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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영국에서 길을 걷다 날계란을 맞았다

영국살이 중 대놓고 당한 인종차별

2024.02.20 | 조회 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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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영국에서 워홀 2년, 취업 5년 살며 겪었던 문화충격 및 소소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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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었어??? 너무 오랜만이다 그치??? 그동안 뭐하고 지냈어?

지난 2주동안 나는 엄마랑 여행도 다녀오고 전자책도 만들기 시작했어. 조만간 공개할 예정 ^0^ 오늘 가져온 이야기는... 좀 자극적인 내용이야. 혹시 영국으로 갈 생각하고 있다면 겁먹을 수도 있는 내용이라 조심스럽지만 오히려 내 얘기를 듣고 좀더 주의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공유해. 

 

때는 2017년 1월이었어. 1년 노력 끝에 드디어 취업비자를 받아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때였어. 워킹홀리데이 때엔 런던에서만 살았는데 이번에 비자를 준 러쉬는 하필 본사가 시골에 있더라고.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런던이 아닌 남부 시골 동네로 온 지 겨우 보름이 지난 날이었지. 흐린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어. 번화가인 옆마을에 놀러갔다가 다시 기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어. 기차에서 내려 출구로 걸어가다 고개를 돌렸는데 기차 안에서 교복 입은 백인 남자애들이 나를 보고 있는거야.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히죽히죽 웃더니 나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거야. 나도 덩달아 입꼬리를 올리고 양손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웠지. 그 아이들은 더욱더 크게 웃으며 동양인 눈을 비하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라고. 고개를 홱 돌리고 출구를 나왔어. 난데 없는 뻐큐에 여유롭게 잘 맞섰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숙소로 향했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매장이 있는 글로벌 회사 러쉬가 수도 런던이 아니라, 회사를 시작했던 마을에 여전히 뿌리를 두고 있는 사실이 참 놀라웠어. 그 마을에 러쉬매장은 단 1개였지만 러쉬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포함해 법률, 재정, 테크 및 크리에이티브 분야 사무실 건물이 27개나 세워져 있었어. 그만큼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걸 보고 우리나라 대기업도 본사가 지방에 더 많이 퍼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한편으로 마을에 온통 백인밖에 없으니 내가 마치 외계인이 된 기분이 들더라고. 본사 직원들조차 그 지역 출신 백인들이 많았어. 내가 있던 디지털 건물에는 직원이 약 100명 있었고 그 중 5명만이 유색인종이었어. 그 중 3명은 영국인이었고 이미 15년째 영국에 살고 있던 중국인 동료 1명 빼고는 내가 거의 유일한 외국인인 직원이더라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가 팍 죽었어. 내가 여기서 너무 튄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하는 행동에 따라 한국인 이미지를 판단할까봐 아주 조심스러워지더라고. 나만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이라는 생각에 더 쪼그라들고...🫠

 

그로부터 정확히 두 달 뒤, 퇴근길이었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친해진 동료와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겨우 몇 초가 지난 뒤였어. 동료에게 손을 흔들 때 동료의 손 너머로 10살 정도로 보이는 백인 꼬마 세 명이 웃고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어. 한 명은 씽씽카를 타고, 한 명은 자전거를 타고, 한 명은 그냥 서 있었어. 동료와 인사를 마치고는 고개를 돌렸어. 헤드폰을 끼고 평온한 마음으로 아이팟에 음악을 재생하고 골목길로 걸어갔어. 그때였어.

 

철퍼덕!

'이게 무슨 일이지?'

발걸음을 멈추었어. 옆을 돌아보니 아까 봤던 그 꼬마들이 꺄르르 웃으면서 이미 나를 뒤로 한 채 달아나고 있는 거야... 조각난 달걀 껍데기가 내 머리에 붙어 있었어. 날계란은 주르륵 흘러 이미 내 목도리와 외투를 적시고 있었어.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거친 일을 당할 때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들 하잖아. 이때의 나도 그랬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였고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나...지금...날계란 맞은 거야?’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 어느 정도 강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어. 아무 잘못 없이 새파랗게 어린 애들에게 날계란을 맞다니. 한국 꼬마 애들이 치는 장난과는 차원이 달랐어.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피해 주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 한국에서 온 내게는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어.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릿속은 팽팽 돌았어. 터벅터벅 골목길을 지나 큰길에 다다랐어. 그때 벤치에 앉아 통화를 하고 있는 동료 루카가 보이더라고. 그에게 다가갔어.

