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레터] 어느 '영화 마케팅'의 아날로그 대화법, 예고편을 다시 쓰다

🙆‍♀️🙆‍♂️  '진심'에, 서론은 필요없어요 

OTT로 보는 영화엔 예고편이 없다. 굳이 극장까지 가 자리에 앉아 10분이나 넘게 광고를 보(게되)는 일은 별로 유쾌하지 않지만, OTT엔 예고편이 없다. 영화가 끝나기가 바쁘게 관련 작품, 혹은 시리즈의 다음 회가 불쑥 치고들어오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려는데 다음 이야기가 시작하려 한다. 국내 극장 역시 엔딩 크레딧(의 시간)이 확보되는 곳은 별로 없지만, OTT엔 예고편이 없다. 대부분 이어폰을 꽂고 영화 시작 전, 불빛이 완전히 소등되기 직전까지  불필요한, 원하지 않는 소리만은 차단하고 있는 나지만, 때론 그런 의도치 않은 광고에, 예고편에 노래를 찾아 듣기도 하고 예정에 없던 영화의 티켓을 끊는다. 극장이라는 장소성.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라는 현장성. 예견할 수 없는 내 하루의 ‘미래성.’ 문득 영화를 보는 극장의 시간이 그리워졌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닌지, 인과 관계는 불분명하지만 코로나 이후 일본의 몇몇 영화들은 '전에 없던 예고편'을 공개한다. 기존의 15초 혹은 30초, 유튜브 및 인터넷 용으로 2분 정도 까지 제작되던 예고편의 틀을 훌쩍 넘어 쿠사나기 츠요시가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한 ‘미드나잇 스완'의 예고편은 925초였다. 몇몇 단편 영화, 혹은 숏숏 영화제와 같은 곳의 출품작은 그보다 더 짧은 러닝 타임을 갖기도 하는데, 예고편이 925초이다. 그에 더해 지난 가을 가장 호평을 받은 작품 중 하나인 오카자키 료코의 원작 ‘지오라마 보이 파노라마 걸'을 영화화한 세타 나츠기의 작품의  경우, ‘미드나잇 스완'보다 조금 짧은, 2분 쯤 미치지 못하는 8분 9초로 제작됐다. 그에 반해 코미디언 테라카도 지몬의 첫 연출작 ‘Food Luck’, ‘식운(食運)'은 6초 짜리 예고 100편을 연달아 공개하는(6' 곱하기 100이면 600', 결국 10분 짜리 완결판을 위한 100걸음), 어디에도 없는 예고편의 ‘연사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인과 관계'가 아닌 '상관 관계'로서의 어제와 오늘. 세상엔 그렇게 설명되는 일들도 있다.

의식주를 비롯 일상의 기본 양식을 다시 돌아보는 시절, 영화 예고편은 지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걸까. 쿠사나기 츠요시의 예고 아닌 예고편을 보며, 영화는 지금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기존의 예고들이 호기심을 건드리며 유혹을 해오는 '티저'성이 강했다면, 지금의 낯선 예고들은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왜인지 길고, 진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영화적 체험을 기억하기 위한 ‘예고편', 시제가 뒤바뀐, 혹은 본말이 전도된, 그리고대체될 수 없음에 대한 ‘주제넘은’ 각인들.

그러고 보면 일본은 여전히 영화 홈페이지를 참 꾸준히 성실하게도 제작하는데, 시간이 흘러 내일이 시작되도 그 빛바랜 어제의 url들은 남아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벌어졌던 것들. 극장의 영화 한 편이 우리 삶에 남기고, 기억되어 있는 것들. 그런 영화(와)의 세월을 꼼꼼히 채우고 있는 세상 모든 것들. 예고편은 어쩌다 ‘오늘의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난 그 묘한 플래쉬백이 왜인지 멜랑꼴리한 멜로 영화 같다고 생각했다.

