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구독자😄 You alright??👋🏻 추워지는데 따뜻하게 잘 입고 다니고 있니?
오늘은 내가 영국에서 쓰는 '수수'라는 이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내 실명엔 ‘슬’이 들어가. 아무래도 '슬'은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이 발음하기에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어. 떠나기 전에 영국에서 나를 소개하는 순간을 떠올려 봤어.
“안녕, 내 이름은 **슬이야.”
“*수을?”
“슬!”
“수을~”
“슬!”
분명히 ‘슬’ 부분에서 발음교정이 세네번 오갈 것이고, 그렇다고 정확히 발음할 리 없다고 생각했어. 영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니까... 이걸 몇 년 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진이 빠지더라구! 결국 내가 편하기 위해 영국용 이름을 정하기로 결심했어. 근데 왠지 모르게 영어로 된 이름은 끌리지 않았어. 나와 맞지 않는 어색한 옷을 입는 느낌이랄까! 한글로 되었지만 발음하기 쉬운 단어가 뭐가 있을까 몇 달간 고민했어. 본명을 그대로 살려 여러 이름을 만들어봤지만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수수하다’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어. 수수라니! 사람들과 꾸밈없이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내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 친구들도 반응이 좋더라구. 발음하는 것도 재밌고 기억하기 쉬우니까 너무 맘에 들었어😍 철자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SOO SOO’로 정했어. ‘SUSU’보다 시각적으로 더 안정감 있는 것 같아서.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저 그래’라는 ‘so so’와 비슷하게 읽힐 때가 있을 것이라는 것! 그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진 않지만 이미 수십번의 번복을 한 뒤라 단호하게 ‘수수’로 밀고 나가기로 했어✊
그리하여... 2013년 가을 이후에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 나를 수수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이제는 심지어 한국친구들도 나를 ‘수수’라고 불러. 태어나고 24년 뒤에 내게 새로운 이름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어~!
Not 수, but 수수!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 반드시 '수수'라고, '수'를 꼭 두 번 불렀으면 했어. 하지만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한 번의 ‘수’가 이름으로 더 익숙할 뿐만 아니라, 부르거나 쓰기에 더 간단했어.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 이름을 ‘수’로 줄여서 부르곤 했어. 그러면 외국에 흔한 이름 ‘Sue’로 느껴졌어. 그게 너무 싫었어. 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거든... 내 이름은 더 재미있다고. 한 번이 아니라 꼭 두 번으로 불러야 내가 의도한 의미가 된단 말이야!😤
사실 우리나라 풀네임은 길어봤자 4음절로, 다른 나라 이름들에 비해 아주 짧잖아. 한국인으로서 이런 줄인 이름을 쓰는 것에 낯설 수밖에 없었어. 이와 반대로 영국에서는 풀네임이 굉장히 길기 때문에 서로 이름을 줄여 부르는 걸 좋아했어. 심지어 원래 이름으로 불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어. 예를 들면 ‘냇(Nat)’이라는 친구는 원래 이름인 ‘나탈리(Natalie)’라고 불리는 것을 극도로 어색해했고, ‘제임스(James)’라는 친구는 자신을 꼭 ‘지미(Jimmy)’라고 불러달라고 했어. 나같은 경우는 그들과 반대로 ‘수’로 줄이지 말고 꼭 두 번 ‘수수’라고 부르라고 했으니 걔네 입장에서는 특이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ㅋㅋ
한 번은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한 지 두 달도 안 됐을 때 디렉터 중 한 분이 이메일로 내 이름을 ‘수’라고 부른 적이 있어. 그때는 정말 ‘수’라고 불리는 게 싫었어. 최대한 예의 바르게 답장을 보냈어.
“제 이름은 수가 아니라 ‘수수’입니다”
나 MZㅋ... 지금 생각하면 '야 너 왜 그래...'하고 말릴 것 같은데 그땐 이상하게 사소한 것에 꺾이지 않는 마음이 있었어... 떨리는 마음으로 그 분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끝내 답은 오지 않았어. 당황하셨던 걸까. 그때 유일한 한국인 동료였던 다희 언니가 이 얘길 듣고는 웃으면서 말했어.
"대체 ‘수’나 ‘수수’나 뭐가 그렇게 중요하니?"
