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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종료 👋🏻

회사

27. [2탄] 영국 러쉬에서 모션 디자이너로 일하는 건 어땠을까?

좋았던 점 & 아쉬웠던 점 & 배운 점

2024.04.02 | 조회 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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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의 프로필 이미지

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영국에서 워홀 2년, 취업 5년 살며 겪었던 문화충격 및 소소한 에피소드

안녕 구독자! 잘 있었어? 드디어 봄이 오는 것 같아~ 서울의 봄~~🌸_🌸 

겨울 외투 대신 얇은 외투를 꺼내입는 요즘 해 쨍쨍할 때 산책하는 게 낙이야.  구독자도 봄을 즐기고 있기를 바라며 2탄 시작할게 ㅎㅎ

혹시 1탄을 안 봤다면 1탄 링크 요긔!

2탄에서는 예고한 대로 러쉬에서 일하며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얘기해볼게.

 

좋았던 점

먼저 복지 제도가 가장 좋았어.

일단 장비! 러쉬는 전직원에게 맥북을 제공했어. 나는 영상과 그래픽을 다루었기 때문에 가장 큰 수혜자였지. 맥북, 27인치 아이맥, LG 모니터에 타블렛과 아이패드까지 사줬어🥹 퇴사 후 저것들 다 돌려주고 새로 사느라 돈 꽤나 쓰긴 했지만😭 원래 맥에 대해 잘 몰랐는데 러쉬 덕에 맥제품이 다양하며 아름답고 기능도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첨부 이미지

그리고 러쉬제품을 쓸 수 있는 특권도 마음껏 누렸어.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서 한 번도 사본 적 없던 러쉬 제품을 원없이 써보게 돼서 매번 눈이 빙글빙글 돌았어. 천연재료에 달콤한 향, 알록달록한 색깔에 눈까지 즐거우니 금세 러쉬제품에 퐁당 빠져버렸지. 내가 지나가면 러쉬향이 날 정도로 언제나 러쉬제품에 둘러싸여 있었어. 전세계 러쉬 매장 어딜 가도 50% 할인을 받을 수 있었지만 본사에서 특권을 많이 받다보니 직접 사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회사 메신저로 ‘지금 웰컴존에 무료 제품들 올려놨으니 가져갈 사람들 가져가세요!’라는 메시지가 자주 올라왔거든. 늘 줍줍하러 바로 달려갔지...ㅎㅎ

무료 줍줍에 참 적극적이었던 내 모습(파란모자)
무료 줍줍에 참 적극적이었던 내 모습(파란모자)

정기적으로 스테프 세일 백(Staff Sale Bag)’이라는 이벤트도 실시했어. 가방 1개에 £5(약 8500원)였고 인당 최대 3개까지 구매할 수 있었어. 그 가방에는 랜덤으로 고른 러쉬제품들이 가득 들어있었어. B급, 디스플레이용 제품 등 쓰기에 괜찮지만 외부엔 팔 수 없는 제품들이었어. 판매비용은 자선기관으로 가니까 제품처리도 하고, 기부도 하는 윈윈 문화였지. 본사 풀(Poole)에 있을 때엔 더 기회가 많았어. 제조공장이 근처에 있어서 가방이 아니라 아예 큰 상자에 한 가득 담아서 주었지. 샤워젤, 배쓰밤, 버블바, 샴푸, 비누 등 향긋한 보물이 넘쳤어. 그렇게 얻은 제품은 주변 친구들에게 선물용으로 막 뿌리기에 좋았어. 나는 집에서 하우스 파티를 열 때마다 손님들에게 웰컴 기프트로 하나씩 주곤 했지. 

