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엔 없는 이야기들

여자란 무엇인가? NHS의 결정, 그리고 영국이 다시 물어보기 시작한 질문

제도는 어떤 기준으로 사람들을 구분하며, 그 구분을 통해 누구에게 어떤 보호를 제공할 것인가

2026.10.17 | 조회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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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2023년, 잉글랜드 북부 더럼의 한 국민 보건 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이하 NHS) 병원에서 두 간호사가 인사팀의 문을 두드렸다. 날마다 근무복을 갈아입던 탈의실이 더는 마음 놓고 몸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이 전하려던 이야기였다.

두 사람과 탈의실을 함께 쓰던 동료는 생물학적 성별이 남성인 트랜스젠더 여성이었다. 병원은 당시 NHS 지침에 따라 그 동료의 여성 직원 탈의실 이용을 허용하고 있었으나, 두 간호사는 그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일이 불편하며 자신들의 사생활과 존엄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는 장소였던 그곳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몸을 가릴 권리를 설명해야 하는 장소가 된 셈이었다.

그러나 인사팀이 내놓은 답변에는 그 불편을 함께 헤아릴 여지가 없었다. 트랜스젠더 동료의 권리가 우선이므로, 탈의실을 함께 쓰기 어렵다면 두 사람이 다른 곳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병원의 입장이었다. 두 간호사는 결국 고용심판원으로 향했고, 병원 안에서 해결되지 못한 갈등은 법의 판단을 기다리는 긴 다툼으로 이어졌다.

2년 뒤인 2025년, 심판원은 병원이 두 간호사를 차별하고 괴롭혔다고 판단했다. 이어 2026년 10월에는 NHS 잉글랜드가 전국 병원에 새로운 지침을 발표했다. 병동과 화장실, 탈의실처럼 남녀를 구분해 사용하는 공간은 생물학적 성별을 기준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탈의실에서 느낀 불편이 제도의 언어로 받아들여지기까지, 두 여성은 수년에 걸친 다툼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온 시간 너머에는 영국 사회가 지난 10여 년 동안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한 물음이 놓여 있었다. 누구의 권리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이 맞닿는 자리에서 어떤 경계를 세울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마침내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첨예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여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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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1486년, 우피치 미술관 소장). 여성성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로마 신화에서 사랑과 아름다움,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 비너스를 그렸다. 출처: Sandro Botticelli - Adjusted levels from File:Sandro Botticelli - La nascita di Venere - Google Art Project.jpg, originally from Google Art Project. Compression Photoshop level 9., Public Domain

 

NHS의 결정

 

2026년 10월 15일, NHS 잉글랜드가 발표한 새 지침은 병원 안에서 성별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인지 분명히 했다. 남녀를 구분해 운영하는 병동과 화장실, 샤워실, 탈의실의 이용 기준을 출생 시 등록된 생물학적 성별에 두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트랜스젠더 환자와 직원도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아닌 생물학적 성별에 맞춰 해당 공간을 이용하게 된다.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추후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여기는 트랜스젠더 여성에게는 남성 공간이 배정된다.

다만 모든 사람의 사정을 하나의 기준 안에 담을 수는 없기에, 지침은 의료적 필요가 있거나 통상적인 배정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 1인실과 같은 대안을 제공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겼다.

이전 지침과의 차이는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는 범위에서 드러난다. 2019년과 2021년의 NHS 지침이 트랜스젠더 환자에게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라 병동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면, 새 지침은 그 자리에 생물학적 성별이라는 기준을 놓았다. 병원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누구를 어디로 안내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제도가 그어놓은 경계가 옮겨간 것이다.

한국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품을 법하다. 성별 전환 수술을 받고 법적으로도 성별을 바꾼 사람에게까지 같은 규정이 적용되는가. 새 지침이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이들 역시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그 법적 배경에는 2025년 4월 영국 대법원의 판결이 있다. 대법원은 2010년 평등법에서 말하는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을 뜻하며, 성별인정증명서(Gender Recognition Certificate·GRC)를 보유한 트랜스젠더 여성도 이 법에서 정한 여성의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적으로 인정받은 성별과 평등법이 사용하는 성별의 의미 사이에 경계를 그은 것이다.

