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음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일, 일상만큼 위대한 '작품'은 없어요.

코로나 시절 속 찾아온 5월, 잘 보내고 계신가요? 한 해의 시작은 1월이라 하지만 체감하는 시작은 3월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일본에선 4월이 우리의 3월에 해당하거든요. 회사의 시무식이든, 학교의 입학식이든 모두 4월에 열려요. 전 여러모로 5월이 가장 시작하는 계절처럼 느끼기도 하는데요. 푸르름이 농익어 세상이 모두 '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감각이랄까요. 어버이날이나 어린이날, 여러모로 감사하는 '날'들도 많지만, 5월엔 잠시 세상이 곁에 다가와 주는 기분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혹은 아무 상관도 없을지 모르지만😅, 레터의 형식을 조금 바꾸어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하나의 주제로 두서없는 '주저리주저리'를 길게 늘어놓곤 했는데요, 이번 호부터는 작지만 시작을 느끼게 해주는, 코로나 시절 하나의 '전환'이 되는 가장 최신의 소식들을 이야기할게요. 말하자면 아침의 샐러드와 같은, 혹은 오후 3시의 간식 같은 이야기를 전달해 볼까 합니다. 그렇게 키린지와 마스다 미리, 21년의 여행과 커피숍의 스타벅스와 쿠마 켄고, 준비했어요. 5월은 푸르름의 시작입니다.

#01_  KIRINJI가 부활했어요 

키린지를 아시나요. 아마도 근래 시티팝이 유행하며 어린 세대에서도 꽤 알려지게 된 뮤지션이라 생각하는데요, 지난 해 25년의 활동에 마침표를 찍고 듀오의 시절에 막을 내렸던 키린지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키린지는 보기 드물게 호리고메 야스유키와 타카키, 호리고메 형제에 의한 2인 유닛이에요. 동생인 야스유키가 대부분의 곡을 작곡하고 노래도 부르고, 그래서 형인 타카키는 '우리는 듀오가 아니라 밴드'라 말하기도 했어요. 타카키는 활동 중반 5명의 세션을 더해 밴드로 활동하던 시기를 포함, '키린지'라는 팀의 사운드 전체를,  프로듀싱이랄지, 매만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울하지만 아련한, 몽롱하고 빛나는 사운드와 무엇보다 가사들이 하나같이 주옥같아 마니아 팬이 많습니다. 이들의 6번째 싱글 '에일리언즈'는, 키린지 음악의 정서가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곡이기도 해요. 전 몇 해 전 야밤에 라디오를 듣다 94년생 배우 야먀자키 켄토가 키린지의 이 노래를 추천하는 걸 보고, 노래의 시대성이란 뭘까 새삼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키린지는 1996년, 켄토가 두 살 때 데뷔했거든요. 요즘 역주행이란 게 하나의 마케팅 전략처럼 얘기되기도 하지만, 음악이란 늘 일상 곁에 있다고 믿어요. 이들의 서른 일곱 번째, 다시 시작한는 계절의 첫 번째 싱글은 '재회'랍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왜 알 것 같죠?😭

"기다리고 있었어, 기다리고 있었어 / 이 날을, 지금을 바라고 있었어 / 어깨를 맞대고 즐겁게 모두 웃어보자 / 밤을 지새며 노래하고 춤추자 /사람에 취해 흘렁흘렁 / 너의 뒷모습과 나의 뒷모습 / 흔들리는 너의 체온을"

#02  마스다 미리가 '인형의 집'에서 찾은, 작고도 커다란 세계 

이케아가 'Doll House'인형의 집을 판매하고 있다는 거, 알고있었나요? 전 이번에 마스다 미리 씨의 뉴스를 보고 처음 알았는데요. 코로나 이후 세계 곳곳의 유명 인사들이 '무얼 하고 사나'는 하나의 감초 콘텐츠처럼 종종 보도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전 이 흉흉한 팬데믹 시절을 보내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루틴과 (생전의) 프란츠 카프카, 쿠마 켄고와 꼼 데 갸르송의 카와쿠보 레이 씨의 '하루'를 훔쳐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었는데요(라고는 해도 인터넷 웹에서의 대수롭지 않은 발견들), 심심하고, 잔잔하게 마음을 후벼파는 만화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좋은 마스다 미리 씨는, 이케아에서 '인형의 집'을 구매했대요. 찾아보니 일본에서는 3999엔에 판매되고 있네요. 그리고 어린이용이랍니다.