그리고 5년동안 야근한 적이 거의 없었어. 큰 행사가 있을 때 잠깐 밤에 일한 정도가 야근이었어. 진짜 늦게 끝난다 하면 6시나 6시 반. 그때쯤이면 나빼고 다 퇴근해서 사무실이 텅 비어있었지... 대부분 9시에서 5시까지 일했고, 주어진 일만 마감내로 하면 꼭 8시간 전부를 채울 필요도 없었어. 맞다. 한국은 점심시간을 빼고 8시간이더라?ㅜㅜ 영국은 점심시간 포함 8시간이라 실제 근무시간은 7시간이야. 재택근무도 자유로웠어. 영국은 택배도둑이 많아서 집에 있을 때 바로 받는 게 흔하거든. 택배 받을 게 있을 때마다 매니저에게 말해서 일주일에 한두번 재택근무를 했었어. 코로나 이후부터는 매일 재택근무를 하였고🎉 요즘에는 재택과 출근 자유롭게 한다고 해.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러쉬 런던 사무실에서는 늘 재밌는 이벤트를 벌이곤 했어. 주 1회는 꼭 저녁마다 인권영화제, 북클럽 등의 이벤트를 열곤 했어. 오후 5시 이후에 사내 직원은 퇴근해도 됐지만 나는 종종 남아서 이벤트에 참여했어. 무료로 칵테일도 마시고 제품을 선물로 받을 때도 있었거든 ㅎㅎ 한 번은 특별한 날도 아닌데 동료들끼리 'Goth Day(고스족 데이)'를 만들어서 올블랙을 입고 온 날도 있었어. 나는 진정 고스로 보이기 위해 보라색 립스틱까지 칠하고 갔었지. 

(*고스족: 1970년대 말 영국에서 나타난 하위문화 집단. 검은색 옷을 입고 다크서클과 검붉은 입술을 강조하는 화장을 즐긴다. 참고로 영국에서 고스족은 여전히 흔해)

고스 데이(모두 올블랙으로 입은 날)
고스 데이(모두 올블랙으로 입은 날)

휴가는 공휴일 8일 포함 1년에 총 25일이었어. 나중에 휴가 구매 제도가 생겨서 최대 5일까지 추가로 구매할 수 있었어. 연차가 쌓이면 휴가수는 점점 늘어나고. 나는 무조건 5일 구매해서 1년 총 33일을 쉴 수 있었어. 구매라 함은 월급에서 몇 % 깎는다는 얘긴데 난 쉬는 게 더 좋아서 상관없었어. 영국은 2주 휴가 내는 것도 흔해. 나는 연말에 2주 휴가 내고 한국에 다녀왔어. 내가 휴가 간 사이를 대비해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게 부담스럽지도 않았어. 아 그리고 코로나에 걸리면 2주 유급휴가를 낼 수 있었어. 나도 코로나 걸린 적이 있는데 많이 아프진 않아서 2주동안 드라마 보면서 편히 쉬었지... 그 외 병가 내는 것도 좀 자유로웠어. 영국에서는 왠지 1년에 병가 한 번 안 내면 아쉬운 듯한 느낌일 정도로 사람들이 아프다고 거짓말 한 번쯤은 하는 것 같아😂 나는 병가라기보단 오전에 할 일이 있으면 두시간 늦는다고 하고 두시간 더 늦게까지 일하기도 했어. 긴 휴가 외엔 주말껴서 2일씩 휴가를 내서 주변 유럽 국가에 놀러갔다오곤 했어.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간 것 같아. 한 달이 정말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이었지. 아.. 지금 생각해보니 참 좋았다...ㅎㅎㅎ

