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가 쏟아버린 극장가의 '예측불허 탈장르 시대극' 그리고 와중에 홍상수는?

코로나가 시작하고, 달라진 일상에서 가장 체감하는 '나의 변화'는 무엇일까요. 하는 일에 따라, 혹은 좋아하는 취미나 것들에 따라서, 그 '변화'란 10인10색, 가지각색일 것도 같은데요. 제겐 영화관을 이전처럼 '가지 못하게 되었다'가 아마, 가장 크지 않았나 싶어요.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황 안에서 '밀폐된 공간에 불특정 다수가 장시간을 함께한다'는 건, 분명 걱정이 되는 조건이니까요. 그렇게 영화관, 극장 업계의 타격은 실로 상당했는데요, 매년 겨울이면 찾아오는 블로버스터 시즌도 사라지고, 기대하던 영화의 개봉은 밀리기를 반복하고...상황이 다소 호전돼 극장이 영업을 재개했지만, 심지어 상영할 영화, 신작이 없어 못 트는 지경까지 빚어졌는데요. 근래 기세를 더하는 '넷플릭스'의 활약은, 바로 이 '빈 자리'의 덕택이 아닐까도 싶어요. 

일본에선 그와 같은 시절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넷플릭스' 시장에서 한드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래스'가 큰 인기를 누렸고, 할리우드발, 그리고 제작 50주년을 맞는 애니메이션 '도라에망'의 새로운 극장판이 개봉일을 확정하지 않으면서(도호의 대기대작이라 다른 영화사들이 모두 '도라에몽'눈치만 보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어요)...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프랑소와 오종의 '미드 써머'는 호평과 함께 예상 밖의 장기 상영. 필요 이상의 상영 횟수까지 더해지면서 관객수를 '더' 늘이는 혜택'을 받기도 했어요. 그만큼 영화(신작)가 부족했다는 건데요. 궁여지책으로 도호는 '오전 10시의 영화'란 이름으로 과거 명작들을 줄소환, 기획 상영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여기나거기나, 우리랑 비슷하죠?!

그리고 분위기가 반전하기 시작한 건, 니시모리 히로유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오늘부터 우리는.' 애초 사이즈가 크지 않은 작품이라 배급사 측에선 흥행 수익 10억 정도를 예상했다 하는데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성적은 무려 개봉 이틀 만에 6억엔 돌파, 최종 50억이라는 대히트를 기록했어요. 이에 대해선 '신작에 대한 배고픔, 그리고 암울한 시대에 대한 반작용이 불러온 오락 영화에 대한 환호'란 해석이 있어요. 고정팬이 많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또 한 번의 '논란'작, '테넷'도 '작품의 힘을 과시하며 신작 가뭄에 해소가 되었고, 이후 무엇보다 가을엔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무한열차편'이겠죠. 한국에서도 개봉 첫날 줄을 세우며 인기를 누렸는데요, 최종 성적이 설마!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앞지르며, 역대 흥행 순위 1위에 올랐어요.

코로나가 시작하고, '이 와중에 무슨 영화(예술)냐'란 분위기도 있었지만, 산다는 건, 의식주 만이 아니란 걸, 여실히 2021의 영화관이 얘기해줘요.

그렇다면 영화관이 아닌 영화, 영화 내적으로는 어떨까요. 일본에선 이와이 슌지 감독이 '고질라' 시리즈와 '일본침몰'의 히구치 신지 감독, 그리고 배우이자 감독인 사이토 타쿠미 등과 영화 현장 한 번 펴지않고, 오직 '줌'을 통해 '8일만에 죽어버린 괴수와의 12일간의 이야기'란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쿠사나기 츠요시 주연의 '미드나잇 스완'은 러닝 타임 925초에 달하는 예고편을 만들며, 굳게 닫힌 극장문을 톡톡 두드리기도 했어요. 이렇게 코로나는 영화'관'이 아닌, 영화 메이킹에 있어서도 작지 않은 변화를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요, 그렇다면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외양이 아닌, 코로나 시절에 만들어진 영화는...어떤 모습일까요. 코로나에 영향을 받아 제한을 견디며 제작된 '불완전한 영화'...가 아닌, 어느새 일상이 되어 세월로 흘러가는 코로나 시대의 영화는요.

