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정확히는 친한 사람들과 전화로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한다. 가끔씩 별 이유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어쩌다 시작한 통화로 한 두시간은 너끈히 대화하는 게 좋다. 길어지면 세 시간을 넘길 때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선 꽤 많은 사람들이 질겁하곤 한다. 자신은 전화가 싫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굳이 비율을 나누자면 싫어하는 쪽이 좋아하는 사람보단 많은 것 같다. 경험상 MBTI가 I인 사람들은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 싫다의 폭은 꽤 넓어서, 일부러 전화를 안 받는 경우부터(카톡을 하면 받는다) 보통 선호하진 않지만 상대가 걸어오면 응하기는 하는 경우와 몇몇 친한 사람과의 긴 통화는 좋다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내 오랜 친구 한 명은 전화를 하면 일단 받지 않는다. 그게 약올라서 부러 전화를 걸던 시기도 있었다. '카톡으로 하면 될 것'이라는 입장이고 전화는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다른 한 명은 전화를 선호하지 않았지만 최근 친한 사람들과의 긴 통화에서 그간 몰랐던 재미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최근 어느 모임에서도 전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나는 몇 시간이고 전화를 하기도 한다는 것과 감성적이 되는 날이면 그냥 친구 하나 하나에게 전화를 걸곤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덧붙여 예전 어느 날에는 아예 구글 미트를 켜고 새벽에 4시간 동안 떠들었다는 경험담을 풀었다가 사람들이 기겁을 하는 일이 있었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전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는 일이 좋다. 실시간으로 서로의 대화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자 전화를 거는 마음이 좋고 나도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기에, 지금 순간의 감정을 나누거나 이따금 "요새 잘 사는지" 궁금해질 때가 온다고. 그걸 메시지로 볼 수도 있지만 목소리로 전해 들을 때 괜스레 내 삶에 기운이 더해지는 느낌이 난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진지하고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게 좋다. 1대1의 상황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들고, 편한 공간이다 보니 마음이 내려앉아 더 술술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사실 나도 전화를 거는 일이 많이 줄었다. 서른을 넘기며 관계 자체가 좁아진 탓도 있고, 각자의 삶이 바쁜 탓이다. 나도 전화 하나 걸기 어려운 날이 많고 상대도 부담스러운 날이 많아졌다. 결혼한 사람이 늘어나면서 예의상 피하기도 한다. 뻔뻔한 나조차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전화를 건다고 해도 상대가 받을 거라는 기대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기대도 내려놓았다. 받는다면 좋고,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그 또한 괜찮다.

물론 나라고 모든 전화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업무 전화가 그렇다. 그동안 했던 일 경험들은 모두 하루에 전화를 두 자릿수로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대뜸 전화를 걸어야 하는 순간도, 어려운 부탁을 해야 하는 일도 그랬다. 그 반대의 순간도 그렇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는 일이 익숙하기에 스팸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전화를 받으며 회사와 이름을 말한다거나, 어느 시간이든지 상대가 필요로 한다면 전화를 받는 일이 그랬다.
그런 전화는 나도 달갑지는 않다. 하도 업무 전화가 많을 땐 휴대폰을 두 개를 써야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내 개인 휴대폰에 너무 많은 업무용 번호가 등록된다는 점과 내 소속과 이름과 함께 번호가 몇 년간 떠돌아다닌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실제로 최근에도 첫 회사에서 하던 업무 건으로 연락이 왔다. 그 회사를 나온지도 1년이 넘고 그 업무를 내려놓은지는 4년도 족히 넘었는데 말이다(그래도 백수인 지금은 그저 재미있는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업무 전화가 아닌 개인 전화는 "우리의 관계는 아직 끈끈해"라는 느낌을 준다. 물론 거는 입장에선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친구와 이런저런 대화를 오래 나누는 통화는 1년에 어쩌다 가끔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려놓지 못하는 건 9번을 실패해도 1번 좋은 대화를 나눈다면 푼푼해지는 마음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9번이 아니라 99번이어도, 10년에 한 번이라도 좋다. 어쩌다 무슨 사유로 전화가 시작되었든 좋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면 그 마음이 연결되는 기분만큼은 다른 것과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내 삶을 살아갈 용기와 기운을 얻는다고 하면 좋을까. 고작 전화에?라고 할 수 있지만 우습게도 나는 그렇다. 그러니 전화가 기피되는 세상에서 여전히 종종 '전화 걸어 볼까' 궁리하고 있다. 어차피 앞으론 더욱 힘들어질 테니까, 지금이라도. 하면서 말이다.
어제 밤에도 친구와 통화를 했다. 어제는 사실 일찍 자려고 생각했던 날이었는데, 통화를 하다보니 도리어 평소보다 늦게 잤다. 그리고 이런 날은 생각한다. 계획이 어그러졌지만 오히려 좋아. 대신 가치 있는 시간을 나눴잖아라고. 그리고 늘 다짐한다. 누군가가 편하게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말이다. 난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함께 각자의 길을 걸어가다 잠시 멈춰 보이지 않는 선으로 목소리를 실어 보내며 그 안에 근황과 삶, 생각을 담고 함께한 추억을 나눌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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