. 한편으로 춥고 시린 곳에서 어떡해야 이렇게 따스한 오두막에서 손짓하는 듯한 기타와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지 정녕 궁금해진다.

추운 날씨의 장점은 아늑한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의 안온함을 더 짙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류장에서 몸을 떨다 버스에 올라탔을 때, 유독 고단했던 하루 끝에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러 노란 전구 빛이 새어나오는 선술집으로 들어설 때, 하루의 의무를 다하고 온몸을 빨랫감처럼 폭닥한 이불에 뉘였을 때... 켄트의 연주와 목소리는 그 따스한 순간을 더욱 아름답게 기억하게 한다. 아마 추워지는 이 계절에도 그들이 남긴 노래에 많은 빚을 지게 되리라고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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