성별인정증명서는 영국에서 변경된 성별을 법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증명하는 공식 문서다. 당사자에게 그것은 행정 절차의 결과이면서, 자신의 삶이 공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러한 법적 인정이 평등법의 맥락에서 생물학적 성별을 대신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성별 변경의 법적 효력 자체를 없앤 것이 아니라, 평등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에는 생물학적 성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 해석을 따르는 NHS의 새 지침에서는 성별 정체성뿐 아니라 수술 여부와 법적 성별 변경 여부도 시설 배정을 달리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각자가 살아온 과정과 법적으로 인정받은 성별이 어떠하든, 남녀를 구분한 공간의 문 앞에서 적용되는 기준은 출생 시의 생물학적 성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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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HS 잉글랜드가 발표한 새 지침 일부 내용 스크린샷

 

논쟁의 시발점

 

병원 안의 공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문제가 이토록 첨예한 논쟁으로 번진 까닭을 이해하려면, 지난 10여 년 동안 영어권 사회가 성별을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은 공적 논의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자신을 어떤 성별로 인식하며 살아가는지가 출생 시 부여된 성별만큼이나 중요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제도적 인정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에게 이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명하고, 그 설명을 사회로부터 존중받으려는 요구였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기관의 정책에도 스며들었다. 일부 기관은 개인이 밝힌 성별 정체성을 시설 이용과 처우의 기준으로 받아들였고, 스포츠와 교정시설, 여성 단체에서도 트랜스젠더 여성의 참여와 자격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 다만 그 기준과 절차는 기관마다 달랐으며, 모든 변화가 별도의 요건 없이 자기 선언만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갈등은 성별 정체성의 인정이 다른 사람의 권리와 만나는 자리에서 깊어졌다. 여성 스포츠의 공정성, 수감자의 안전, 몸을 드러내야 하는 공간에서의 사생활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생물학적 성별이 여전히 중요한 기준이어야 한다는 이른바 ‘젠더 비판적(gender-critical)’ 입장과, 그러한 기준이 트랜스젠더의 배제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섰다.

J.K. 롤링을 둘러싼 격렬한 공방은 이 균열을 널리 드러낸 사례였다. 논쟁은 작가의 발언을 넘어 직장과 대학으로 번졌고, 성별에 관한 신념을 표현할 자유와 타인을 차별하지 않을 의무 사이에서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다툼으로 이어졌다.

2025년 대법원 판결과 뒤이은 NHS 지침의 변화는 이 긴 논쟁의 제도적 분기점으로 읽힌다. 그러나 법이 적용할 기준을 정했다고 해서, 그 기준 아래 살아갈 사람들의 갈등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정체성이 현실을 바꾸는가

 

이 논쟁의 밑바닥에는 정체성과 사회적 인정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 흐른다.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사회는 그 이해를 어디까지 법과 제도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젠더 비판적 입장에서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종이나 나이와의 비교를 들곤 한다. 2015년 미국에서 논란이 된 레이첼 돌레잘의 사례도 그 가운데 하나다. 백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음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흑인이라 정의하며 흑인 행세를 한 그는 흑인 인권 단체인 NAACP의 지역 지부장을 맡기도 했으나, 그의 배경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자신이 느끼는 소속감만으로 그 집단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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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돌레잘. 자신을 남들에게 흑인으로 보이기 위해 머리 모양을 바꾸고 피부를 어둡게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되었다. 출처: Aaron Robert Kathman - File:Rachel Dolezal speaking at Spokane rally May 2015.jpg, CC BY-SA 4.0

아시아계로 태어난 사람이 자신을 백인이라고 인식하거나, 예순 살인 사람이 서른 살의 내면을 지녔다고 느낀다고 해서 사회적 분류나 법적 나이가 그대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성별 정체성은 왜 다른 방식으로 인정돼야 하는가. 젠더 비판적 입장은 이 질문을 통해, 개인의 내적 확신과 제도가 사용하는 분류 사이에는 구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러한 비교만으로 결론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인종과 나이, 성별은 각각 형성되는 방식과 사회적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권리 옹호론자들은 성별에는 신체적 특성뿐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개인의 지속적인 경험이 얽혀 있으며, 성별 불일치로 인한 고통을 단순한 선택이나 선언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이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 역시 제도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이다.