전 요즘 TV를 보면 마스크 하나 없이 신나게 떠들고 뛰어노는 모습에...소외감..이랄까요. 위화감 같은 걸 느끼는데요. 그렇다고 마스크 차림으로 연기를 할 수도 없는 법. 아직은 코로나와 영화, 그리고 TV와 우리, 일상이 '불안전한 동거'를 하는 중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전 얼마 전 홍상수 감독의 27번째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를 보며,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라는, 다소 '홍상수스러운' 생각을 했는데요. 현실과 가장 멀리 있을 것 같은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 이상하게 '코로나 이후'의 오늘처럼 보여요. 홍상수 영화 앞에서 이런 이야기...사실 매우 조심스럽긴 한데요. 극중 떡볶이 집에 손님은 없지만 배달은 넘치고, 아파트 단지엔 플라스틱 쓰레기가 산더미로 쌓여있고...오랜만에 만난 자매는 여지없이 부동산 이야기를 하며 심지어 2억과 '투싸우전헌드레드'를 이야기하고...지독히 현실적인 홍상수의 K화법처럼 보이거든요.

이동의 자유를 잃고 모두가 방문을 걸어잠근 시대에 제목이 '당신 얼굴 앞에서.' 홍상수 감독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 하지만 보지 못한 것. 그렇게 지나치고 (어쩌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참회'를 해요. 홍상수 영화를 보기시작해 20년. 이건 그야말로 이상한 '비약'인데요. 가장 영화적인 영화는, 동시에 가장 현실적이다..라는 어딘가에서 들은 문구를 인용해봐요. 아래는, 제가 적었던 리뷰를, 본 레터 주제에 맞게 조금 편집했어요. 홍상수 영화를...좋아하나요?🍂 

 🎞 너와 나 사이의 2M, '당신 얼굴 앞에서' 

방충망 너머 네모난 풍경. 어쩌면 비가 왔었나. 아파트 빌딩에 둘러싸인 단지 내 공원(인공 자연). 아파트가 대변하는 의식주의 일상과 주변에 자리잡은 너와 그들의 하루.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을 바라보는 ‘어느 높은 곳의 당신. 화면은 마치 16mm 필름으로 찍은 듯 색이 바래있고, 한참의 정적 후 카메라는 상승을 시작, 아마도 가장 익숙할 도심의 ‘아파트 뷰'가 등장한다. 콘크리트 벽의 102동과 103동. 그렇게 지상의 삶이 소거된 높은 곳에서의 일상.

이는 곧 영화 속 정옥(조윤희)이 거주하는 아파트 창밖의 전경인데, 동시에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심 라이프의 일상적 뷰에 다름없다. 홍상수 감독의 27번째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를 코로나 이후 그가 찾은 ‘삶'의 궤적이라 한다면 지나친 오독일까. 몇 번의 흑백 영화를 지나 다시 색을 지니게 된 그의 영화를 ‘돌아옴'의 신호라고 생각하다면 과장일까. 여기서 홍상수는 전과 달리 수평이 아닌 수직의 패닝을 하고, 난 그 순간, 제자리에서 비약하는 오늘, 그런 낯선 기시감을 느꼈다. 홍상수(의 세계)는 지금, 어쩌면, 코로나 이후를 시작하려 한다. 

작고 아름다운,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그곳에 어제가 개입할 틈은 자리하지 않고 미래가 스며들 새 없이 모든 건 완전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는 오직 단 하루, 24시간의 이야기이다.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긁적이던 상옥(이혜영)의 모습에서 시작, 아파트 ‘앞에서의’ 전경을 한참 바라본 뒤 다시 상옥에게 돌아오는 영화는, 미국에서 귀국해 동생 정옥(조윤희)과 함께 이틀 밤을 보내고, 이태원과 인사동, 택시 안과 길가를 맴도는 단 하루의 세월 만을 담고있다. 이전의 칸 해변(‘클레어의 카메라)’이랄지, 강원도의 어느 강가(‘강변 호텔'), 그리고 베를린과 서울 그리고 다시 강원도 까지 이어졌던 ‘인트로덕션'의 행적을 떠올리면, 극도로 미니멀, ‘떠남'을 경유하지 않는 제자리의 시간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돌아옴'의 시간에 멈춰있다.

