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기에서 바다를 내려봤을 때, 얼핏 보면 똑같은 물결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똑같이 생긴 물결은 하나도 없습니다. 꽃밭도, 숲도 그렇고요. 거창하게 말해 생명과 우주의 원리라고나 할까요. 쿠사마는 이를 작품에 담으려 했습니다.
“캔버스에 끝없이 그물망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테이블, 바닥 위, 내 몸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신경증은 작업에 도움을 줍니다. 그림 속 무늬가 무한히 뻗어나간다는 생각, 그림이 나고 내가 그림이라는 생각이 작품의 깊이를 더 깊게 만든 거지요.
“물방울무늬를 그려 넣으면 원래 재료는 보이지 않고 물방울무늬만 눈에 띈다. 그러면 무서웠던 것도 무섭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게 하나하나 작품을 만들 때마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예술가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대단한 건 절대 아니다. 정신병에 걸렸다고 해서 작품이 더 좋은 것도 아니다. 반 고흐의 그림이 비싼 건 그가 미쳐서가 아니다. 한 인간이 고난을 극복하려고 끝까지 싸웠고, 그 흔적을 작품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고난에 맞서 싸우는 인간은 존엄하고 아름답다. 나도 내가 위대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고난과 싸우는 한 사람일 뿐이다."
92세의 나이에도 쿠사마는 여전히 작업실과 정신병원을 오갑니다.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솟아난다. 불면증이 있어서, 졸다 깨서 작업하기를 반복한다. 내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하나라도 더 현실에 남기는 게 내 일이다. 술과 담배를 할 시간도, 다른 작가들과 만날 시간도 없다. ‘좋은 예술을 만들고 싶다’는 게 오직 내 소망이다. 아직도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
레베카 솔닛의 말처럼 장소가, 장소가 거느리고 있는 생물이 사람보다 더 믿을 만하고 사람보다 더 오래 관계가 유지되곤 한다. 내게 있어 그 장소엔 항상 나무가 있다.
'숲과 들판과 곡식이 자라는 밤을 나는 믿는다'는 소로우의 말이 실감되게, 아침이면 그들은 자태를 달리하고 있었다. 산책길 몇몇 나무들이 나의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오거나 나를 그들의 세상 속으로 끌어들였다. 스무 살쯤 되는 벚나무와 감나무, 쉰 살이 넘어 보이는 이 메타세콰이아들이 그랬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