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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당신이 눈을 뜰 때마다 계좌에 자동으로 8만6400달러가 입금된다. 그리고 매일 밤 그 돈은 계좌에서 사라진다. 당신이 깨어 있는 동안 얼마를 썼건 상관없다. 다음날 어김없이 또 8만6400달러가 들어온다. 밤이 되면 또 사라진다. 이게, '시간'이라면. 당신에겐 매일 '8만6400초'의 시간이 주어진다. 24시가 넘어가면 사라진다. 이래도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영화 '빠삐용'에서 빠삐용에게 종신형의 올가미를 씌운 죄목 그게 '인생을 낭비한 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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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이 통제하거나 끝내 길들이는 데 실패하고 남은 것이 삶이다. 일터에 나가 스스로를 시스템에 길들이고 돌아왔을 때 남아있는 게 삶이다. 그 작고 여리고 몰캉몰캉한, 그러나 과로에 너덜너덜해진 삶을 보호하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한다.
누구나 한때 찬란한 아름다움에 눈부셔 본 적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 찬란한 아름다움이란 과연 실재했을까. 마치 상상의 금각사처럼, 그 아름다움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모두 잠든 밤에 조용히 내린 첫눈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잠들었기에 그 눈을 보지는 못하고, 다만 꿈에서 그 눈발을 본다. 그러니 그 아름다움은 실재하는 것인가. 깨어나면 눈은 이미 그쳤고, 일상을 살기 위해서는 더러워지기 시작한 눈을 쓸고 치우는 일만 남았다. 쓸고 치우는 일, 그것이 삶이다. 정작 젊었을 때 젊음을 의식하기 어렵듯이, 아름다웠던 순간에 아름다움을 의식하기는 어렵다. 결국 지나간 아름다움의 잔해를 꼼꼼히 치우는 게 생존자의 몫이다.
올 한 해도 경황없이 출근하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잔병치레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면서 늙어갈 것이다.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과 맞서야 하는 생명체가 인간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기 자신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이러니 삶은 얼마나 고단하고 어려운 것인가.
“사는 것은 살아지는 것에 불과하다. 무엇에 관해 말하는 것이야말로 창조하는 것이다.”(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세계는 권력자 것일지 몰라도, 삶만큼은 상상하며 읽고, 상상하며 쓰고, 상상하며 말하는 개인들의 것이다. 올 한해도 상처 입은 삶을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 볼 그들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삶이 삶을 바라보는 시간, 그 시간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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