마스다 씨는 철지난 그 물건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집에서의 시간이 늘어나며 일본에서는 집 안에 집을 짓는 '코야'가 유행하기도 한다는데, 그건 좀 비싸잖아요. 마스다 씨는 "학창 시절 유행한 철제 필동을 만난 기분이었어요"라 말하기도 했어요. 어른이 되고나서 아동용 물건이란 이런 재회의 순간을 만들어주는 걸까요. 소소한 기쁨이라는 건 소소한 발견인 걸까요. 69년생 일본에서 사는 만화가는 그곳에서 '벽을 걷는 세계'를 찾아내기도 합니다. 

"이전부터 살까말까 고민했지만, 고민했던 이유는 둘 곳이 없다는 것. 하지만 어느 밤 문득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둘 장소가 없다면 벽에 걸어보자. 그러고 보면 '도라에몽'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에 집이 좁은 아이를 위해 도라에몽이 도구를 이용 벽이나 천장에 장식을 달기도 했었지. 무슨 이름이었었지. '도라에몽 벽을 걷다'로 검색하니 바로 나왔어요. 정확한 이름은 '중력 페인트.' 그러고 보면 중학교 시절 캔 펜 케이스가 유행했을 때 샤프나 지우개, 콤파스 같은 것을 색깔 별로 맞추어 넣어놓고, 뚜껑을 연 순간 귀여워 보이는 그림이 하루의 즐거움이었지. 작은 세계에 매료되는. 그게 바느질 상자나 도구함이라 할지라도."

by 益田ミリ

전 이 이야기가, '스테이 홈' 시절에 우리에게 전하는 그녀다운 메시지로 읽혔어요. 그게 코로나거나 마스크를 쓰고 지내는 일상이라 할지라도. 작지만 매료되는 세계가 우리 삶 속엔 숨어있을지 몰라요. 어쩌면 벽이나 천장 어느 구석에라도요.

#03  스타벅스 커피값은, 와이파이 값? 

스타벅스와 커피빈, 투썸과 이디야, 백커피와 파스쿠찌...요즘 커피숍 자주 가시나요? 이제는 매장에서 마시기보다는 테이크아웃을 하는 일이 월등히 많아졌다고 느끼는데요. 최근 일본에선 일본 내 카페 체인들의 가격 대비 실감하는 기분의 내역에 대한 분석이 화제가 되고 있어요. 대상은 가장 많은 점포를 보유한 스타벅스와 일본의 자존심 도토루, 근래 붐이기도 한 킷사뗑 노포 체인 루노아르와 지방에서 선전하는 코메다 커피, 그리고 '오샤레'의 대명사 블루보틀이었어요.

품목은 다가오는 여름을 맞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였는데요. 같은 톨이라 해도 용량은 제각각이지만, 일단 가장 값이 비싼 건 역시 킷사뗑인, 루노아르 660엔 입니다. 거의 8천원을 육박하는 웬만한 밥 한 끼인데요, 이러면 무슨 고급 호화스런 커피 한 잔을 떠올리기 쉽지만, 킷사뗑의 기본 단가는 여타 커피숍보다 평균 2~3백엔이 비쌉니다. 왜냐고요. 금방 설명할게요.

