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이 커피를 배운다면

2026.10.01 | 조회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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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 바리스타 교육을 듣고 있다. 퇴사를 하고 나서 이것저것 배우려고 했는데, 그 중 첫번째가 바리스타 교육이 됐다. 처음부터 바리스타를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원래 첫번째는 사진이었고, 두번째는 한식조리기능사였다. 다만 그 둘의 시간을 고려했을 때 강의 시작하는 때까지 시간이 남기도 했고, 시간을 겹치지 않게 하려고 시간표를 맞추다보니 묘하게 어그러지는 게 있어서 우선은 바리스타 교육부터 듣기로 했다.

 

교육을 듣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아침에 무언가 스케줄을 만들기 위함도 있었다. 강제로 나가야 하는 일이 없다면, 일찍 일어나더라도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만 보고 있기 일쑤였고 그나마 내일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니 늦게 자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 자체가 즐거움일 수도 있지만 그것도 며칠이지, 2-3주 정도 지나니 아침을 그냥 날려보내는 일이 아까웠다. 돈을 내고 교육을 들으면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 일찍 잘 수밖에 없겠지 싶었다. 

 

게다가 백수의 삶은 좋은 점도 있지만 내게는 힘든 점도 있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하루가 답답했다. 커리어에 매달리지도 않고, 열심히 사는 삶과도 거리가 멀었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자꾸 아깝게 여기게 됐다. 그저 한국사회의 가스라이팅에 당해서 그런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그 생각을 지우는 건 쉽지 않으니까.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에 평소에는 엄두도 내보지 못한 걸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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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교육은 기대를 충족하는 걸 넘어 그 이상이었다. 일단 오래간만에 되찾은 아침의 활기가 좋았고, 길어진 하루도 반가웠다. 덕분에 수면패턴도 조금 자리를 잡게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배우는 일 자체가 재밌었다. 누군가를 붙잡고 30분은 떠들고 싶을 만큼 너무나 재밌는 일이었다. 첫 날 이론수업을 열며 선생님은 '이론은 다들 지루해하셔서 첫 날만 할 거에요~'라고 했지만 웬걸, 이론부터도 이렇게 재밌을 수 있나 싶었다.

 

이후에 다음 날은 모카포트를 비롯한 도구들로 추출법을 배우고, 다음 날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을 하고, 다음 날은 카푸치노에 기준을 맞춰서 배웠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게 새로움 투성이었다. 10개가 족히 넘는 동작들 자체도 새로운데, 그 동작들마다 제대로 된 방법이 있고 그 이유가 다 붙어 있었다. 더 효율적이어서인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더 좋은 커피 맛을 내기 위해였다. 원두의 특성에 따라서, 로스팅에 따라서, 포터필터에 담긴 원두의 양에 따라서, 탬핑을 한 강도와 정도에 따라서... 모든 것이 유동적으로 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동작들이었다. 

 

나름 커피 자체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유명한 카페들도 많이 방문해보고, 주워들은 지식들도 있었지만(예를 들어 아라비카 원두와 로부스타 원두의 차이라든지) 압도적인 새로운 경험의 양 앞에선 무의미했다. 들을 땐 다 아는 것 같았지만 행동으로 나서 직접 추출해보면 놓치는 것 투성이에 기억하더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들 뿐이었다. 그렇게 머신기 앞에서 멀뚱멀뚱하고, 당황해하고, 헷갈려하며 흔히 말하는 '얼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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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보가 된 경험이 뭐가 그리 즐거웠을까 생각하면, 일단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는 일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7년 정도 해 온 마케팅 일은 대부분은 이미 해온 일이거나, 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자취를 처음 했던 1년 간 역시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5년째인 지금은 대부분은 해 본 일들이 됐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을 처음 갔던 때와 같은 사회적 이벤트도 여러번 겪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줄어 들었다. 대부분은 '배우기'보단 '해왔던 일의 반복'인 일상이 됐다.

 

더해서, 어쨌거나 결과가 보이는 일이었다. 내가 부족하더라도 원두를 갈고, 원두를 평평하게 만드는 레벨링을 하고, 그걸 다시 탬퍼로 누르고, 머신에 끼워서 버튼을 누르고, 뽑은 다음 다시 기계를 청소하는 일, 그 결과 끝에 한 잔의 에스프레소 잔이 만들어지는 일은 내 몸을 쓴 만큼 내 눈 앞에 결과가 보였다. 거기에서 '나라는 사람의 쓸모'까지 찾는다고 하면 호들갑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묘한 뿌듯함이 따라오는 건 사실이었다. 