그때 언니는 이미 영국생활을 한 지 이미 15년이 훌쩍 넘은 상태였어. 언니는 이름에 관해서 통달한지 오래됐다고, 어떻게 불리는지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 하지만 그때의 나는 ‘당연히 중요하지 언니는 왜 내가 문제인 것처럼 말할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뿐이야.
수수, 그 후 8년...
수수라는 이름을 쓴지 어언 8년이 지났어. 그동안 두 가지 심적 변화가 생겼어.
하나는 이제야 서서히 내 이름이 정확히 불려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야. 회사에서 동료들이 텍스트로 내 이름을 언급할 때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어. 회사 메신저에서 다른 사람들은 Alex(Aelxander), Oli(Oliver), Gem(Gemma) 등 다 줄여진 이름이라 한 단어로 치면 되는데 유독 내 이름만 Soo Soo, 두 단어로 타이핑해야 했으니까. 한 회사에서 이 이름으로 5년동안이나 근무했으니 동료들은 내 이름에 수천번 더 수고한 셈이야. 친해진 동료 하나는 나중에 내 이름을 ‘SS’로 줄여서 부르기 시작했어. 오히려 그렇게 써줘서 고마웠어. 근무환경이 영국인 중심에 외국인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여서 내 이름이 항상 튀는 것 같았거든. 한글로는 '수수', 한 단어지만, 영어로는 두 단어로 늘어난 데다가 스펠링까지 더 긴 걸 택한 결과였지... 이제서야 의문이 들었어. ‘수수’는 진짜 내 이름도 아닌데 어떻게 쓰고 부르느냐가 그리 중요했던 걸까?
요즘에는 식당이나 마사지를 예약할 때 이름을 ‘Sue’라고 말하기 시작했어. ㅋㅋ맞아.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Sue’. 이제는 싫어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흔해서’ 쓰는 게 좋아졌어. 심지어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해. 얼마나 간단해. 두 번이 아니라 한 번만 말하는 것. 철자도 남들에게 편한 걸로 하니 소통하기 훨씬 편하잖아. 시간이 흐르면서 내 에고가 작아진 결과인 것 같기도 해. 8년 전과 후의 나가 서로 마주하면 뒤집어질 일이지🤣
두번째로, 나이가 들면서 ‘수수’라는 이름이 민망해지기 시작했어. 세월은 내게만 적용될 뿐, 이름은 결코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 어색하더라. 영국에선 ‘수수’가 유아적인 느낌이 강하더라구. 영국 발음으로는 한 음절 한 음절 힘 있고 길게 발음해서 더 강아지를 부르는 것 같아. ‘쑤우~! 쑤우~!’ 한 번은 스타벅스에서 주문을 할 때 점원이 내 이름을 듣고는 내 컵에 ‘츄츄(Chou Chou)’라고 잘못 적은 적도 있었어. 알고 보니 ‘츄-! 츄-!’는 영국에서 기차 소리 표현할 때 쓰는 ‘칙칙폭폭’같은 의성어였지 뭐야.
‘수수’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내가 영국에서 이렇게 오래 머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그 이름을 오래 쓰다 보니 ‘과연 앞으로도 영국에서 수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게 괜찮을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 영어 이름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도 간혹 발생했어. 한 번은 우체국에서 택배 보관한 걸 찾으려고 할 때, 받는 사람 이름이 ‘Soo Soo’인데 내 신분증에 있는 이름은 다르다며 택배를 줄 수 없다고 한 적이 있었어. 이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유아적으로 들리는 ‘Soo Soo’라는 닉네임을 버리고 본명으로 생활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슬' 발음을 되풀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영주권까지 얻은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내 이름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과연 내 이름을 뭐라고 소개하고 있으려나?
이방인의 삶은 이토록 복잡다단쓰~~~~~🥹 오늘 레터 어땠어? 너도 본명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아본 적 있어? 댓글 기다릴게~!
내일 모레 보낼 레터는 포옹 인사 '허그'에 대한 얘기야. 언제나처럼 하루하루 재밌게 보내고 목요일에 만나!
2023년 10월 9일 월요일
수수로부터
Coming Soon: '허그는 여전히 어색해'
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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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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