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뉴 유즈루의 논문 학술지 게재?!
이번주의 오프닝 토크 최근 하뉴 유즈루의 졸업 논문이 학술지에 정식 게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화제가 됐어요. '피겨 스케이팅의 모션 캡쳐'에 관한 주제였다고 하는데요, 실전과 이론의 완성인건가요?🙃 보통 졸업 논문이 게재되는 예는 거의 없지만, 문의가 쇄도하고, 만듦새가 훌륭해 이례적으로 게재하기로 했다네요. 하뉴는 와세다 대학 인문학부를 지난 9월 졸업했어요.
단순 비교할 건 아니지만 '학폭로'가 연이어 터져나오는 가운데, 잊고있던 스포츠 선수 특유의 건강한 기운, 균형잡힌 삶, 우직한 성실함 같은 게 생각났습니다.
UP도, RE도 아닌, '사이클링'에 주목하다
얼마 전 스타벅스는 '흘리지 않는 뚜껑'을 발매했습니다. 이게 무슨 요상한 이름의 뚜껑일까 싶은데요, 근래 테이크아웃 잔이 몰라보게 불편하다 느끼는 요즘, 음료를 한 잔 사들고 나와도 한 모금 마시기가 참 힘겨운 코로나 시절, 마실 때보다 마시지 않는 시간이 더 길고, 그래서 자칫 쏟을지 모를, 조금 빠른 걸음에, 혹은 차 안 흔들리는 홀더 안에서 흘러 넘칠지도 모를, 돌연 처치 곤란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테이크아웃 잔을 향한 배려의 결과에요. 귀여운 곰인형이 부착되었고요, 이름하여, '드링크 홀 캡'입니다.
500엔 리유저블 컵을 구매하면 세트로 따라오는 식이고요, 숏부터 톨 사이즈까지 대응가능하다고 하네요. '마이 컵'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는 스타벅스인데, 종종 요청하면 꽂아주곤 하던 초록색 플라스틱 '스토퍼'를 이젠 올타임, 리유저블 버전으로 만들어낸 거에요. 참 별 거 아니지만, 참 별 거 아니게 센스죠?!. 단순한 부속품이 아닌 쓸모를 생각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아이디어 아니었을거라 생각해요.
'LOOP', 순환을 생각하다
요즘은 무얼해도 올바라야 하고, 반성하게 되고, 무얼 사도 왜인지 조금은 망설이게 되는 이상한 사회적 자숙 분위기가 있다고도 느껴요. 코로나 대이변이 우리에게 알려준 전방위적 경고 때문일텐데요, 그렇게 내가 아닌 너를, 우리가 아닌 자연을 돌아봄과 동시에, 때로는 그저 맛있고 예쁜 거에, 기분 좋아질 때가 그립기도 한 것 같아요. 인간에겐 이성으로 다잡는 내일도 있지만, 감성으로 기억하는, 그리고 꿈꾸는 내일도 있는 법이거든요.
한켠, 요즘엔 브랜드들도 저마다 친환경, 업사이크링과 지속 가능한 순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유니크로의 RE.UNIQLO, 아디다스의 'close the loop', H&M의 헌옷을 수거해 새 옷을 위한 실을 뽑아내는 Looop처럼요. 그런데 사실 이런 게 딱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물론 코로나 이후 더욱 활발해지는 느낌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재활용', '분리수거'의 세월을 살았어요. 초등학교 시절 신문지 모아 등교하던 시절 기억하나요?(저와 같은 세대라면요;;)그렇다면 우리의 '재활용', '분리수거'는 지금 어떤 문턱의 세월을 넘고있는 걸까요. 업사이클링, 리사이클, 무엇이 문제일까요. 아디다스의 James Carnes 전략 부장은 지금은 '루프를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어요.