근래 들어, 최근 홍상수 영화에선 전과 달리 생소하게 느껴지는 ‘현실의 개입'이 있다. 그의 영화는 늘, 가장 멀리, ‘어딘가'에 존재하는 듯 느껴지지만, 홍상수 영화에 변화가 있다면 그건 가장 가까운 일상과 엮이고 관계하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연출되고 있다는 점이기도 하다. 가령 ‘도망친 여자'에서 한참을 언쟁했던 길고양이 문제랄지, 암탉으로 불을 지핀 성차별 이슈, 그리고 두 번이나 등장하던 ‘집'을 둘러싼 대화와 심지어 금액까지 튀어나와버린 4억 원이란 숫자. 홍상수 영화를 논하며 이와 같은 뉴스 1면에서나 볼 법한 이슈를 꺼내는 건 여전히 주저되는 일이지만, 그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보다 큰 변화의 조짐은 생, 죽음 보다 삶, 비관으로 회피하고 눈을 감던 ‘실체없는 실체’ 앞의 '돌아섬'이 아닌, 길가의 풀잎을 (오래) 바라보고 순간을 다짐으로 버티고, 포옹으로 세계를 끌어않는, 그렇게 ‘긍정되는 현실’에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 여기엔 코로나 이후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한 장면이 몇몇 스쳐간다. 정옥의 아들이 운영하는 떡볶이 집에 손님은 없지만 배달은 폭주하고, 상옥과 가 만난 인사동 술집 ‘소설'은 왜인지 ‘요즘 사람이 없고', 성옥과 정옥이 걷는 아파트 단지 길 사이엔 플라스틱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다. 게다가 둘의 대화에 등장하는...아파트 분양이 어떻고, 집값이 2억이나 올랐고, 저금 2억이면 아파트 살 수가 있네없네. 하지만 가까이 공원이 있고 강가에서 브런치도 할 수 있는, 이런 데가 실은 맞다는...이야기는 근래 우리가 무엇보다 자주 듣고, 말하고, 그리고 생각했던 그야말로 대한민국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홍상수의 영화는 지금, 이곳에 있다. 투 헌드레드 싸우전드가 아닌, 2억원.  

홍상수의 이번 영화를 보며 몇 편의 영화와 몇 개의 이름이 떠올랐다. 홍상수 영화에서 이런 경험은 내게 흔하지 않은데 그 중 하나는 심지어 영화와 관련이 없는 인물의 이름이기도 했다. 바로 지난 도쿄 올림픽 경기장을 설계했던 건축가 쿠마 켄고.강가의 브런치를 마치고 그곳으로 ‘내려가’ 수풀에 둘러싸인 채 지난, 묵은 이야기를 꺼내 나누는 장면에서, 난 쿠마가 이야기했던 ‘건축은 인간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어야 한다'란 문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홍상수 영화와 달리 카메라는 대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인물에 근접해있고, 그 앵글은 조금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그렇게 상옥과 정옥이, 사람과 자연이 하나의 앵글 안에 하나의 그림으로 하나의 순간을 살아간다. 

정옥과 상옥의 이름이 단 한 자의 차이라는 건 그저 우연이었을까. 영화의 초반 아파트 단지 공원, 지층에서 시작해 상옥이 머무는 13층으로 상승하던 움직임은 자연과 괴리된 우리의 일상을 고발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건 곧 자매 지간임에도 서로의 근황을 전혀 알지 못했던, 그리고 못하는 그저 허울에 불과한 관계에 대한 은유는 아니었을까. 담배를 피는 상옥과 피지 않는 정옥은 징검다리 몇 개 사이로 각각 물과 뭍에 자리하고, 다리 아래 자세를 낮추고 담배를 피우던 상옥의 모습이 난 왜인지 가장 아름답게 보였다. 보다 가깝게 보다 낮게. 산 너머, 구름 너머 실체의 형상을 쫓던 홍상수는 지금 가장 가까운 땅과 바람, 그리고 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건 어쩌면 내가 만난 가장 오늘의, 현실에 안착한 홍상수의 영화라는 생각이, 마치 보지 못했던 오늘처럼 무심히 스쳐가고 있었다.