1️⃣  영화 좋아하는 사람 중에 어두운 사람이 많은 이유 

본편 중 일부일지 모르지만, 타나카 유키의 신작 ‘바닷마을 아침 해의 거짓말쟁이들(浜の朝日の嘘つきどもと)’은 영화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예고편을 공개했다. 코메디언이지만 글도 쓰고 알고보면 흥미롭고 깊이도 있는 오오쿠보 카요코 씨가 출연, 직접 원리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은 필름에 담긴 화면이 영사기를 통해 스크린에 옮겨지기 까지, 말하자면 필름 영화가 태어나는 시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름 영화 잡지에서 일을 시작하고도 막상 설명하려 하면 헤맬 게 빤하고, 필름 영화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에, 영화관 그 자체는 알지 못할 벼랑 끝에 내몰린 듯 느껴지기도 하는 시절에, 굳이 아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되뇌는 일은 어딘가 오늘에 대한 저항, 내일을 향한 고집처럼도 느껴진다. 어떤 영화 (예고편)은 시대에 발언을 하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바닷마을 아침 해의 거짓말쟁이들’은 실제 후쿠시마 현 미나미소마 시에 현존하는, 역사 100년의 영화관 ‘아사히좌朝日座'를 무대로 한 작품이고, 시대의 변화 속 풍화하는 세월과 함께 문을 닫게된 극장을 지키기 위한, 영화관의 재건을 위해 분투하는 인구 10만 작은 마을의 오늘이 그려진다. 정말 그저 그런 심플한 구성. 하지만 오오쿠보가 분하는 타나카의 설명은 왜이리 흥미롭고 신비한지. “결국 사람은 절반은 어둠만 보고도 웃거나 감동하거나 한다고. 그래서 영화 좋아하는 사람 중엔 어두운 사람이 많은걸까" 이 말에 나도 몰래 잊고있던 익숙한 웃음이 떠올랐다.

2️⃣  길 위에 쓰여지는 영화,  영화를 말하는 925초 

코로나 이후 영화의 선전 방식도 좀 수상하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오프라인 상의 관계를 보다 더 의식한 듯한 시도들이 눈에 띈다. 지난 해 9월 개봉한 쿠사나기 츠요시 주연의 '미드나이트 스완'은 무려 925초, 15분 25초 분량의 예고편을 공개했다. 보통의 영화들이 1분 남짓 길면 3~4분의 예고편을 제작하는 걸 생각하면 우치다 에이지 감독의 이 오리지널 스토리는 예고편이 단편 영화 수준 러닝 타임이다. 이게 딱히 코로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예고편'의 자리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무언가'가 이 925초엔 있다. 

기나긴 예고편을 '한참' 보고있으면, 트랜스젠더와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소녀 사이의 아슬아슬한 외로움의 서사는, 애초 1~2분 짜리 그릇에 어울리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희미한 확신이 들기도 한다. 우린 지금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위한 시간이 필요한 걸까. 더불어 정반대의 지점에서 코미디언 테라카도 지몬의 첫 연출작 'Food Luck 식운(食運)'은 6초 짜리 예고편을 100번 연속 뿌리는 '100연발 X 6초' 마케팅을 벌이고, 배우 스다 마사키는 요즘 자비에 돌란의 '마티아스와 막심', 사진가 모리야마 다이도의 다큐멘터리 예고편에 목소리를 빌려주며(나레이션) 연기보다 바쁜 '부캐'의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마티아스와 막심'의 예고편은 요즘 가장 인기인 시인 사이하테 타히가 영화를 위해 새로 쓴 시를 스다가 직접 낭송하는 포맷을 취했다.

전에 없던 이 '크레에이티브'들은 다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새삼 묘해지는 시절, 세상은 더 많은 물음표로 채워진다. 

3️⃣  네게 비친 나, 詩가 된 영화 

자비에 돌란의 '막심과 마티아스'를 배우 스다 마사키가 사이하테 타히의 시로 낭송하는 '네게서 나에게 너에게로의 이야기'. 이보다 황홀한 영화 마케팅이 있을까. 사이하테 타히의 詩야, 그간 쇼핑몰 계단이랄지, 동네 골목이랄지, 심지어 호텔 어매니티에도 쓰이며 포에틱한 변주를 보여줬지만, 이 영상을, 소리를 듣고 다시 한 번 돌란의 영화가 보고싶었다. 말로 할 수 없는 말을 말로 하려 할 때, 생겨나는 너와 나의 무수한 상처들. 그러고보면 막심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커다란 상처가 있었지.⠀

🇯🇵  그리고 오해되는 마음들, 지금 일본 영화에 대하여 

도에이의 기대작. 내게는 의외의 발견과도 같았던 시라이시 카즈야의 ‘고독한 늑대의 피'가 속편 공개를 앞두고 9분이 넘는 ‘예고 아닌 예고편'을 공개했다. 대사의 한 대목을 모두 4개의 사투리로 재연해놓은(후시 녹음의 더빙) 영상인데, 마츠자카 토오리가 ‘너희 모두 체포야'라 히로시마 방언으로 말하면 , ‘너희 모두'가 표준어, 오사카벤, 츠가루벤, 하카타벤으로 합을 맞추며 치고받는 식이다. 외국인인 나는 듣는 재미를 난 잘 모르겠지만, 지난 해 ‘마티아스와 막심'을 사이하테 타히의 시와 스다 마사키의 낭송으로 믹스해, 홍보 영상을 만들었던 예와, 분명 멀리있지 않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영화 마케팅은 조금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지난 아카데미, 남우 주조연상을 휩쓸었던 시라이시의 이 영화는 도에이의 가장 기대작이기도 한데, 근래 실패를 거듭하는 도호와 함께 생각하면, 역시 영화는 영화적일 때 가장 빛이 난다. 이 영화와 두 주 사이로 개봉하는 도호 영화는 또 하나의 속편, 기무타쿠 주연의 ‘마스커레이드 나이트.(1편은 '호텔)’ 대략 5년 전 ‘히어로' 원과 투와 이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이미 알 것 같은 ‘내일'을 만나는 건 내게 별로 영화같지 않고, CJ 영화가 한국 영화가 아니듯, 도호 영화 역시 일본 영화는 아니다.