 

사실 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카페인 탓이다. 카페인을 먹으면 머리가 깨질듯 아파서 일상이 불편해지고, 그래서 피하고 있다. 커피 맛으로 유명한 카페에 가면 그래서 함께 간 일행의 커피를 한 입 정도 맛보는 수준이거나, 평가를 듣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에 그친다. 디카페인조차도 마시지 않은지 꽤 됐고, 당연히 커피의 맛이나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흔히 말하는 '산미' 정도를 적당히 구별해내는 정도고, 애초에 마시질 않으니 세심한 부분은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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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고 배운다니, 문장만 놓고 보면 우스운 일이지 싶다. 다른 수강생들이 직접 내린 커피를 시음하고, 아메리카노나 라떼로 만들어 먹을 때 나는 그저 가져온 텀블러에 담아두었다가 가까이 사는 친구나 지인에게 나눠줄 방법을 고민할 뿐이다. 하지만 내가 마시지 못하더라도, 커피를 내리는 일을 배우는 건 충분히 즐거운 일이란 것 정도는 말할 수 있다. 한 잔의 커피를 내리는 일은 내가 '커피를 못 마시니까'라면서 피해왔던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니까.

 

이번 추출 때는 왜 저번보다 빠르게 혹은 느리게 나왔을지 이유를 고민하고, 다음엔 탬핑을 조금 약하게 해볼까 생각하고, 탬핑의 각도를 선생님 말씀처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몸을 움직여보고, 모카포트와 이브릭으로 만드는 커피는 어떻게 다른지, 그 방식 차이에 따라 맛과 향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배우고, 곱게 갈린 원두를 어떻게 해야 딱 맞는 양을 한 군데 흐트러짐 없이 잘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한 잔 한 잔마다 조금씩 미묘하게 달라지는 커피가 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원두에 따라, 그 날의 습도와 온도에 따라, 로스팅 정도에 따라, 그 날 바리스타의 동작과 각도 조금씩의 차이에 따라 맛과 향이 조금씩 변한다는 걸 알고 나니 한 잔 한 잔은 100% 같을 수 없는 각기 다른 세상이구나 싶다. 그리고 그 한 번 추출하는 일을 할 때마다, 커피를 내려볼 때마다 나는 새로운 세상을 또 배워 나간다. 원두를 너무 많이 받은 세상, 고르게 펼치지 못한 세상, 너무 꽉 탬핑한 세상, 포터필터를 꽉 끼우지 못해 일부가 흘러나온 세상... 

 

그냥 주문하면 나오는 줄 알았던 커피 한 잔의 무게
그냥 주문하면 나오는 줄 알았던 커피 한 잔의 무게

 

커피는 마시지 못하지만, 그래도 커피를 만드는 일은 즐겁다. 매일 오전 9시까지 어딘가에 가는 일도 괜찮다. 오히려, 아침에 활동하는 내가 반가워질 정도다. 함께하는 수강생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삶과 세상이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기도 하고, 커피라는 주제에 빠져 새로운 세상을 이리저리 탐구해 나가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주기도 한다. 커피를 잘 아는 사람과 내가 배운 것에 대해 시시콜콜 떠들어 대는 일도 신난다. 한 달 간의 과정이 끝나고 시험을 잘 통과한다면,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바리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나름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곤 다음엔 또 뭘 배워볼까 궁리를 한다. 원래 배우려던 한식조리기능사 뿐 아니라, 가끔 취미로 하던 베이킹을 더 많이 배워볼까 싶다. 어린 시절 로망이었던 하모니카를 배워 보는 일은 어떨까 생각한다. 어제엔 인생 내내 미뤄두었던 숙제인 수영을 등록했다. 맥주병을 넘어 물 공포증에 가까운 나는 수영을 배워야지 하면서도 그간 '수영장들이 인기가 너무 많아서 등록을 할 수가 없네'라고 피해왔는데, 조금 거리가 있지만 등록이 가능한 곳을 찾았고 내 도수에 맞는 수경까지 주문을 해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운 것 중 하나는, 요리 학원에서 요리를 배우는 10대들의 존재다. 공간 곳곳에서 걷고, 뛰어다니고, 이야기하는 사소한 그들의 일상이 부럽기도 하면서, 묘하게 내게도 기운이 된다고 느낀다. '역시 젊음이란...'이란 말만 늘어놓는 어른이 되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쓰는 10대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젊음이 참 좋아'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 역시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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