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구독자😁 긴 휴일 마치고 일상 잘 복귀했어? 아, 이 참에 오늘 주제에 맞춰 다시 물어볼게.
"You alright, mate?"
바로 이 문장이 영국에서 참 흔하게 쓰이는 인삿말이야. ㅎㅎ 위 이미지 속 남자는 좀더 격하게 물어보는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쓰는 말이야. 완전한 문장으로는 "Are you alright?"이지만 주로 "You alright?" 혹은 더더 줄여서 "Alright?"으로 쓰이기도 해. 직역하면 ‘괜찮니?’지만 알고 보면 "How are you?", "안녕" 이랑 비슷한 뉘앙스야. 여기에 mate(친구!)를 끝에 붙이면 더욱 더 영국스러운 말투가 돼. 특히 lad* 이미지의 영국 남자들이 많이 쓰는 말투...
(*Lad: '나는 남자 중의 남~자!' 느낌의 이성애자 남자들을 칭함. 위 이미지의 남자도 그런 느낌...)
영국 온 초반에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당황했어. 내가 그렇게 안 괜찮아 보이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수십가지 생각이 드는 질문이었어. 솔직하게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해야 할지, 괜찮은 척 해야 하는 건지 늘 혼란스러웠어. 더욱이 거짓말을 잘 못하는 편이라 솔직하게 대답하곤 했어. 기분이 별로면 ‘어… 좀 우울해.’ '아니, 안 괜찮아.'라고 말했어. 그러면 갑자기 친하지 않은 상대와 얘기가 길어지게 되었고, 상대는 내가 우울한 이유를 어색하게 듣곤 했어. 지금 생각하면 시트콤처럼 웃긴 상황이지. 그냥 지나가면서 '여~ 안녕~ 다 괜찮지?' 이런 뜻인데 거기에 대고 안 괜찮다고 하며 내 사생활을 주절거렸으니까...
내가 살았던 첫번째 집에는 다섯명이 함께 살고 있었어. 런던은 집세가 워낙 비싸서 하우스쉐어가 흔하거든. 그곳에는 나 포함 한국인 3명, 이집트 남자 1명, 영국남자 1명이 살고 있었어. 영국인이 1명 뿐이니 그 친구로부터 영국문화를 처음으로 가까이 접하게 되었지. 그 친구 조지는 20대 중반에 키 크고 비쩍 마른 남자애였어. 조지는 집에서 나와 마주칠 때마다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Alright?"이라고 말했어. 그런데... "I'm..."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조지는 후다닥 계단으로 내려가버렸지. 쟤는 대답을 들으려고 묻는 거야 뭐야?😑
이후에도 'You alright?'을 수백번 들었지. 물론 조지처럼 대답도 안 듣고 사라지는 사람은 드물었지만(걔 좀 이상했음) 대답을 들으려고 묻는 게 아닌 뉘앙스가 많았어.
이제는 저 질문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만들어서 AI처럼 대답해.
"I’m ok thanks, you alright?"
여전히 기분이 안 좋을 때는 not ok인 게 팍팍 티나는 표정으로 말줄임표를 길게 늘어뜨리려. 겨우 "I’m... ok" 혹은 "Not bad"라고 말하곤 하지. 여전히 김솔직이라 괜찮은 척 하는 게 힘들어서...ㅜ
지금 구글로 "Alright mate"에 대해 다시 검색해보니 나처럼 영국에 처음 발을 디딘 외국인이 질문한 자료가 있더라ㅎ 도대체 저렇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는 거냐고. ㅋㅋㅋ 댓글 보니까 고개 끄덕이면서 "Yeah, alright"정도면 된다고 하네. 나는 꼭 '너는?'하고 되묻곤 했는데 그게 괜한 질척임이었을 수도 있겠어...
한편으로 이 인삿말 하나로 영국 정서가 한국 정서보다 어둡고 건조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우리나라에서 보통 괜찮냐고 묻는 경우는 상대방이 안색이 안 좋아보일 때 뿐이잖아. 일상에서 인사로서 괜찮냐고 묻는다는 것은 '평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흔치 않다' 혹은 '행복한 마음 상태를 갖는 것은 드물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게 아닌가 싶었어. 어쩌면 반대로 괜찮지 않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건가? 그 사람들이 지나치게 좋은 척을 하기보다 담담하게 괜찮다고 대답하는 게 더 수월할 거라고 여긴 건가 싶기도 하고...아무튼... 감정에 충실한 내 성격으로는 꽤나 적응하기 힘든 말이야.
영국에서는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성숙하지 않은 행동으로 여긴다고 들었어. 그러니까 영국인들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미 자체에 연연하지 않고 '어. 괜찮아'라고 말하는 게 익숙한 거겠지?
넷플릭스에서 인기 많은 영국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원제 Sex Education)' 있잖아. 이게 처음 나왔을 때 영국에서도 반응이 뜨거웠거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재밌게 봤는데 영국 동료들은 재밌긴 한데 너무 밝고 미국스럽다는 반응이 많았어. 영국은 대체로 콘텐츠 자체에서 장르가 무엇이든 지나치게 밝은 정서는 드문 것 같아. '노팅힐'이나 '어바웃 타임'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영화들을 보면 사실 그렇게 느껴지지 않잖아...(미국 여자가 주인공이어서 그럴지도!) 근데 실제로 내가 영국에 와서 느낀 건 매우 달랐어. 영국 내에서 인기 많은 콘텐츠는 심금을 울리는 것보다는 담담하고 건조한 정서인 게 많았어. '블랙미러', '더 크라운', '빌어먹을 세상 따위' 등... 특히 '연애의 부작용(원제 Lovesick)'이 영국스러운 로맨스 드라마라고 생각해.
하우스 쉐어하는 세 사람에 대한 얘긴데, 그 중 한 남자애랑 여자애가 서로 좋아하지만 감정을 숨기고 있었어. 그런데 남자애가 다른 여자와 자기 방에서 관계를 맺고, 옆방에서는 여자애가 그 소리를 듣는 장면이 있었어. 어두운 방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는 여자애를 풀샷으로 보여주고... 끝! 엥? 이게 끝인가. 영드에서는 이런 사건이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게 많더라고. 한국이었으면 그 여자애가 손으로 입을 막으며 격하게 우는 장면이 클로즈업 되었을 거야. 애절한 발라드 노래가 배경으로 나오고... 여자는 자기 친구를 찾아가서 술 먹으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거고...
나라의 문화와 정서가 다르니까 똑같은 상황이어도 연출이 참 달라~ 감정을 대놓고 표현하느냐, 안 하느냐가 장면의 길이를 좌지우지하는 게 참 흥미로운 것 같아. 영국에 있다보니 나도 좀 영국물이 들었나봐. 몇년 전 넷플릭스에서 개봉했던 '승리호'처럼 한국의 '신파' 정서는 이제 못 보겠더라.
'You alright?' 인삿말로 시작해서 드라마까지 얘기하게 되었네. 7년이나 살았지만 alright 인사를 들으면 여전히 1초정도 굳어버려 ㅎㅎㅎ 외국인이 다른 나라에 온전히 물드는 건 역시 쉽지 않은 듯~~
오늘은 여기서 말을 줄일게! 그럼 다음주 화요일에 만나 😙
2023년 10월 4일
수수로부터
(*레터에 등장한 사람들 이름은 전부 가명을 사용합니다🫢)
혹시 런던에 살 예정? <런던 생생정보통> 한 번 읽어봐봐!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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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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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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