사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야쿠쇼 코지의 뒤를 잇는(말 그대로 그 캐릭터, 그 자리를 물러받는 듯한) 마츠자카 토오리의 ‘피.’ 일본 영화는 파워 있고, 다이나믹한 한국 영화와 비교되며 흔히 나약하고 말랑하다 이야기되지만, 시라이시의 ‘고독한 늑대의 피'를 보고 느낀 건, 생각(의 끝)을 두려워 하지않고, 모럴/언모럴의 사이에서 고뇌하고, 무너져도 타협하지 않는, 자신의 영화적 정당성을 (끝까지) 추구하는, 다소 미숙해도 쓰러지지 않고 차라리 폭파하는 영화적 불온함이 그곳엔 있다. 그리고 그건 시라이시 카즈야나 ‘너는 너라서 너다'의 마츠이 다이고, ‘콜 보이'의 미우라 다이스케나 ‘우행록'을 만들었던 이시카와 케이와 같은 이름으로 증명되고, 갓 결혼한 신랑 마츠자카의 이 영화에서, 고작 2~3년 전의 스다 마사키나 올림픽 개막식에서 춤을 췄던, 서른 이후 더욱 깊어지는 모리야마 미라이와 같은 연기로 실현된다. 한국에선 그런 배우를 가끔 그걸 유아인에게서 보곤 하는데...

조금 더 이야기하면, 마츠자카는 몇 해 전 ‘망상'이란 타이틀의 사진집 아닌 사진집을 두 편 냈는데, 그건 ‘하고싶은 영화, 캐릭터'에 대해 대놓고 고백하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었다. 제작도 되지 않는 영화에 대한 홍보물을 정색하고 스무 편 넘게 만들어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일본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일본의 젊은 배우들로 만들어지는 ‘일본 영화'는 분명 존재한다. 마츠자카의 ‘망상'을 펼쳐보며 그가 출연한 ‘콜보이', ‘고독한 늑대의 피', ‘불능범'이랄지 ‘신문기자'가 어른거리는 건 영화의 시간일까, 망상의 자리일까. 오늘을 조금 다른 자리에서 배반할 때, 영화는 태어난다.

 다시 시작하는 '수필과 레터', e레터의 시작, 어떠셨나요? 사실 전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계기(동기)가 영화였거든요. 지금은 무덤덤하게 보지만 고딩 시절 워터 살레스 감독의 '중앙역'을 편도 2시간 지하철을 타고 인생 첫 대학로 동숭 시네마테크에서 본, 그날 밤이었어요. 어차피 뻥이지만, 픽션을 빌린 현실이지만 그렇게 알게되는 '삶'이란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근래 초대형 신인이라 주목 받았던 멕시칸 어메리칸 뮤지션, los restros의 음악 남겨놓을게요. 19살 때 온라인에 음원을 올리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화제의 얼터너티브 음반을 출시했던 Stnes Throw에서 데뷔작이 나왔답니다. 소개하는 곡은 '시간을 함께할 누군가', someone to spend time with. 노스탤직하면서도 신선한 사운드와 몽롱한 음성이 오늘 레터의 bgm이라 느꼈어요. 최근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요, 사는 게 힘들다면 가끔은 '영화를 살아도' 괜찮아요. 그럼, 우리 다시 또 보아요.🥂

+오는 금요일, 9월의 첫째 주 3일엔 '밤에 보는 뉴스, '야후 레터' 읽어드립니다'가 발행됩니다. 줄여서 (이제야) 'y레터'라 부르기로 했어요. 📪

🎬 아래는 제가 남긴 돌란의 성장영화, '마티아스와 막심' 리뷰에요.

📤 그리고, 무료 공개중인 레터들입니다.

✔️  기존의 {수필과 레터}를 'e레터'로 변경해요. 여기서 e는 에세이의 e이지만, emotion, 그리고  최근 일본의 신조어인 '감상적이다'를 의미하는 emoi도 의식했습니다. 그리고  격주 발행에서 ABCDE의 E. 5주에 한 번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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