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자, 추석 잘 보내셨나요? 연휴 동안에는 SNS 앱을 열어볼 시간도 없었어요. 특히 이번 연휴에 저는 가족 여행을 가서 계속 운전을 했거든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SNS는 커녕 메신저 앱 열 시간도 없었어요. 평소에는 자주 보기 어려운 가족, 평소라면 매일 DM을 했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역전된 시간이었어요. 이럴 때면 살면서 만드는 관계라는게 이중적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그리고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함양아 작가의 개인전에서 그런 느낌을 더 크게 받았어요.
아티스트: 함양아(b. 1968)
함양아 작가는 서울,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 집단, 사회화된 자연에 대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뉴욕대학교(NYU) 대학원에서 미디어 아트를 공부하고 현재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미디어로 풀어내는 미디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아트선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에서는 2014년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의심하게 만든 비극적 사건으로부터 출발해 작가를 대표하는 연작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시리즈의 최신작을 선보였다.
현대사회, 악의 밸류체인

미국 시트콤 시리즈인 《굿 플레이스》를 보셨나요? 이 시리즈를 보면 현대사회에서 한 개인이 부지불식간에 얼마나 많은 악행에 가담하고 있는지 꼬집는 내용이 나옵니다. 현대사회에서 ‘나’는 매우 다양한 관계의 일부로 존재하죠.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면 임금을 깎으려고 하는 사용자와 권리를 찾으려는 노조의 갈등 중에서 사측을 51% 정도 응원하는 것일 수 있어요. 전기 버스에 쓰인 전기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만들어져 지구의 환경, 근무자의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죠. 도로를 관리하는 지자체에 고용된 파견직이 새벽에 도로를 보수하면서 적은 임금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버스 도착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은요?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를 착취하고 착취당하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출근해서 한 나의 작은 실무적 결정이 나비효과처럼 가까운 미래에 누군가에게는 큰 재앙이 될 수도 있죠.
<정의되지 않는 파노라마 4.0>(2026)은 원형으로 세운 파사드 안에 펼쳐지는 대규모 영상 작업입니다. 이 안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펼쳐집니다. 노인은 요양병원에서 간병을 받고 있고, 정치인들도 유세를 하고 있죠. 이 안에 들어오면 우선 혼란스러워요. 모든 일들이 ‘나’와는 관계 없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시퀀스를 하나씩 뜯어보면 그제서야 의미가 느껴지긴 하지만 이 거대한 파사드 안에서 경험하기에는 복잡하기만 하게 느껴지죠. 이러한 복잡도 역시 사회 시스템의 전략입니다. 이해되지 않으면 인식하지 않으려고 하고인식하지 않으면 나의 세계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인식론의 한계를 경계해야 합니다.
함양아가 모아서 펼쳐 놓은 파노라마는 마치 사회의 로우데이터 같습니다. 의도를 가지고 수집한 설문조사형 데이터, 통계적 데이터가 아니라 날 것의 풍경같아요. 무의미한 춤을 추고 있는 사람,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사람 등은 전혀 관계 없지만 이 파노라마 안에서 관람객을 통해서 하나로 연결됩니다.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하는 제각기의 행동들은 결국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는 밸류체인입니다.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인식은 내가 이 현대 사회의 밸류체인 안에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한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 말이 강력한 윤리적 지침처럼 느껴지나요? 그러한 우리에게는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사회와 지구의 존속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만큼 현대사회의 밸류체인은 강력하고 문제가 많습니다.
청자가 없는 화자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2026)는 마치 SNS를 미술관에 구현해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모국어로 하고, 보여주고 싶은 풍경을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이 독백과 영상을 각각 세로형 모니터에 틀어두었죠. 이 공간에는 화자들로 가득하죠. 관람객은 각자 흥미로운 이야기 앞에 서서 그 독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시끄러운 소음의 군집처럼 보일 뿐입니다.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뿐이죠.
세로형 모니터에 틀어진 9:16 비의 화면은 자연스럽게 숏폼 영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노하우나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죠. 저도 그렇구요. 그렇지만 이것을 누가 보는지, 누가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마치 미술관에 틀어놓은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는 “개인용 디지털 기기”에 갇혀있던 개인적 경험을 미술관 안에서 공유하는 경험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이 순간 개인용 디지털 기기에 골몰할 때와는 달리 이 행위가 얼마나 기괴한 면이 있는지 드러나죠.
화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독백이에요. 누군가 듣기를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니죠. SNS는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거는 행위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독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댓글, 반응, 조회수같은 것들은 “대화”처럼 느껴지도록 생각을 교란시킵니다. 대화란 화자와 청자 간의 유기적 관계이지만 SNS는 실제로 소통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대화와 소통은 과연 파편화된 개인을 연결시켜줄 수 있을까요? 디지털 관계란 쉽게 연결되는 만큼 유지와 보수가 쉽지만 한편으로는 항상 일방적인 소통이죠. 점점 현대사회는 청자가 없는 화자로 구성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파노라마적 광장
동시대의 삶은 밸류체인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지만, 개인은 연결되지 않기를 바라죠. 앱을 통해서 쉽게 사회에 연결되지만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는 교류에 대해서는 겁내죠. 기술 낙관주의자들은 디지털 트윈, AI가 결국 인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몸이라는 입출력 장치를 통해 살아가는 생명체입니다. 우리는 결국 디지털로 구현된 세게에서는 살아갈 수 없죠. 함양아의 파노라마는 시야의 한계, 현대사회의 광활함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결국 우리는 다채널 오디오에 혼란을 겪고 넓은 파사드 화면을 조각내서 바라볼 수밖에 없죠. 기술은 우리를 구해줄 수 있을까요? 기술과 자본이 아니라 우리는 다시 몸과 몸으로 연결되는 광장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은 아닐까요?
함양아 개인전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아트선재센터
2026.7.31 - 10.4
입장료 성인 10,000원, 학생 및 예술인패스 소지자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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