복지는 여기까지 하고, 두번째로 좋았던 점은 회사 철학이었어. 러쉬는 동물실험에 반대하고 환경을 위해 힘쓰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잖아. 환경을 지키는 것에 이렇게 진심인 회사는 처음 봤어.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병에 담긴 액체 대신 샤워젤, 치약, 샴푸 등을 고체로 만든 최초의 회사이기도 해. 이벤트를 할 때엔 무조건 비건과 베지테리안 음식만 제공해. 이런 이유로 유튜브 영상작업할 때 종종 반려당하곤 했어. 예를 들면 일회용 화장솜을 쓴 장면을 다회용 천으로 바꿔서 촬영하라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었지. 회사에서 제공하는 간식도 과일, 견과류, 대체우유(아몬드, 두유 등) 등 건강에 좋은 것들이었고, 청소용품도 다 친환경 제품을 썼어. 영국은 분리수거를 잘 하지 않는데 러쉬 사무실 안에서만큼은 쓰레기통이 다양하게 분류되어 있었어. 회사 밖에서만이 아니라 내부에서까지 적극적으로 환경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 애사심은 이런 데서 오는 것 같아! 러쉬는 영국 내에서조차 진보 중의 진보인 회사였던 것 같아. 전에 일했던 회사나 다른 친구들 회사 들으면 이 정도로 환경과 다양성에 열려있지 않았거든. 처음엔 마치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지만 이내 나도 이들과 같은 과라는 걸 알고 점점 스며들었어. 러쉬에서는 자유, 평등, 환경, 다양성 메시지가 뚜렷했거든. 여성, 성소수자부터 난민까지 모두 응원했고, 나의 몸 그대로를 사랑하자는 바디포지티브 운동에도 적극적이었어. 사내 화장실은 남자, 여자 구분용이었다가 성정체성이 다양한 요즘 시대에 맞춰 유니섹스로 바뀌었어. 각 칸마다 세면대까지 있어서 불편하지 않았고. 이렇게 러쉬는 알고보니 내가 지향하고 있던 가치관을 강하게 일깨워주었어. 그래서 러쉬를 다니는 많은 직원들은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가치관에 맞는 곳을 다니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해. 나 또한 이 점 때문에 더 오래 다닌 것도 있어. 그러다보니 동료들은 게이, 페미니스트, 트렌스젠더, 레즈비언 등 다양했어. 제모 없이 당당하게 풍성한 겨드랑이털을 드러내고 나시티를 입는 여자 동료, 비건 가죽 부츠를 사려고 검색하던 동료 등 자기 가치관에 맞춰 당당하게 사는 동료들이 많았어. 

마지막으로 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회사라서 좋았어. 한국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러쉬는 스파 서비스도 있거든. 싱잉볼 소리를 들려주고 귀에 촛불을 꽂는 사운드 배쓰, 비틀즈 음악에 파자마를 입고 받는 마사지, 마사지사 2명이서 70분동안 마사지해주는 코스 등 러쉬만의 독특한 컨셉으로 몸과 마음을 풀어줘. 본사 내에서 연습용으로 무료로 마사지 받을 사람을 구하거나 근무시간에 20분 마사지 이벤트도 있었지. 또 러쉬에서 가장 유명한 배쓰밤 또한 뜨거운 물에 입욕제를 넣고 몸을 푹 녹이기 위한 제품이잖아. 러쉬 앱에는 배쓰밤 제품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명상 플레이리스트까지 있어. '이거 사세요!'라고 상업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고객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콘텐츠 위주로 작업하는 게 참 뿌듯했어. 

이렇게 말하고 나니 러쉬는 웰빙의 중요성을 러쉬만의 개성으로 잘 표현하는 회사인 것 같아. 그냥 샤워용품을 파는 게 아니라, 문화와 분위기까지 전파한다는 걸 느꼈어. 이것이 바로 브랜딩인가!

 

아쉬웠던 점

물론 아쉬웠던 점도 있었어. 첫 번째로 글로벌 회사라는 명성에 비해 본사에는 인종 다양성이 부족했어*. 본사가 지방이라 그런지 그 지역 토박이 출신인 영국 백인이 대부분이었어. 지방 경제에 기여하는 건 바람직해 보였지만 외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적응하기 힘든 점이 있었어. 바로 영국 백인들 특유의 낯가림. 먼저 인사를 하지 않고, 옆자리에 앉아도 아예 등을 돌리는 동료들이 꽤 있었거든. 또 아무리 한 팀이라고 해도 친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는 애들이 많았어. 나도 동료 A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나한테는 알려주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사무실에서 A를 위한 서프라이즈 파티를 했을 때는 정말 섭섭했었어. 다시 한번 끼리끼리 문화가 심하다고 느꼈지. 

