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농촌 마을의 가장 가난한 집에서 남자아이로 태어나, 농장 일꾼으로 일하다가 72세에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자녀는 4명이었고 평생 농장 일꾼으로 일했다. 월에 20~25만원 정도를 벌었고 자산을 모으기보단 빚이 생겼다가 겨우 갚고 모으려고 하면 다시 빚이 생기고 갚는 삶을 반복했다.

우연히 알게된 웹사이트에서 하게 된 일종의 게임인데(https://1in8b.life/), 80억 분의 1의 인생을 경험하게 해준다. 어느 나라에 태어날지, 어떤 집안에 태어날지 등 통계 기반 확률로 정해진다. 빠르게 지나가는 삶 속에서 내가 일부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환경에 따라 오는 영향을 바꿀 순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선택 당한(?) Zain Chaudhry는 어린 시절에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선택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가지 못했다.
그 삶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지금 내 삶을 생각해 보게 된다. Zain은 평생 농장 일꾼으로 일해야 했는데, 그건 내가 선택한 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 아니 꽤 자주 나는 내 삶에 불평하곤 하지만 가끔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좋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건 Zain과의 삶을 비교했을 때 내가 나으니까 감사하게 살자와는 약간 다른 이야기기도 하다.
그동안 일반적인 여행 유튜브를 본 적이 없는데, 어쩌다 여행을 하는 유튜브 영상을 몇 개 보게 됐다. 그 중에는 방글라데시도 있었고, 중국도 있었다. 최근에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그 당시 도시가 그리워져서 세계테마기행과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찾아보기도 했다(그러고보니 원래 나는 그 두 방송의 엄청난 팬이다). 어쨌거나 최근에 다른 국가의 삶을 접하게 될 일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나를 반추하곤 했다.

귀국을 며칠 앞둔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에서였다. 밤 9시에 저녁 식사를 하는 문화에 맞춰 늦은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 산책을 하다가 광장에 있는 카페 테라스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제미나이에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는 내게 함께하고 있던 애인은 '폰 내려 놓고 그냥 광장의 사람들을 봐'라고 했고, 그 말대로 몇 분간 사람들을 관찰하던 나는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나는 이런저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장시간의 귀국 비행기를 잘 탈 수 있을지, 돌아가서는 백수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지, 불면을 겪을 때라 귀국하고 잘 잘 수 있을지... 걱정 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허나 사람들을 보다 보니 그 모든 걱정이 부질 없다고 느꼈다. 광장에서 배구 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10대들, 러닝을 하는 청년들, 카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이나 가족들, 광장 곳곳에 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다.
이 사람들은 각자의 삶이 있고, 거기엔 고충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즐거워하고 있구나. 삶이란 그런 거구나. 그냥 지금 내 앞의 모습, 내가 발 디딘 이곳, 내가 함께하는 사람들, 지금의 이 시간에 집중하면 되는 거구나. 그저 그걸 만끽하고 즐기면 되는 거구나. 오르막길 일 때도 있고 내리막길일 때도 있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있고 해가 쨍쨍 뜰 때도 있겠지. 중요한 건 그 앞길을 멀찌감치 내다보며 걱정하는 게 아니라 지금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거구나.
물론 그 때 얻은 안정이 평생 그대로 가진 않겠고 그조차도 순간의 감정이겠지만, 그 이후로 종종 나는 '단순하게 살자'고 생각하게 됐다.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힘든 건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밥 때가 되면 식사를 하고, 그 순간을 즐기면 된다. 잘 때가 되면 자고, 잠이 오지 않아 하얀 새벽을 보내는 날은 그저 잠이 오지 않는 밤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힘든 시기가 온다면 이 조차도 지나가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뭐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살 거라고 아등바등할까.

가상의 인물이지만, 파키스탄의 Zain 보다 내가 행복할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무엇으로 보나 조건은 내가 더 나을 것이다. 일단 한국에 태어났고,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행복은 다른 이야기다. 여행 영상에서 보였던 방글라데시, 스페인, 중국의 사람들도 그렇다. 몇십년 뒤 죽음을 앞둔 내가 돌이켜봤을 때 내 삶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정말 행복해'라고 자신할 수 있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린시절의 나는 그 말을 꽤 자신있게 할 수 있었다. 10대와 20대 나름 여러 고난(?)을 겪었지만 그래도 '난 꽤 행복하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 땐 삶이 조금 더 단순했다. 20살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하다가 새벽 4시 5시에 잠이 들면 '그저 오늘은 늦게 자네'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아프면 '아프네'하고 말았다. 미래의 내 인생에 약속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꽤나 낙관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백수의 삶을 불안해하는 지금의 나와 달리 그 시절엔 불안해하기 보단 여유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면,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단순하게 살자. 고민하고, 걱정하지 말고 지금 눈 앞에 집중하자. 나와 다른 80억 명은 눈 앞의 삶을 받아들이며 각자의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다른 삶을 상상하지도 못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평화롭고 안온한 삶에 만족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Zain은 평생 농사를 짓고 있을 것이고, 유튜브에서 본 방글라데시의 한 청년은 여행 온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즐거움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다른 80억 명에겐 이해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겠지.

80억 분의 1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 질문 창이 뜬다. 이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일까냐는 질문에 '가족'이라고 적어 넣었다. 삶은 별 다른 게 아닐지도 모른다. 다른 삶을 들여다보며 비교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앞서 걱정하기보단 눈 앞에 집중해서 살다 보면 어느새 끝나버리겠지. 여전히 나는 겁쟁이로 살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 때마다 몇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Zain만큼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나 마드리드 광장에서 보았던 평화로운 사람들의 표정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휴대폰 속 세상을 멀리하고 눈 앞의 세상을 가까이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교훈은 확실히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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