그때 당시 사진🥲
그때 당시 사진🥲

“루카... 나 방금 계란 맞았어...흑흑흑”

루카는 깜짝 놀라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어. 그는 내 매니저 애러시에게 연락했어. 급하게 달려온 애러시는 내게 괜찮냐고 묻고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어. 멍하니 울고 있는 나를 다독이며 집까지 태워다주었어. 그는 나처럼 본사에 몇 안 되는 소수인종이었어. 그래도 애러시는 인도계지만 엄연한 영국인이었어. 그런 그도 학창 시절 브라운계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많이 당했고 날계란을 맞은 적이 있다고 하는 거야~! 알고보니 여기서 날계란 던지기는 괴롭힐 때 흔한 모양이더라고... 애러시는 나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어.

"너는 안전한 곳에서 일할 권리가 있어. 네가 원하면 어디서라도 일하게 해 줄게. 당분간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그는 내게 날계란으로 눅눅해진 옷을 세탁하라며 세탁비까지 챙겨주었어. 그날밤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더라. 여기 힘들게 취업해서 온 게 잘한 걸까, 앞으로 통근은 할 수 있을까 등등. 갑작스런 충격에 처음으로 턱관절까지 아프더라고. 다음날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일단 그 주 내내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냈어. 회사에서는 우리집으로 커다란 꽃다발을 보내주었어. 함께 온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

우리 모두 널 생각하고 있어. 

사랑을 가득 담아, 러쉬 가족으로부터

 

백인 꼬마애들에게 화가 났고, 백인 동료들에게 감동했어. 영국백인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섣부른 일반화를 할 뻔했는데 회사에서 이렇게 대처를 잘해주니 분노가 좀 누그러들었어. 마침 타이밍 좋게 러쉬는 런던 소호에 사무실을 새로 오픈하려던 차였어. 그래서 몇 달 뒤 수월하게 런던 사무실로 옮겨가게 되었지. 그 후 5년동안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겪지 않았어. 지금 생각해도 흔치 않게 과격했던 사건이었어😅

이 외에 곤니찌와, 니하오 등 자잘한 인종차별을 겪으며 살다보니 한국에서만 있었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다양성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었어. 사람들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을 낯설게 느끼고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잖아. 내 주변에도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인종에 대해 어깨를 으쓱 올리며 싫다고 하는 한국인들이 꽤 많아. 그들은 한국에서 평생 살아서 외국인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거야. 외국인 친구가 생긴다면 그들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이런 사람들을 위해 어릴 때부터 인종의 다양성과 평등함에 대해 가르치는 게 사회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어.

마침 요즘 그 방법 중 가장 쉽고 효과적인 해결책이 활발히 진행 중이라 다행이야. 바로 미디어에서 일어난 변화! 2020년 미국에서 흑인 및 동양인들의 인권 운동이 연달아 일어난 이후 영미권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물들의 피부색이 훨씬 다양해졌더라고😮. 나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산다는 것, 그리고 유색인종이 백인보다 직급이 높을 수도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어. 더이상 백인만 주인공이지 않고, 동양인도 흑인도 번듯하게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이 많아졌지. 이런 노출이 앞으로 자라날 어린 친구들에게 차별 없는 시선을 갖도록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 한국도 한류문화로 세계의 시선을 끌고 있는 만큼 미디어를 포함해 여러 방법으로 다양한 인종을 보여주면 좋겠어. 혹여나 흑인이나 동남아 친구가 한국 지방에 일하러 왔다가 나처럼 날계란 맞는 일이 없도록😅 

오늘 이야기 꽤 무거웠지?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일은 절대 흔한 일이 아니야.  혹시 영국 가기 무서워졌다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 빼고 이런 일 당한 한국친구는 한 명도 없었어. 내가 운이 나빴던 거지.

영국에 가게 된다면 두려움 대신 마음 속으로 항상 '나는 존엄한 인간이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기를 바라. 그때는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는데 이제는 그런 일을 당해도 쫄지 않으려고 해. 그들이 원하는 게 내가 쪼그라드는 것일테니까. 내가 왜 쪼그라들고 왜 숨어 다녀야 하는 거야! 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고, 걔네보다 잘나면 잘났는걸!😤 그런 차별 하는 것 자체가 인성이 못난 거니까 쪼그라들 존재는 바로 그들이잖아.

솔직히 아직도 인종차별에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한 건지 100%는 잘 모르겠어. 여전히 알아가는 과정이야. 어찌됐든 일단은 가슴 펴고 당당하게 다니는 걸로!

다음주에는 좀더 가볍고 웃긴 이야기로 돌아올게! 

그럼 이번 한 주 잘 보내고 안녕~!!!

 

2024년 1월 18일 일요일

수수로부터


 

혹시 런던에 살 예정?  <런던 생생정보통> 한 번 읽어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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