-H&M 의 헌옷을 수거해 새옷으로 만들어내는 'LOOOP'에 관한 기사글이에요.(일본어지만, 대략의 내용은 이 레터에 담겨있어요)
사실 '차이'는 생각보다 큰 곳에 있다고 느껴요. 기존의 재활용이 정해진 규범을 따르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이유나 원리는 모른 채 반복하는 다소 '소비적 행위'였다면요, 업사이클링, 리사이클을 지나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건, 순환, 함께 살아가는 시간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책임을 동반한 '생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가끔 플라스틱이라 적힌 분류함에 내가 먹은 도시락 껍데기를 넣어도 (안)될지 어리둥절할 때가 있잖아요. 재활용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우둔한 선량함이죠. 하지만 '순환'을 생각할 때 그 행동은 생각을 동반하고, 나아가 적극적 행동이 되고, 소비보다는 실천, 순환하는 하나의 동그라미 속 나를 돌아보게 한다 느껴요. 조금 다르게 예를 들어보면, 공식만 암기해 푸는 산수 문제와 원리를 이해한 뒤 풀이하는 수학 문제 같은 거랄까요.
RAGTAG를 아시나요?
아마도 가장 가까운 '재활용'의 실천은 '옷'과 관련된 '연결'이 아닐까요. 어릴 때 누나, 형이 입던 옷을 물려입기도 했고, 옷장 정리를 하면서는 누구에게 전달될지 모를 입던 옷을 헌옷함에 넣곤해요. 아마도 이 정도가 우리가 아는, 지금까지의 '옷의 재활용'일거에요. 하지만 '재활용', 말은 그럴듯해 보여도, 대부분 '새옷이 아님에 대한 삐짐', 혹은 '콘도 마리에'를 몇 번 본 뒤 따라하는 '설렘'에 의한 소거법, 방 안 공간의 확보거나, 정리정돈을 통한 리프레쉬 정도인 것 같아요. 딱히 이렇다할 즐거움은 없고, 어제의 처분이거나 미니멀리즘에 도취된 잠깐의 쾌감 정도겠죠? (미국에선 '콘마리'가 하나의 동사, 정리정돈 잘하다의 의미로도 쓰인다고, 어제자 아이바 마사키의 라디오에서 얘기하기도 했어요. "나 오늘 콘마리 하려고", 뭐 이렇게요.)
'순환'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면요, 이건 결코 연결이 아니라고 느껴요. 흐름에서 배척된 '활용'이고, 이어진다고 해도(형, 누나의 옷을 물려받는 등) 마지못해 이어받는, 일그러진 '활용'의 전가에요. 그리고 이 일방향적 흐름은, "새옷은 언젠가 헌옷이 된다는 걸, 헌것은 언젠가, 분명 새 것이었다는 '진실'을 망각하고 있어요. '새것'과 '헌것'에 대한 이분별적 판단이 끊임없이 재활용품을 낳기도 하고요. 형에서 나에게, 내게서 동생에게, 그리고...이 수직의 재활용은 과연 얼마나 '유효할까요.' '재활용'의 '재활용'을 고민해야 한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일본엔 20여 년의 '후루기(헌옷)' 셀렉숍이 있어요. RAGTAG이라는 가게인데요, 이 셀렉숍은 '정체'를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숍'이기도 해요. 신주쿠든 어디든 거리를 걷다보면 종종 하얀 간판의 검정 알파펫, RAGTAG이란 간판은 자주 마주치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런 이름의 브랜드는 들어본 적이 없고, 작은 점포의 경우 1층이 아닌, 2층 위로도 입점을 해있어서, 무얼 하는 가게인지 모른 채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결국 (앤 드뮐미스터의) 스니커즈 하나를 사면서 그곳이 '브랜드 후루기숍, 중고 가게'란 사실을 알게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건, 제게 '중고, 헌옷'에 대한 편견을 180℃ 깨준 '사건'이었어요.