영화를 보며 떠올랐던 영화 관련 인물과 작품을 얘기하면, 그건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과 그 주인공 루이, 그리고 클레어 드니 감독의 4년 전 영화 ‘렛 더 선샤인 인'의 줄리엣 비노슈가 연기한 이자벨이다. 다소 상투적으로 난 이들 사이의 ‘접점'을 상옥에 내재된 귀향과 비밀, 곧 자아와 피아 사이의 ‘돌아감'으로 보았는데, 이 영화엔 플래쉬백으로 오늘에 끼어드는 어제가 아닌, 오늘의 시점에서 재연되는 어제의 기억이 있다. 택시의 방향을 돌려 방문한 이태원 어느 주택에서, 상옥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집에서, 상옥의 집은 어느새 카페를 겸하는 편집숍이 되었지만 정원은 십 수년 세월 속 그대로이고, 상옥의 오늘은 그렇게 오래 전 오늘과 조우한다. 마치 루이가 자신의 방 안 먼지가 뽀얗게 쌓인 가구를 쓰다듬으며 어제를 떠올리는 것처럼. 

그리고...어쩌면 가장 의미심장한. 상옥과 정옥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장면. (관객의) ‘얼굴 앞으로’ 강가의 자연을 배경으로 두 번의 행인이 멀리서 다가와 다시 지나간다. 한 번은 남녀 커플이, 그리고 또 한 번은 중년 남성이. 사실 이 대목은 매우 이상한데, 두 번의 오고감을 우리는 보았고 그들(상옥과 정옥)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모든 ‘보지 못함과 봄’, ‘다가오고 지나감’은 새로운 컷을 경유하지 않고 하나의 신‘안’에서 이뤄진다.

홍상수의 카메라는 이전 영화와 달리 대화 중에도 인물을 향해 줌업을 하는 일이 없고 스크린 크기 만한 풍경, 그것이 ‘오늘’이라면 그 안에 다가오는 것을 모두 보이게 한다. 모두 다 받아들인다. 난 그 순간 영화가 돌연 시간성을 확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를 코로나 시절 잃어버린 시간 감각, ‘오늘’에 대한 홍상수식 해석이라 애기한다면, 지나친 코로나 피해 망상일까. 하지만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바라보는 것, 오래 보는 것, 그러니까 ‘클레어의 카메라.' 그곳엔 분명 우리가 보지 못한 오늘, 그 흔한 오늘의 ‘오늘’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초반, 정옥은 매일 보면서도 왜, 상옥에게 ‘오랜만'이라 인사를 했다. 

홍상수 영화...싫어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는 점점 작고도 품이 더 넓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 더불어 이혜영 배우의 출연은, 그가 오래 전 발견했던 '영화의 시작', 그곳에서 구원을 시도하는 뉘앙스도 풍기거든요.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때로는 현실의 보이지 않는 면? '오늘'을 알게 해주기도 해요. 그렇게 제겐 홍상수의 이번 영화가 코로나 시절, 우리가 잊어버린, 그리고 찾고있던 '그 하루'란 생각이(도) 들었는데요. 2m를 이야기하면서 만남을 기다리는, 지금 이 시절의 모순이 '당신 얼굴 앞에서' 그 곳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해요.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지만, 홍상수 감독은 심드렁할 게 빤하지만, 어쩌면 제겐 그런 '오늘의 진심'이 느껴지는 영화였어요. 

그리고 11월의 마지막 일요일, Men I Trust의 곡 남겨놓아요. Sorbitol, 당알코올의 화확적 이름이라 하는데요. 달달한 알콜...일까요. 요즘 자꾸 '센티'해지는 건, 다 계절 탓이겠지요? 그럼, 우리 또 만나요.🖼

📫  오는 화요일, 11월의 마지막 날 30일엔 '야마테센의 뉴스 배달부' #32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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