(*그래도 요즘엔 러쉬 내 외국인 및 다른 인종 비율이 더 커진 것으로 알고 있어.)

또 풀(Poole)에 있는 사람들 위주로 회사관련 정보가 도는 것도 아쉬웠어. 런던 사무실도 본사의 확장판인데 프로젝트 브리핑이 전달되지 않는 때가 많았거든. 프로젝트가 시작하고 나서야 뒤늦게 합류하는 게 다반사였어. 나같은 경우 오래 일했는데도 기획부터 참여하지 않고 마감이 코 앞이 되서야 타이틀 애니메이션을 해달라고 부탁받곤 했어. 나도 주도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큰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내게 묻지도 않고 아예 탑 프리랜서 아티스트에게 맡기더라고. 내게도 기회를 주고 지원해준다면 거액을 내야하는 프리랜서보다 훨씬 효율적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 

 

지나치게 수평적인 것이 때로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어. 비디오 에디터 동료들이 내 영역인 모션 그래픽에 손댈 때가 있었거든. 영상 편집이 전문인 애들이라 디자인도 모션도 다 어설펐어. 잘 지내는 사이인데 아무렇지 않게 내 영역을 침범하니까 너무 화가 났어. 근데 그때 내 매니저는 디자인 전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거야. 내가 매니저에게 이걸 보고해도 그것에 제재를 가하지 않더라고. 심지어 그때 사내에 '회사에 있는 누구든 분야에 제한 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요상한 시도가 있었어. 즉, 스쿼드(팀)를 만들고 그 스쿼드 내에 있는 팀원들끼리 담당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모든 역할을 수행해보자는 거였지. 기획하던 사람이 디자인을 할 수도 있고, 카피라이터가 촬영을 감독할 수도 있는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였어. 뭐 결국 흐지부지 됐지만, 이런 분위기 탓에 더 난감했어. 이러니 나 스스로 용기 내서 해당 에디터에게 1:1 면담을 요청해야 했지. 이때는 정말 지위와 역할이 철저히 나누어져 있는 전통적인 회사가 그리울 정도로 힘들었어.

 

내가 다닌 5년은 개인적으로 황금기와 암흑기로 나눌 수 있어. 내가 처음 시작한 2017년부터 한 2년정도가 황금기였어. 그때는 지원이 정말 빵빵했어. 모션그래픽 트레이닝비도 지원해주고, 3개월에 한 번씩 보너스가 나왔고 연봉도 요청하면 올려주었어. 그때 매니저 두 분이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준 덕분이었어. 하지만 마지막 2년동안은 암흑기였어. 기존 매니저 두 분이 러쉬를 떠나고 다른 매니저가 생긴 이후부터였지. 그는 나를 포함해 다른 팀원들을 키워줄 생각이 전혀 없었어. 코로나 이후 2년만에 요구한 연봉 인상도, 승진도 시켜주지 않았어. 팀원끼리 갈등이 있어도 잠수타고 있다가 갈등이 해결되고 나서야 나타나는 유령이었지. (코로나 때 원격으로 일하느라 오직 디지털로만 소통했었거든) 게다가 러쉬는 거대 SNS 플랫폼에 휘둘리지 않겠다며 유튜브를 제외하고 SNS 계정을 모두 닫았어. 러쉬 설립자들은 상업적 광고를 지양하기 때문에 마케팅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들 같았어. 그들에겐 소셜 미디어를 닫는 건 별 문제가 아니었지. 하지만 그 결과 내가 일할 비중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어. 그러니 승진을 시켜달라고도 연봉을 올려달라고도 하기 민망하더라고. 나의 커리어는 점점 고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무엇보다 나는 지쳐 있었어. 7년이 넘는 해외 생활에 외로움이 극에 달한 상태였어. 위에 썼듯 러쉬에서 복지가 좋았던 반면 소외감이 들 때가 있었고, 회사 밖에서의 생활 또한 외로웠어. 친구들은 많았지만 오랜 동안 데이트는 잘 풀리지 않았지. 점점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부모님이 있고, 나와 똑같은 한국인들이 사는 한국이 그리워지더라고. 지친 마음으로 꾸역꾸역 버티다가 영주권을 받자마자 러쉬에게 작별을 고하고 한국으로 바로 돌아왔어.