먼저 분석을 한 건 '시시하지만 도움이 된다'를 모토로,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활동을 하고있는, 참 독특한, 별난 토요마네 씨에요.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비스듬히 세상을 바라보며 '썸씽'을 발신하는 회사원. 일러스트레이터 대신 파워포인트를 열심히 했더니 파워포가 취미가 되었습니다'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참, 재밌는 사람이죠. 심지어 트위터 팔로워/잉의 숫자가 모두 0, 제로에요. 그런데 트윗의 평균 '좋아요'와 리트윗은 세 자리 숫자입니다. 참 신기한 사람이에요.

토요마네 씨는 먼저 5백 엔을 기준으로 커피의 가격은 275엔으로 상정한 뒤, 그 나머지 차액을 각각의 체인들이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분석했어요. 그 결과 스타벅스는 '멋짐의 세금'과 자릿세, 그리고 블루보틀은 '멋짐 세금'과...보이지가 않아요...😂', 그리고 코메다는 '맛있는 원두'와 브랜드 전통 메뉴인 '시로 누와르'에 대한 사랑'같은 게 거론되었어요. 그런데 도토루의 경우 커피값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루노와르의 커피엔 '엉덩이 세'가 포함되어 있는게, 피식 웃게하네요.😆😆

토요마네 씨는 사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런 걸 만들었다고 하지만, 근래 '장소', 공간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는 시절 이건 쓸모에 대한 재고의 실천처럼도 보여요. 도표가 화제가 되며 트위터 상에서는 '스타벅스는 와이파이 세'다랄지, 최고급 호텔인 '제국 호텔'의 카페에서는 '스테이터스(품위) 세금'이 붙는달지, 못지 않게 재미난 트윗들이 쏟아지기도 했답니다. 한국의 아이스 아메리카는 5천 원 정도인가요? 거기엔 커피값, 그리고 무엇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서로 다른 우리의 내역서가 '이곳의 카페'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해 줄지 모르겠어요. 

#04  올림픽 경기장 설계자, 쿠마 켄고가 이야기하는 '건축은 작품이 아니다' 

아마도 지금 가장 골칫거리 건축이 되어버린 도쿄의 올림픽 스태디움을 만든 쿠마 켄고는, 아마 지금의 도쿄를 이야기하는 건축가일 거에요. 올림픽 경기장이야 자하 하디드 안에서 결정이 번복되고 두 번째 콘페티션을 치르는 둥 구설수에 시달린 경기장이기도 하지만요, 쿠마는 와중에 곱씹어 봐야 할 건축을 만들었어요.

먼저, 쿠마의 올림픽 경기장은 얼핏 보기에 인상적인 게 (아무것도) 없어보여요. 기존의 타원형 스태디움 구조이고, 별다른 장식도 찾아보기 어려워요. 하지만, 이건 그가 드러나는 건축이 아닌, 마을에 스며드는, 일상을 함께하는 건축을 하고있기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자연을 허물고 나무를 베어내고 땅 위에 거대하게 발딛는 건축이 아닌,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에 양해를 구하듯 조심스레 둥지를 트는 건축이에요. 코로나 이후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한 지금, 그래서 그가 이렇게나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걸까요. 얼마 전 '일경BP’에서 '쿠마 켄고 건축 도감(隈研吾建築図鑑)'을 펴냈고요, 거기에 실린 인터뷰 한 대목을 옮겨볼까 해요. 제게 쿠마는, 짓지 않는 건축, 다시 살아가는 일상, 부자유의 자유를 실천하는, 가장 현실의 건축가입니다.

Q 쿠마 씨는 예전 '건축 설꼐는 지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어요. 확실히 이번에 '진화도'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건축가 중에는 한 번 시도한 것은 다시 반복하지 않는 타입의 사람도 많은데요, 쿠마 씨는 언제부터 '지속'을 중요시 하게 되었나요.

쿠마 그건 이 책에서 소개된 '푹신한 건축'과 연결되는 이야기에요. '유연한 건축'이라는 건 하나의 건축으로 완결되는 것을 지향하지 않아요. 

Q 다른 건축가들이 '푹신한 건축'을 하지 않으려는 건, 그것이 작품이 되기 힘들기 때문인가요.

