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날 두 가지를 배운 셈인데, 하나는 철학이란 경이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철학이란 모든 것을 의심하는 태도라는 것이었다. 과학 역시 이런 경이와 의심에서 출발하거니와, 어쩌면 앎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인지도 모르겠다.
10권의 철학, 인류학, 과학기술학 책에서 길어낸 생각과 서로 나눈 대화가 정갈하게 서술된 이 책에서 또 한 번 철학의 정신을 배웠다. 요컨대 철학의 출발점인 의심의 가장 마지막 도착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며, 여기서부터 타자에 대한 이해와 만남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주장이었다.
#
전도서는 유독 즐기라는 말을 자주 한다. 즐기는 이유는 인생이 허무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혜가 있다고 해서 오래 기억되는 것도 아니다. 지혜가 있다고 해도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슬기로운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사람도 죽는다. 그러니 산다는 것이 다 덧없는 것이다. 인생살이에 얽힌 일들이 나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될 뿐이다.”(전도서 2:15-17) 신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즐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은 덧없기에 즐기라고 한다.
반드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과 즐겨야 한다. 이유는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흘러가기 때문이다. 아빠와 축구를 하고 싶어 하는 아홉 살 아들은 당신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홉 살 아들과 축구하며 행복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한 번 놓치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스무 살의 아들과 비싼 돈을 주고 토튼햄 경기를 볼 수는 있겠지만, 아홉 살 아들과 가졌어야 할 즐거움과는 같을 수 없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