 

배운 점

전반적으로 러쉬는 여전히 내게 기적같은 선물이었어.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몇 가지 얘기해보자면 일단 러쉬 덕에 가치관이 확장되었어.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폭이 너무 넓어져버린 탓에 한국 회사에 와서 한숨을 많이 쉬게 되긴 했지만... 그만큼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어. 나만 생각했던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어. 도널드 트럼프가 런던을 방문했을 때였어. 회사가 소호에 있었기 때문에 근무시간에 동료들과 함께 트럼프에 대항하는 시위에 참여했어. 땡땡이친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라는 거지. 설립자들은 특히 용감해. 러쉬만의 철학을 위해 과감하게 제품과 관련없는 캠페인을 벌일 때가 있어서 종종 욕먹기도 해. 이렇게 설립자부터 동료까지 정치에 관심이 많은 모습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  

두번째로 절대적 기준에서 자유로워졌어. 처음 일 시작했을 때에는 내가 한 작업을 전세계 날고 기는 아티스트들과 비교했어. 자기검열을 하며 너무 못한 것 같아 자신감이 없었지. 매니저에게 보여줄 때도 쭈뼛쭈뼛했고. 근데 러쉬 내에 다른 디자이너들이 한 작업을 보니까... 나보다 못하는 거야! 좀 놀라우면서도, 자신감이 생기더라고 ㅎㅎ '아! 그렇게 잘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당연히 영국 동료들도 디자인 보는 눈은 있겠지만, 절대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비판하지는 않았어.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거야. 처음 2년동안은 걔네가 거짓말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진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왜냐하면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은 사내에 쓰일 것이지, 외부에 쓰일 예정이 아닌 경우가 많았거든. 그러니 전세계 최고 기준이 아니라 이 회사에서 필요한 수준만큼만 해도 잘 한 거지!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 칭찬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지니까 정신적으로도 훨씬 편안해졌어.

세번째로 나대는 것을 배웠어! 내가 일한 당시 비디오팀에는 에디터가 두 명이었거든? 근데 그 에디터 중 한 명이 자기 링크드인 프로필에 'Head of Video Production(비디오 프로덕션 팀장)'이라고 쓴 거야... 심지어 비디오 프러덕션팀 매니저, 즉 자기 상사가 따로 있는 애가 헤드라고 썼네? 자기 첫 직장이면서 뭔 헛소리야? 그렇게 되면 나도 뭐 'Head of Motion Graphics'라고 써도 되겠다? 

또 이 중 한 명이 퇴사 후 스타트업 회사에 들어갔거든. 그 작은 회사에서 유일하게 크리에이티브였어. 근데 걔가 쓴 링크드인 프로필을 보니... 'Head of Creative'라고 써놓았더라고. 얘네 둘다 갓 사회에 나온 파릇파릇한 20대 중반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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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고 와... 역시... 백인 남자들처럼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도 저 정도 허풍은 아니지만 내세울 게 있으면 무조건 내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무엇보다 내가 나댈 수밖에 없던 이유는... 영국은 연봉을 올려달라고 해야 올려주더라! 

