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를 위해 인구를 줄이자!?

소비자와 청지기, 그 갈림길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2026.08.11 | 조회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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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를 위해 자녀를 덜 낳자!?

환경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 무엇일까요? '자녀 한 명 덜 낳기'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글에서 나온 내용입니다.1 텀블러를 쓰고, 에코백을 들고, LED 전구로 바꾸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일들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구가 줄면 소비가 줄어들테니까요. 소비가 줄면 환경 파괴가 줄어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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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본 자료는 기후 행동을 감축 효과에 따라 나누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없이 생활하기, 장거리 비행 피하기, 재생에너지로 바꾸기, 전기차로 전환하기, 식물성 식단을 선택하기는 고효과 행동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텀블러와 에코백 사용은 저효과 행동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작은 실천이 쓸모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텀블러를 쓴다고 하면서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타고 종이컵 쓰는 사람이 실질적으로는 더 환경을 보호하는 셈이죠. 작은 것도 해야겠지만, 무엇을 중점적으로 해야할지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기후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 한 명 덜 낳기’는 어떤가요? 효과는 다른 무엇보다 압도적입니다. 사람이 많아서 지구가 힘들다면, 사람을 줄이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 수도 있을까? 인간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타노스의 말이 떠오릅니다. 


맬서스와 헨리 조지

사실 이러한 주장의 원조는 맬서스입니다. 18세기 영국의 토머스 맬서스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인구는 생존에 필요한 자원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 빈곤과 기근이 생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쓴 '인구론'에는 이러한 주장이 담겨있습니다. 맬서스의 주장은 이후로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진보와 빈곤'을 쓴 것으로 유명한 헨리 조지는 이런 맬서스의 주장에 반대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단순히 먹어치우는 동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씁니다.

“매와 인간은 똑같이 닭을 먹지만, 더 많은 매가 존재하면 곧 닭의 숫자는 그만큼 줄어드는 반면에, 인간이 많아지면 닭의 숫자는 그에 따라 더 늘어난다.”
— 헨리 조지(Henry George), 『진보와 빈곤』

사람은 노동하고, 분업하고, 기술을 만들고, 주변 세계를 바꾸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구의 증가는 생산과 조직의 힘을 키울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한 상황, AI는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를 막고자하는 인류의 노력에 다시 찬물을 끼얹은 것 같기도 합니다. AI가 핵무기처럼 국가의 전략무기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엄청난 전력을 요구하는 데이터센터를 짓지 말자는 구호만으로는 변화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4 위기는 더욱 커질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위기가 심각해질 때, 우리가 '저지른' 책임을 사람 '수'의 문제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맬서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인구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죠. 타노스의 주장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로만 치부하기엔 기후위기가 너무 심각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2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기후위기 앞에서도 물어야 합니다. 기후를 위해,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 인구를 줄이는 방안이 '방법' 중 하나로 다루는 생각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있습니다. 인간은 먹고, 쓰고, 버리는 존재입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자. 사실입니다. 우리가 파괴해왔고, 사람의 욕망이 지금의 위기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만 본다면 우리는 소나 돼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후를 위해 육식을 줄여하는 것처럼, 기후를 위해 인간을 줄여야하는 것이라면 말이죠.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땅과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 구절은 오랫동안 자연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허가증처럼 읽혔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2장으로 가면 장면이 달라집니다.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 창세기 2장 15절, 새번역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다는 것은 창조한 세계를 다스리는 자로, 또 창조세계를 선물로 받은 자로서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베서니 행크 호앙과 크리스틴 존슨은 『Justice Calling』에서 창세기 1장 28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창세기 1장 28절은 실제로 창조세계를 책임 있게 돌보는 청지기가 되라는 위임입니다.”
“Genesis 1:28 is actually a commission to be responsible stewards of the created world.”
— Bethany Hanke Hoang · Kristen Deede Johnson, Justice Calling: Where Passion Meets Perseverance

IVP 성경신학 사전에서도 이 명령을 착취의 허가증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인류에게 환경을 착취해도 좋다는 백지 위임장을 주지 않습니다.”
“It does not give humankind carte blanche to exploit the environment.”
— New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 Exploring the Unity and Diversity of Scripture, “Creation”

지금의 인간은 환경파괴의 주범입니다. 소비자로만 살아갈 때 우리는 지구를 망가뜨립니다. 그렇게만 살아갈 때, 우리는 소와 돼지처럼 모두를 위해 그 개체수를 줄여야하는 존재로 추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전부는 아닙니다. 인간은 지구를 파괴할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연을 관리할 수 있는 존재, 회복시킬 수 있는 피조물입니다. 물론, 그 일을 해내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어렵다고 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믿음마저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인간의 가능성은 막연한 긍정이 아닌 하나님의 손길이 담긴 것이니까요. 

인간은 지구를 파괴할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연을 관리할 수 있는 존재, 회복시킬 수 있는 피조물입니다.


인간에 대한 시각은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각만이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비자로만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그리고 이 세계에 맡겨진 것을 돌보는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것이고, 우리 행동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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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원 드림

상식과 신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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