결국 정책이 답해야 할 것은 어느 한쪽의 경험만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개인의 성별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구분이 필요한 공간과 활동에서는 그 목적에 맞는 기준을 세울 수 있는가. 자기 선언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을 경우 기존 보호 장치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와, 생물학적 성별만을 적용할 경우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안전과 존엄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함께 다뤄야 한다. 제도의 어려움은 바로 그 두 요구가 맞닿는 곳에서 시작된다.

 

스포츠와 공간, 그리고 현실의 문제

 

성별을 둘러싼 논쟁이 가장 구체적인 무게를 갖는 곳 가운데 하나는 스포츠다. 경기장에서는 몸의 차이가 기록과 순위로 드러나고, 때로는 선수의 안전과도 맞닿기 때문이다.

세계육상연맹은 2023년 남성 사춘기를 거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 부문 국제대회 출전을 제한했으며, 수영과 사이클링에서도 참가 자격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남성 사춘기에 형성된 신체적 이점이 호르몬 치료 이후에도 일부 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있다. 그 영향의 크기는 종목과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여성 부문을 따로 마련한 취지를 지키려면 어떤 기준이 필요한지를 스포츠계는 다시 묻고 있다.

여성 전용 공간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떠오른다.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위험한 사람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설을 운영하는 제도는 이용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선의를 전제로 설계될 수도 없다. 개인이 밝힌 성별 정체성만으로 출입을 허용할 때 악의적인 이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사생활과 안전에 관한 우려를 어떤 절차로 다룰 것인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영국에서는 여성 교도소에 수용된 트랜스젠더 여성 수감자가 다른 수감자를 상대로 저지른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면서, 수용 기준을 재검토하라는 요구가 커졌다. 개별 사건을 집단 전체의 속성으로 확대해서는 안 되지만, 실제로 드러난 제도의 허점 역시 외면할 수는 없다. 권리를 보장한다는 약속은 그 권리가 행사되는 공간 안에서 다른 사람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더럼의 간호사들이 제기한 문제도 그 일상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근무복을 갈아입는 동안 자신의 몸과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 호소가 법정의 판단에 이르기까지 수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불편을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병원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돌아보게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를 존중하면서도 탈의실에서는 별도의 공간을 원한다는 요구가, 어째서 그토록 긴 다툼을 거쳐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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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영선수 리아 토머스는 2022년 NCAA 디비전Ⅰ 여자 자유형 500야드에서 우승하며, 공개적으로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대회 정상에 올랐다. 당시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동료 선수의 증언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생식기 성별 전환 수술은 받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세계수영연맹이 남성 사춘기를 거친 선수의 여성 부문 출전을 제한하면서, 연맹 관할 여성 대회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영국이 다시 물어보기 시작한 것

 

이번 NHS 지침 변경에는 의료기관의 시설 운영을 넘어서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성별 정체성을 중심으로 넓혀온 제도적 인정의 범위를 돌아보고,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구분이 필요한 자리를 다시 정하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를 환영한 이들 가운데는 오랫동안 여성의 권리를 위해 활동해온 페미니스트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여성 전용 공간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폭력과 불평등 속에서 어렵게 마련한 보호 장치였다. 그 경계를 성별 정체성에 따라 바꾸면, 애초 그 공간을 필요로 했던 여성들의 사생활과 안전을 충분히 보장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지침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병원에서조차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한다고 느끼거나,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진료를 미루게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의료기관이 누구에게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목소리 역시 정책이 구체적으로 답해야 할 요구다.

두 입장이 만나는 곳에는 결국 같은 질문이 놓여 있다. 제도는 어떤 기준으로 사람들을 구분하며, 그 구분을 통해 누구에게 어떤 보호를 제공할 것인가.

NHS가 이번 지침에서 택한 것은 남녀를 구분해 운영하는 공간의 기준을 생물학적 성별에 두는 방식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일과 시설 이용의 기준을 정하는 일을 구분하겠다는 선택이지만, 그 원칙이 현장에서 모든 사람의 존엄과 안전을 지키는 방식으로 작동할지는 여전히 살펴야 한다.

논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다만 더럼의 두 간호사가 자신의 사생활에 관한 호소를 인정받기 위해 수년을 보내야 했다는 사실은 오래 남는다. 권리를 존중한다는 제도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지 못할 때, 그 침묵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개인이라는 사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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