그때의 나는 지금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내향적이었어. 나 빼고 다 영국애들이니까 영어를 못한다는 위축감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어. 근데 연봉을 올려달라고 직접적으로 얘기까지 해야하니 너무너무 민망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낸 비책은 이거였어. 연봉 협상 요청 PPT! 나는 평소에 문서로 정리하는 걸 되게 좋아해(MBTI 수퍼 J임)😂 원하는 연봉 금액, 포지션 그리고 근거로 내가 여태까지 한 작업을 촤르륵 올렸어. 영어로 말을 잘 못하는 대신 문서로 잘 정리해서 내 의사를 표현했지. 매니저에게 연봉인상 요청 이메일을 보내면서 이 파일을 첨부했어. 5년 일하면서 이 방식으로 두 번 요청했는데 음, 결국 매니저 by 매니저긴 했어. 황금기 때 매니저는 오케이해줬고, 암흑기 때 매니저는 내 문서 내용 언급도 없이 그냥 안 된다고 했어. 뭐 결과가 어찌됐든 이런 문서를 만들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나대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해.

 

ㅎㅎㅎ 어땠어? 긴 후기 읽느라 고생했어! 나는 원래 조급하고 인내심이 없는 편이거든. 취업비자로 묶여버린 탓에 한 회사에 5년이나 다니게 되었고, 그 덕에 이렇게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앞으로는 회사원을 오래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다시는 없을 것 같은 특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 무엇보다 영국에서 일하다가 한국에서 일해보니까 예상대로 너무너무 답답하고 힘들더라🥲 쓸데없이 사내 규칙도 많고 야근은 당연지사에 상사들은 아랫사람 탓으로 비난하기 바쁘더라고... 내가 다닌 회사만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일하는 건 빡빡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국에서만 회사를 다녔다면 모를까 영국 회사 다니다가 한국 회사 적응하려니까 도무지 적응이 안되더라. 남녀 임금격차도 여전히 1위이고... 결국 근무환경 때문에 또다시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가기로 결정했어. 그래서 말인데... 공지사항이 있어. 아래 공지글 좀 읽어봐봐 ㅜㅜ 

그럼... 다음주에 만나!

 

2024년 3월 31일

수수로부터

 

⭐️⭐️⭐️공지사항 2가지⭐️⭐️⭐️

1. 다음주에 시즌1 종료

이렇게 급하게 알려서 미안해. 다음 뉴스레터를 끝으로 <그래서 영국이 어땟냐면> 시즌 1을 마감하려고 해. 이유는 말이지... 나... 소득이 없어😂😭 저.. 돈.. 필요해요~~ 그래서 당분간 취업준비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 영국으로 슝 날아가서 회사생활이 좀 적응되면 그때 시즌 2를 시작할게. 미안해!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자본도 필요하다 흑흑

인스타그램(@s00s00kim)으로 종종 소식을 알릴게. 랜덤으로 뉴스레터를 보낼 수도 있어! 

시즌 2는 내 생각에 올해 가을 아니면 내년 봄이 될 것 같아. 그때까지 구독자도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

2. 피드백이 너무 간절해~!

마지막으로, 시즌 1 종료 기념 설문지 혹시 작성해줄 수 있겠어?

질문은 5개! 간단하게 적어주면 정말 정말 고마울 거야!

적극적으로 설문에 참여한 친구 세 명을 선정하여 무료로 내 전자책 <런던 생생정보통>을 공유할게!


혹시 런던에 살 예정? 내가 최근 야심차게 준비한 <런던 생생정보통> 한 번 읽어봐봐! 구글문서라 한 번 사면 계속 업데이트된 버전을 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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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오늘 레터 재밌었다면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 부탁해~❤️

또 영국생활에 대해 궁금한 게 있거나 피드백을 주고 싶다면 연락줘~!

- 이메일: bravekim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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