쿠마 넵. 작품이 되기 어렵죠. '작품'이란 개념 자체가 근대의 위험한 개념이고, 그것이 환경을 부수고, 건축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해왔어요. 하지만 실제 프로젝트를 해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결코 작품이 되지 못해요. 코스트적인 면이나 물리적인 것들. 그런 제한이 대부분이에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해도, 현장에 가서 부지를 보고 예산 뚜껑을 열어보면, 이건 어떻게 해도 작품은 되지 않는다 생각하게 돼죠. 

하지만, 클라이언트를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조건'이고, 저 자신도 이 작업을 통해 무언가 달성하고 싶다 생각해요. 그 달성이라는 것은 작품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저 스스로 계속 해오던 것의 연장선에서 무언가 하나를 더하는 것. 그런 달성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 하나 더한 것 정도로는 잡지에서도 실어주지 않죠. 하지만 저 자신에게 '이것을 더할 수 있었다'라는 건 매우 커요. 이건 작품을 만드는 것 이상의 만족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푹신한 계열'이 계속 확장하게 된 거죠.

그리고 '라보(laboratory) 적인 제작 방식'이란 말로도 설명할 수 있어요. '라보'라는 건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연구해 오던 것에 하나를 더하는 되는 일이에요. 그게 즐겁다고 느낍니다. 

🤔 무언가 규모도 크고, 모습도 화려하고, 박수도 많이 받는 그런 삐까뻔적 한 것 만이 건축의, 그리고 우리 삶의 '왕도'는 아닐 거에요. 개인적으로는 자하 하디드의 올림픽 경기장으로 낙점됐다 물건너간 설계도와 지금의 쿠마 켄고가 완성한 올림픽 스태디움을 보면, 우리의 과제와 앞으로의 길이 보인다고도 느껴요. 결국, 모든 건 작음이 시작이었습니다.

**✈️   다시, 도쿄에 간다면 #02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카페' 편

지난 번 레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서관,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를 이야기했는데요. 하루키의 모교 와세대 대학 내에 10월 중 개관 예정이고, 얼마 전 그 안에 '카페'가 오픈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 재학 시절, 와이프(그렇게 결혼을 일찍 했나봐요;)와 함께 킷사뗑을 운영한 걸로도 알려져있는데요. 그 뒤를 이어가는 형태로, 몇 해 전부터 이미 '카페 프로젝트'가 진행중이었어요. 그렇게 지난 4월 신입생을 맞이하는 계절에 '무라카미 라이브러리 카페'에 대한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이 카페는 좀 색다른 부분이 있어요. 경영을 하는 게 유명 바리스타나 유수 체인에서의 경험을 가진 직원이 아니고, 물론 학교 교직원도 아니고, 재학중인 학생들입니다. 교육학과에 재학중인 3학년생 이치하라 켄, 문화 구상 학부의 4학년 생 이시마루 사와, 정치경제학부 신입생 하야시 라쿠조가 카페를 운영한다고 해요. 이치하라 쿤은 인터뷰에서 "문학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카페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네요.

정식 오픈은 올 가을이라고 하는데, 어떤 모습의 카페일까요. 그곳에 가면 소설 한 편 쯤 떠오를까요? 😇  그 즈음이면, 가을 바람이 선선할 텐데, 도쿄 나들이는 좀 쉬워질까요? 독서의 계절엔, 무라카미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함께 어떨까요.☺️

↩️  조금 방향을 다듬어본, 새로운 레터 어떠셨나요. 5월이라 해도 날씨가 좀처럼 봄같지 않은 요즘인데요, 마스다 미리 씨처럼 별 거 아닌 작은 발견이, 토요마네 씨 같이 시시하고 대수롭지 않은 생각이 때로는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키린지의 시대를 망라하는 명곡 '에일리언즈' 남겨좋을게요. 시절은 이래도, 우리 봄바람, 놓치지 말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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