재활용의 재발견, 재활용의 재활용
대부분 중고, 헌옷이라고 하면 어딘가 칙칙하고, 냄새가 날 것 같고, 결코 멋있지 않을 거란 편견이 있어요. 하지만, RAGTAG의 옷들은 '하이 브랜드' 급의 옷들만 취급해요. 그리고 깨끗하고요. 얼마 전 관련 기사가 나왔는데요 남/녀 별로 가장 인기있는 브랜드가, 남자는 COMME DES GARCONS SHIRT, ENGINEERED GARMENTS, BEAMS 순이었고요, 여자는 TRICOT COMME DES GARCONOS, SACAI, UNITED ARROWS 순이었다고 해요. '헌옷 집'이라 가볍게 들어갔다 큰일 치를 라인업이죠.😫
그리고 이곳의 옷(가방, 신발 등 잡화도 취급해요)은, 하나같이 구멍은 있어도, 흠집은 남아있어도, 결코 더럽지 않아요. 3층 건물, 1만평이 넘는, 도쿄 코쿠리츠시에 위치한 '국제 상품 센터'의 작동 방식 덕인데요. 이곳에선 1일 평균 2천 점씩 도착하는 옷가지들의 '진위' 구분부터 치수 측정, 세척, 판매를 위한 촬영과 각 점포(혹은 소비자로)로의 발송을, 모두 수행한다고 하네요. '라그타크'의 심장이라 불리는 곳이에요.
두 해 전 여름 즈음에 '라그타그'에서 셔츠 하나를 산 적이 있어요. 하라쥬쿠 캣 스트리트였는데요, 계산을 하던 중 점원이 작은 명함 하나를 줬어요. "갖고있는 옷 중에 안 입으시는 거, 생각 있으면 판매 문의 주세요." 라그타그가 상품, 라인업을 구축하는 '유일한' 방식이에요. 소비(자)가 판매(자)로 이어지고, 판매가 소비로 연결되는, 무수히 많은 (옷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의한 비지니스, 옷의 순환인거에요. 라그타그는 EC를 포함 일본 전역 17곳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1985년 하라쥬쿠에서 시작해 '헌옷' 비지니스, '후루기' 유통에 체계를 갖췄다고 평가되기도 해요. 제게 셔츠를 팔았던 남자 직원도 시작은 라그타그 고객이었고요, 지금은 브랜드 진위를 감정하는 일을 하는 우에미츠 지로 씨도 6년간 아르바이트로 일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건 아마 '옷'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공통의 관심과 기호로 엮이고 엮여졌던 날들의 역사인것도 같아요. 그러니까, '순환'에는, 이야기가 흘러요.
중고에 투자하는 사람들
물론, '후루기' 시장이 한국과 달리 엄연히 존재하고, 그도 탄탄한 나름의 시장을 갖고있는 일본의 예를 우리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어요. 먼저 '헌옷'에 대한 기본적 생각의 톤이 너무 다르니까요. 하지만 요즘같이 코로나 이후, 환경을 생각하고 쓸모에 대해 고민하고 소비를 되돌아보는 시절, 일본의 '후루기', '리유스ReUse' 시장은, 비생산의 생산, 소비하지 않는 소비, 버림에서 얻음을 찾고, 버림, 그 후를 계획는 지금, 가장 유용한 매뉴얼일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그들은 '중고'로 유통망을 짰고, 하나의 비지니스, 업계를 이룬 이들이니까요.
단 한 번의 일회성이 아닌 지속하는 실천으로서의 '리유스.' 라그타그는 그저 중고 옷가지를 취급하는 '후루기 셀렉숍'이지만요, Tin Pan Alley란 법인을 만들어 또 다른 자회사를 갖고있고요, 최근엔 일본의 최대 어패럴 유통 기업 '월드'가 거액을 투자하며 업무 협약을 맺기도 했어요. 일본에선 이를 두고 '셰어링 이코노미', '2차 유통 시장'의 확장이라고 이야기해요. 우리가 알던 '재활용'은, 결국 '관계'의 일상, 비지니스인 거에요. 헌옷이 없다면 새옷도 없어요.
오늘은, 하뉴 유즈르의 오프닝 토크를 시작으로 '순환'에 대해 돌아보았는데요...'순환'이란 편하게 바꿔보면 '나의 루틴'과도 같은 거라 생각해요. 오늘이란 시간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그건 우리가 매일 하는 이런저런 일들의 '이어짐'이잖아요. 모든 게 '지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큰 원 속에 계속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괜히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 같은, 행복한 착각도 들어요. 그리고, 앞으로의 재활용, 사이클링이 아마 그곳(나와 나의 주변)에 있지 않을까요?. 또 한 번의 '순환'을 기다리며, 다음 주, 다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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